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 25일]사실 본 문장의 제목을”사람의 이치에서 벗어 나오자”라고 하는게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그런데 왜 이렇게 제목을썼는가 하면,그것은 무의식적이라 내가 발견하기 어려운 한 가지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합리적이라야 승인할 수 있거나 접수할 수 있다고 인식할 것이다. 표면에서 보면 “합리적이어야 승인하거나 접수할 수 있다”는걸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으로 가는 수련자에게는 맞지 않다. “합리”하다는게 어떤 이치에 합리하다는 것인가? 사람의 이치?, 아니면 신의 이치? 대법의 이치에 맞는단 말인가? 사람의 이치에 맞는다면 사람으로서 곧 사람의 상태다. 저 애는 대법의 위력을 엄중히 제한하다보니, 당하지 말아야 할 많고 많은 마난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즉 마난을 당하게 된 과정이 합리한 것이므로, 마난을 당하는 게 정상적이거나혹은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여겼으니 부지불식간에 박해를 승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나는 오랫동안 (대략 3년 동안)소극적이고, 소침한 상태에 처해 있다가 발정념을 견지해 그런 상태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철저히 끊어 버릴 수 없어서 조금만 큰 마난에 부딪치면 여전히 교란을 받았다. 왜 이럴 수 있는가?하면, 사람의 이치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두고 볼 때 사람은 타격, 박해를 당하게 되면 좌절하고 정서가 하락된다. 타격, 박해가 커지고 시간이 길어지면, 또 자신을 개변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해도 도리어 효과가 없을 때, 사람은 곧 소극적이고 소침해 질 수 있다. 이는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 역시 사람의 이치가 작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법 가운데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초급 나한 과위에 도달한 생명은 언제나 즐거워하는데 그가 소극적이고 소침할 수 있는가? 그럼 이 이치로 가늠한다면 소극적이고 소침한 것은 수련인을 놓고 말할 때 합리적인 것인가? 나는 사부님의 [도법]중의 말씀이 생각난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 자신이 바로 이런 상황에 속하는 게 아닌가. 이런 누락을 인식한 후 나는 돌파하는 게 쉬워져 자신의 처한 환경도 크게 개선되었다.
범위를 넓혀, 지금은 바로 대법제자가 풍채를 나타내고 중생을 구도할 때이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일체 정면적인 형상, 상태를 갖추어야 한다. 지혜롭고, 두려움 없고, 고귀하고 위엄있으며, 자유롭고 유쾌한 등등등등이다. 왜냐하면 이는 법 실증의 수요이고 우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문장발표 : 2008년 9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9/25/1865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