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22일】 금년 7월 8일 저녁, 우리 현지 동수들이 함께 인근 현에 가서 자료를 만들었다. 모두들 막 구역을 나누고 갈라진 후 그 중 한 팀의 58세 여자 수련생이 갑자기 몸이 불편하다면서 온 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길가에 앉아 쉬었고, 다른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발정념을 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이어서 그 여자 수련생은 왝왝 토하더니 땅에 쓰러졌다. 나중에 전화로 120 구호차를 불러왔으나 병원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이 수련생은 세상을 떠났다.
사건이 발생한 후, 어떤 수련생은 ‘우리 현지의 정체에 무슨 큰 누락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인근 현에 가서 자료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으며, 동수에게는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너무 조급하게 한 누락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여겼다.
어떤 수련생은 안으로 자신을 찾아봤다. ‘나는 사망한 그 수련생이 수련을 잘했고 씬씽도 높아 반드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때문에 그녀를 병원에 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에게 발정념을 잘해 주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갔던 수련생은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떠난 동수의 가족이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했고 대법에 파괴작용을 일으킬까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아 낼 수 있었다. 개별적인 어떤 수련생은 겁이 나고 두려워 떨면서 경찰차만 봐도 도망을 가버렸다. 다수 동수들은 사망한 수련생이 구세력과 약속한 것이 있어 구세력의 안배를 따라 간 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이 수련생을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겨울이었다. 그녀가 내게 준 첫인상은 사상이 단순하고 잡념이 없다는 점이었다. 법을 얻기 전에 그녀는 불교신자로 십여 년을 있었지만 몸은 줄곧 좋지 못하여 늘 입에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어 땅에 쓰러졌다. 나중에 대법수련에 들어오게 되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몸은 점점 더 좋아져 일신에 병이 다 없어졌으며 아주 정진하였다. 그녀 집의 컴퓨터는 속인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그녀 눈에는 그것이 전용적인 법기로서 속인이 장난을 치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었다. 동수들은 모두 그녀가 세 가지 일을 아주 잘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자료를 만드는 주력이라고 여겼다. 바로 8일날 저녁에도 그녀는 차에 앉아 가는 동안 줄곧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했는데 얼굴은 상화하고 자비로웠고 그 어떤 나쁜 상태도 없었다. 바로 이렇게 훌륭한 수련생이 구세력에게 끌려갔으니 구세력이 호시탐탐 노려보면서 우리가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까 두려워 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우리 여러 수련생이 함께 있을 때면 구세력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또 손을 쓸 만한 능력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갈라져 있기만 하면 구세력은 그녀가 발정념 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 처하게 한다. 나중에 그녀의 딸이 하는 말을 들으니 사부님께서 자신의 모친을 데려가시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큰 방향으로부터 보고 주관적인 원인을 말한다면,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전반 사건의 인연 관계를 보지 못하고, 또 다른 공간의 진실한 체현도 보지 못하며, 동수의 미시적인 곳 깊은 곳에 그 어떤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는지는 더구나 모른다. 바로 이 일을 놓고 말하더라도 중생을 구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구세력이 감히 동수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이런 원만 방식은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한 대법제자가 세상에 있으면 얼마나 많은 중생을 구도하겠는가? 어쩌면 그녀의 수련의 길에서 겪는 마난과 생생세세의 업력은 이미 생명을 내려놓는다 해도 도저히 평형할 수 없을 지경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수련의 길이 바로 이렇게 안배 되었을 것이다. 구세력은 다만 이 일을 이용해 다른 대법제자를 고험해 보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대법제자가 구세력에게 생명을 빼앗기려 할 때 가령 능히 사부님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사부님께서 관할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속인이 파룬따파 하오라는 한 마디를 외쳐도 그 사악한 환경에서 관할하시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임에랴? 뿐만 아니라 노동교양소도 감옥도, 사악한 구세력의 검은 소굴에서도 아니고 생체 장기 적출을 하는 강제수용소도 아닌, 표면 공간에 사악의 표현도 없는 느슨한 환경에서이다.
이는 구세력이 대법 및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또 하나의 더욱 은폐적이고 더욱 사악한 일종 방식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세력이 한 일이 아닌 듯하다. 그녀를 붙잡지도, 때리지도, 않았으며, 정신적인 시달림도 없었다. 실은 흔히 우리들에게 몰이해와 미혹이 더욱 쉽게 생기게 한다. 구세력이 우리 목숨을 빼앗아 가려 할 때, 우리는 마땅히 살려는 강렬한 신념이 있어야 하며, 구세력이 안배한 결과와 상태대로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정념이 충족하고 마음속에 사부님을 담고 대법을 담는다면 구세력은 곧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한 수련생은 그가 사망상태에서 확고했던 심리를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노동교양소에서 몇몇 악당들이 대법제자를 죽도록 때려 사망상태에 임박하게 되었다. 벽에 세워 놓아도 서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한 번 또 한 번 자신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살아야 한다, 꼭 살아야 한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 사부님, 전 죽을 수 없습니다.’(그때의 상황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심리상태가 아니었다). 생존하려는 이 일념이 일어나자 이번 마난도 곧 풀렸다. 만약 당시 이 대법제자가 ‘끝장이다, 난 맞아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다면 아마 맞아 죽었을 것이다.
정견망에서 다른 공간을 볼 수 있는 대법제자가 생체 장기적출을 당한 수련생들의 부동한 상태를 본 것을 제기한 문장을 본 것이 기억난다. 내심 깊은 곳으로부터 사부님을 부른 수련생은 사부님 법신께서 검은 구름을 헤치고 만장이 휘황한 빛으로 수련생을 데려 갔다. 비록 육신은 버렸지만 주원신은 즉시 사부님께서 데려가셨다. 어쩌면 구세력이 그녀의 주의식을 격리시킨 다음 손을 썼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주변 수련생이 중요한 작용을 해야 하는데 정념으로 그녀를 가지하고 그녀를 대신해 발정념을 해야 한다.
내 신변의 동수에게 이런 경험이 있다. 세 수련생이 목욕하러 목욕탕에 갔다. 그 중 한 수련생이 갑자기 바닥에 넘어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 시각 넘어진 동수의 주원신이 몸에서 떠나 그의 육신 상공 3,4미터 되는 곳에 떠돌고 있었는데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상의식이란 조금도 없었고, 어떠한 심리 활동도 없었다. 다른 두 수련생은 즉시 그를 부축하면서 발정념을 했다. ‘그는 아직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구세력이 그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중생을 구도할 허다한 일을 해야 함으로 구세력이 그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을 절대 윤허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자 넘어져서 기절했던 수련생은 몇 분 후 정신을 차렸다. 신변에 있던 두 동수의 강대한 정념 때문에 구세력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므로, 구세력이 동수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일에 직면했을 때, 사망 상태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는다면 결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또 원신이 몸을 떠났을 때 만약 다른 공간을 볼 수 있다면 절대 교란 받지 말아야 한다. 그 곳이 아무리 좋다 해도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원만 이후의 세계보다는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안배되어 한 걸음 앞서 원만해 간다면, 개인적인 이해로,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부르는 것과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의 후과와 층차의 차이는 아주 요원한 것이다. 당사자 본인에 대해서도 일종의 고험이 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생명을 빼앗기게 될 것이란 것을 안다고 할 때,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생각하고, 자신이 법을 얻게 해 주신데 대해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자기 생명의 은원을 평형시켜 주신데 대해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하며 아이고 나는 죽겠구나, 대법을 헛배웠구나 하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구세력은 득의양양해서 사존께 말할 것이다. “어떻습니까? 내가 그를 죽음으로 안배한 것이 맞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를 제자로 여기지만 그가 당신을 사부로 여깁니까? 그가 당신에게 끝없는 법력이 있어 이 일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주관적인 원인으로부터 말한다면 또 일종의 상황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구세력과 맺은 서약을 너무 중요하고 심각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말고 또한 자신과 구세력 사이에 무슨 서약이 있었는가 하는 일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곧 이 구세력이 어떠어떠하게 사납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그것의 안배를 승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과 맺은 신성한 서약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관건적인 시각에 여전히 사람 자신의 표면인 이 주체가 결정하지 못하는가?
사존께서는 우주 밖에서 이 법을 바로 잡고 계신다. 그러나 구세력은 다만 사부님의 정법과 정법에 참여한 대법제자에게 거대한 난만을 설치할 따름이다. 구세력에게 잔명을 남겨 주어 살아있게 하신 것 역시 사존께서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위덕을 세워주시기 위해 안배하신 것이며, 동시에 전 우주의 생명이 모두 구도 될 희망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마땅히 미래의 신우주는 사부님, 대법, 眞善忍이 주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구세력은 구우주 속에서 소훼돼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세간에 와서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한 서약을 실현해야 하며, 중생구도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사건은 발생했고, 내 마음은 비통한 후 아주 빨리 평온해졌다. 발생했으면 발생한 것이다. 다만 정법수련의 엄숙성에 대해 자신에게 더욱 잘 일깨워 줄 뿐이다. 우리는 자신을 절실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매 사람의 생명 노정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인생 중의 얼마나 많은 큰 재난들이 우리가 정법을 수련함으로 인해 피할 수 있었던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거대한 난을 감당하셨고, 얼마나 되는 생명의 은원을 평형시켜 주셨으며, 얼마나 되는 심혈을 바치셨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리어 늘 세간의 조그마한 득실에 집착하고, 대법 중에서 자신의 득실에 집착하거나 눈앞의 조그마한 이익을 집착하고 버리지 못해 중생구도를 지체하고 있다. 마땅히 진상을 알 기회를 주었어야 할 중생을 만나고도 도리어 말해주지 못한다. 만약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자신이 세간에 올 때의 서약을 실현할 수 없으며, 필연코 자신이 주불과 맺은 서약을 위배한 것 때문에 후회할 것이다.
매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모두 깨닫고 제고해야 한다. 우리는 사존의 대법도(大法徒)이며, 중생구도는 우리들의 사전 대원(大願)이다. 가령 자신이 올 때의 서약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사존께 대한 불경일 뿐더러 대법에 대한 불경이며, 마에게 꼬리를 잡혀 우리를 죽음의 경지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시간을 다그쳐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시간을 다그쳐 중생을 구도해야 하며, 단호하게 구세력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비로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집착을 폭로하고 우리더러 그것을 닦아 버리게 하여 정체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중생구도의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는가, 어떠한 교란도 받지 않고 확고하게 걸어갈 수 있는가, 더욱 잘할 수 있는가를 보아낼 수 있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7/22/1824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