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하얼빈 대법제자
동수들이 “나는 이것을 할 줄 모르고, 나는 저것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늘 듣게 된다. 나는 한 마디 일깨워 주고자 하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수련하고 있으며, 사람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이지 진정 실질적인 일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의 신심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법가운데서 이미 여러 번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하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며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 “당신 자신이 해낼 수 있는가? 해낼 수 없다. 이런 일은 사부가 안배하며 사부가 한다. 그러므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한다. 당신 자신에게 오직 이런 소원만 있고, 이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이 일은 진정으로 사부가 해주는 것이다” (<<전법륜>> <제2강>) 라고 강조하셨다.
오직 우리가 법공부 가운데 깨닫고, 하려고만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안배해주실 것이며, 위덕을 수립할 기회와 환우를 빛낼 영예를 제자들에게 남겨주실 것이다. 우리는 다만 입을 좀 움직이고 다리로 좀 뛰어다니고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담량을 키우면 될 뿐이다. 사부님께서 하시면 꼭 성공할 수 있다. 대법은 못해낼 것이 없고 우주의 법리는 일체를 제압하고 있으며 일체는 사부님의 장악속에 있다. 우리는 왜 자아를 집착하는 후천적 관념의 잘못된 영역에서 걸어나올 수 없는가? 늘 비하감에 잠겨 무슨일이나 하기도 전에 그런 재간이 없으니 스스로 안 된다고 여긴다.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으로서 사상상의 장애는 되돌아와 또 당신이 하려는 일을 교란할 것이다.
직접 마주서서 진상을 말하기 꺼려하는 원인이, 자신의 성격이 내향적이라서 그렇다고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래 구세력이 층층으로 세밀히 배치한 것이 아닌가? 바로 당신을 그러한 가정, 학습과 사업환경에 배치하여 생활중의 경력으로 당신이 말하기 싫어하고 과묵한 성격특점을 형성하게 하였으며, 결국에는 진상마저 말하기 싫어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내향적인 성격”이 선천적인 당신인가? 우리 왜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는가? 그럼 어떻게 자아를 돌파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겠는가? 어떤 때 우리는, 바로 과묵한 것이 마치 핀셋에 짚인 듯 하여 자신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시시각각 청성한 두뇌를 유지하고, 법에 부합되지 않는 사상은 자신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가리고 정념으로 제거해야 하며, 법공부 가운데서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아울러 대법의 일을 할때 신심이 충만되어야 한다. 일체 하는 일은 모두 사부님이 안배하시고 사부님께서 하신다. 이러할진대, 우리는 또 왜 이것저것 두려워하고 우물쭈물 하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가?
조그마한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