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소풍
[명혜망 2008년 8월 4일] 만악(萬惡) 가운데 음란이 첫째라고 한다. 수련을 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버려야할 것이 바로 색(色)이다. 우리는 색에 대해 반드시 철저히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것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면 반드시 색욕에 대한 청성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진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비로소 그것을 진정으로 제거할 수 있다.
* 신(神)이 인체를 만들었다는 각도로부터 보자
신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삼계에서 인체를 만들었는데, 목적은 최후의 정법에 쓰기 위해서였다. 최후에는 반드시 신의 형상을 가진 생명만이 여기에서 법을 듣고 수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법에 대해 존경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가령 우리가 이 신의 형상인 인체로 이곳에서 더러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직접적으로 신을 모욕하는 행위가 아닌가? 같은 이치로 우리 사람이 나쁜일을 할 때, 어떠한 나쁜 일이든, 신의 형상과 비슷한 인체를 가진 우리가 나쁜 일을 한다는 이 각도에서, 그것은 일종의 죄행이다.
* 신이 사람에게 안배한 부부생활의 목적으로부터 보자
많은 동수들은 부부간의 부부생활은 천경지의(天经地義)라고 하면서 현대인의 변이관념을 놓지 않고 있다. <<전법륜>>에서는 확실히 부부간에 존재하는 이런 생활은 천경지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천경지의에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란 바로 후대를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동수들은 부부라는 이 두 글자에만 주의하면서, 이러한 양성행위가 다만 부부간에만 발생하고 부부가 아닌 사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천경지의라고 이해한다. 내가 이해하건대 이런 행위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반드시 부부간에 발생해야 하고, 둘째는 반드시 후대를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만족되어야만 비로소 천경지의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되는 규범에 부합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게 된다. 사부님은 설법에서, 신(神)이 개를 만든 목적은 집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의 사람은 도리어 개를 친구나 아들로 여긴다. 이것은 천법을 손상한 것이다. 개를 정확히 대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천법을 손상하는 것인데, 하물며 부부생활을 남용함에 대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 공산사령(共産邪靈)의 각도로부터 보자
법공부를 통하여 우리는 공산사령이 인류의 도덕을 손상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인류의 도덕을 손상시키는 가장 유력한 도구가 바로 “색(色)”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색심을 버리지 못했을 때, 이것은 단순한 욕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공산사령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날마다 사령을 해체하고 당문화를 배제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색(色)이 바로 이 사령(邪靈)인데, 우리가 어찌 우리의 공간장에 그것이 존재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 계시록 제17장의 제목이 바로 대음부(大淫婦)이다. 이 장에서는 중공악당(中共惡黨)을 대음부로 비유하였는데, 이 점으로부터 볼 수 있는바, 색은 바로 공산사령을 조성하는 일부분이다.
* 공(功)의 각도로부터 보자
공능이 있는 많은 동수들은 보았다. 부부간이라도 이런 일을 하였다 하면, 대응되는 자신의 공간장 중에는 저급적이고 괴상하고 사악한 생명이 득실거리게 되는데, 더럽기 그지 없다. 또 어떤 공간장에 대응된 중생들에게는 모두 무서운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또 어떤 동수들은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지만 이 공간의 육신은 부동한 정도의 고통스런 상태가 있게 된다. 사실 이런 그릇된 행위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감당하는 것은 바로 다른 공간의 진정한 신체[眞体]이다. 이 공간에서의 감수는 다만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
* 사람의 각도로부터 보자
사존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부간은 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의(義)가 또 있다고 알려주셨다. 현대인의 변이된 사상은 심지어 부부간에는 정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반드시 부부생활이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이런 부부생활을 부부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으며, 심지어 서로간의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으면 이혼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속인의 한 문장을 본 일이 있는데 판진랜(潘金莲)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남편과 문벌이 맞지 않고 부부생활도 조화되지 않아서 비로소 시문경을 찾아간 것이므로 신 여성해방의 전형적인 모범에 속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바, 이 색(色)이 속인사회에 대해, 속인의 문화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파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치 이 방면이 만일 좋지 않다면 부부관계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건대, 부부중 한쪽은 속인이고, 다른 한쪽은 수련하는 제자라면, 가히 이 방면으로부터 수련하지 않는 아내 혹은 남편에게 무엇이 진정한 부부인가를 말해주어 그들의 변이적인 관념을 돌려세워야 한다. 따라서 정념으로 자신을 바르게 수련하여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
* 수련층차로부터 보자
색은 수련에 들어서는 첫 번째 관이다. 무엇 때문에 이 문제가 첫 번째 관으로 되는가? 무엇 때문에 예전의 수련과 낡은 우주의 신은 색을 제일 중하게 보았는가? 내가 이해하건대, 층차의 각도로부터 본다면 예전의 수련인은 낮은데서 높은데로, 가장 표면적인 곳으로부터 미세한 곳으로 개변을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색이란 이 물질은 우리 육신이 존재하는 이 층의 공간보다 다만 한 층 높은 공간중에라도 더이상 존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물질은 너무도 저급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한 층만을 수련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높은 층차에로 수련해가려 하며, 육신이 있는 공간보다 더욱 무수히 높은 층차의 공간으로 수련해가려 한다. 그러므로 이 첫 발자국 중의 첫 발자국을 내디디지 못하고, 뛰어넘지 못한다면 어찌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 오늘의 수련은 미세한 곳으로부터 개변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층 한층씩 수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구실로 자신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우리는 개념 가운데 더욱 똑똑히 해야 한다. 예전의 소도수련(小道修煉)을 한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그렇게도 중하게 보았지만, 우리는 대법제자이므로 절대로 이 일에 있어서 대법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의 깨우침으로서 부당한 곳은 자비로 시정해 주길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8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8/4/1833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