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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을 찾다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22일】 며칠 전 내가 잘 아는 한 수련생이 납치당해 간수소에 끌려간 후 박해를 받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후 나는 수련생이 박해받는 사실을 가장 빠른 속도로 본 시 협조인에게 전해 주었고, 아울러 박해당하는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 하고 인터넷에 사악을 폭로했다.

하지만, 수련생이 박해받은 경과가 상세하지 못해 가급적 실정을 조사하고 확인해야만 인터넷에 폭로할 수 있었다. 증거를 구하는 과정에 또 그 동수 가족의 반대를 받았다. 가족이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돈으로 관계자들을 찾아 사람을 빼내려 했다(돈 쓰는 것을 인정함) 이 과정에 본 시 협조인은 나를 여러 번 찾았고 나더러 동수 가족에 대한 일을 하라고 했다. 동수의 부친, 형수, 누나가 모두 수련인이기 때문에 나더러 이들 동수들과 교류하고 그들이 걸어 나와 공안국에 가서 자신의 가족을 찾아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이 일이 하기 힘들다고 느꼈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온갖 방법을 다해 단체로 공안국에 가서 사람을 요구하는 일을 방해했다. 말하자면 정부를 포위공격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말을 해도 자기 가족들이 이런 모험을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접촉하는 과정에 나는 그들의 말이 아주 귀에 거슬렸고 듣기가 싫어 마음속으로 일종 형용할 수 없는 모욕을 받았으며 아주 괴로워 몇 마디 하지도 않고 가 버렸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교란을 만난 것은 나의 어떤 마음을 겨냥하고 온 것이 아닐까? 법중에서 우리가 알다시피 수련 중에서 만난 일체 교란과 모순에 대해 우리는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괴로움은 그래도 그들의 가족을 구하려다 부닥친 몰이해인데 나 자신을 찾는다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수련 중에서 나는 지금껏 줄곧 자신이 바르게 했고, 옳게 했기에 동수들도 모두 나를 찬양한다고 여겨 왔으므로 부지불식간에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명예를 구하는 마음, 과시심이 형성되어 다른 의견을 듣지 않았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모두 듣지 않았으며 자신의 말만 맞다고 여겼고, 동수에 대해, 속인에 대해 모두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하는 말이란 모두 질책, 명령이었으니 어디에서 자비심이 올 수 있겠는가? 이 번에 수련생을 구원하는 일에서 마주친 일은 내 마음을 촉동시켰다. 억울하고 괴롭다고 여기면서 아울러 에돌아가려 했으며 문제에 부딪쳐 자신을 찾지 못했을 뿐더러 수련하지 않는 그런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것이 대법 수련을 하는 사람인가?

정말로 나의 수련을 위해 사부님께서 지불하신 일체와 고생스런 구도에 미안한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수련생이 한 번 또 한 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게 그 무슨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장시간 수련생을 구하는 이 일에서 많은 부족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심이 부족하고, 수련생이 당하는 박해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교란에 부딪친 것이다. 이런 부족점과 차이를 찾아 낸 후 나는 느꼈다. 자신이 마땅히 동수 가족을 찾아가 진상을 똑똑히 알려준다면 일체는 자연히 순탄할 것이 아닌가?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게 있는 것이다.

씬씽이 제고된 후 전화 한 통에 교란이 그렇게 컸던 동수의 그 가족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나더러 자기 부친과 누나와 구원하는 일을 토론해보라고 했다. 이런 변화는 그야말로 신기했고 또한 대법의 초상함을 실증했다. 오직 우리가 문제에 봉착해 자신을 찾아볼 수 만 있다면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고, 사부님께서는 곧 우리를 도와 이 관과 난을 넘게 해 주실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작은 수련 체험이니 옳지 않은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7/22/1824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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