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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의 집착을 버리고 부부관계의 기점을 바로잡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8월 19일】 수련하기 시작하여 매 관(关)과 난(难)에 부딪칠때, 오직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간주하면 무엇이든 모두 순리롭게 지나갈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서는 될 수 있는 한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는데, 유독 남편(동수)은 줄곧 지금까지 아직 시시각각 정념정행을 해내지 못하였다. 어떤 때에는 속인의 일면이 아주 강하여, 바로 제멋대로 하는 것이 표현되는데, 어리광을 부리거나, 고의적으로 말싸움을 한다던가, 시도 때도 없이 건성건성하면서 한번 소란을 피운다. 나중에는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늘 후회를 한다. 마음속으로 수련된 각자에게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별로 개의치 않게 생각하고 개변하려고 결심하지 않았다.

사실 이미 잘못된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아직도 남편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첫째는 수련에 대한 엄격한 요구가 없었으므로 제 마음대로 하는 본성의 마성(魔性)의 일면이 정법을 저해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도법》에서 “매 마난이 왔을때, 본성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완전히 속인의 일면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성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완전히 끝이 없이 교란하고 파괴하여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마성중에 머무르게한다.” 두번째는, 내가 남편에 대해 정을 놓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정을 내려놓지 않았고 또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속인중의 작은 행복을 집착하면서 하나의 아름답고, 정답고, 안일한 마음에 의해 다른 사람의 애호와 중시를 받으려고 하는 이것은 모두 정(情)이다. 뿌리는 모두 자사자리(自私自利)이다. 이런 것이 법에 부합되는가? 나는 그래도 이것을 작은 일로 생각했었다.

또 하나는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시 생활에서 모두 그를 동수처럼 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못했다. 마치 법공부와 연공은 수련이고 평상시는 수련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수련은 우리들의 생활중 매 하나의 일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방면을 옛날에는 수련에서 “대가섭과 절묘한 현인(大迦叶和妙贤)”이라고 하였다. 이들 지간의 상태에 대하여 우리는 확실히 감정해볼 가치가 있다.

부부 지간의 연분은 속인중 생생세세의 업력으로 인해 윤회하면서 조성된 것에 불과하다. 만고에 법을 얻은 연분이야말로 신성하고 더욱 고상하고 더욱 우리들이 아껴야 할 가치이다. 사부님께서는 《2007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당신들은 일단 수련인으로서 당신들은 바로 동수이다.”, “그러므로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상호간에 문제와 모순이 나타나는 것을 엄격히 대해야 한다. 마치 속인들처럼 생각나는대로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법에서 이미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 하셨는데 바로 마땅히 진정으로 잘 해야 한다. 마음을 해결해야 한다. 자비로 매 한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이 기점을 바로 잡으니 정념이 나타나면서 좋지못한 사상관념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이것은 바로 법이야말로 강한 것도 녹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이것이 해체되고 정행이 바로 나타난다.

어떤 동수들은 교류에서 “어느 때면 남편이 나에게 수련이 잘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하고 말하였다. 나는 진정으로 수련을 잘하련다. 이 방면에서 나처럼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동수들은 진정으로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능히 자비로 남을 대할 수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동일하게 자비로 가족을 대하지 못하는가?

문장완성 : 2008년 8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8/19/18437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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