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둥 대법제자, 성제(聖洁)
【명혜망 2008년 9월 28일】 한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위대한 사명, “중생구도”를 알고 있다. 우리들이 세간에 온 목적은 자신의 사전 서약(誓约)을 실행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시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막론하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기점이다. 만약 이 기점을 바로 잡으면, 일체 일에 있어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고려하게 되기에 능히 일체 사심의 잡념을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사(私)를 위하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기에, 일체를 순리롭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시기에 나는 이 기점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어떤 때에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 혹은 각종 집칙심의 통제하에 자신의 최종 목적을 잊어버리고 일을 하기 위하여 일을 하다보니, 일에 있어서 응당 도달해야 할 효과에 도달하지 못했다.
금년 봄에 남편이 납치되었다. 우리는 각종 방식을 이용하여 구하려고 했는데, 각 방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했다고 생각된다. 남편도 안에서 비교적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남편은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불법(不法)으로 노동교양을 당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대법이 일체를 제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내가 어디엔가는 잘못한 것이 있었다. 나는 이 과정중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이 법에 부합되었는가, 기점을 어디에 놓았는가를 찾아 보았다.
나는 자신에게 “남편이 박해받을 때 그를 동수로 생각했는가, 아니면 친인으로 생각했는가? 만약 다른 수련생이 박해받을 때 그렇게 열심히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또 조급하게 했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남편이 박해 받는데 대해 조급해하면서, 대법이 손실을 받는다고 근심해 보았는가? 아니면 다만 속인으로서의 책임지는 마음에 근거하였는가? 이 두 가지 마음에서 바르지 못하였다면 자신이 대법에 대해 견정하지 못한 반응이 아닌가?
내가 박해받는 동수들을 위하여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보는 관점이 있을 때 마음에 두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태도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를 마음에 두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인은 모두 하나인데, 바로 “정(情)”이다. 하나의 사(私)를 위하고 나(我)를 위하는 “정(情)”이다.
나는 자신에게 “무엇 때문에 ‘자아(自我)’의 작은 울타리에서 나오지 못하는가?’ 하고 물었다. 내가 자신의 처지와 곤란을 고려할 때, 내가 자신의 고통과 압력을 감수할 때, 이것은 모두 자사(自私)이자 자아(自我)인 것이다. 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람의 관념이 아닌가? 내가 세간에 온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이러한 엉킨 감정을 위해서인가? 이 일체는 모두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모두 가상이 아닌가? 가상이라고 한 이상, 나는 아직도 부합되는 자신과, 부합되지 않는 자신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에 대해 좋게 대하는 사람과 좋지 않게 대하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평화로운 심태를 보존하지 못하는가? 만약 마음과 정력을 이러한 표면의 가상중에 소비하면서 고생하고 버틴다면 그중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돕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사람의 사유, 사람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억에 의하면 내가 남편을 만나러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사람의 길을 적게 가라”고 말하였다. 당시에는 어떤 감촉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이 말은 함부로 말만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검증한 것은 하나의 진정한 수련자의 대법에 대한 믿음과 반석같이 견고한 의지였다.
나는 줄곧 남편이 검은 소굴에서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아주 잘 견지하기에 그는 이미 대법의 요구 표준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마음에서 평형을 잡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산생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얼마나 위험한가! 하나의 신(神)이 이러한 일에 부딪칠 때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사부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믿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과 지불하신 것을 생각해 보았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제자들를 위하여 묵묵히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데, 제자는 너무나 무기력하였습니다. 제자는 도리어 그중에 미혹되어 사전의 서약을 잊어버렸습니다.”
동수들이여, 우리 모두 시시각각 정념을 유지하고, 신의 길로 감에 있어서 날이 갈수록 견정하게 날이 갈수록 정진하도록 하자!
개인의 체득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10월 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9/28/18670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