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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예언에 대한 집착을 닦아 버리자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22일】지난 몇 년간 중국은 각종 재난이 빈번히 나타나 사이트에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지면서 몇 차례 재난의 예봉이 겨눈 그 날 무슨 일이 발생할 거라고 의론하고, 이 악당이 올림픽을 전후해 어떠한 난에 부딪칠 것인지 의론하며 악당의 운명을 추측하고 예언의 정확성을 추측하며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거행할 수 있을지 여부를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은 속인이 종래 겪어보지 못한 각종 재앙 앞에서 일종 본능적인판단과 우려이다. 하지만 한동안 많은 동수들도 그중에 섞여 들어가 ‘올림픽’이 열릴 것인가 열리지 못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예언에서는 몇 월에 어떻다고 인정하는 등이다. 우리는 대법제자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시간에 대해 예언에 대해 집착을 품어선 안 된다.

이전에 시간에 대해 집착하고 천상(天象)에 대해 집착하여 가져온 교훈은 너무나 많지만 늘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일종 마음의 파동으로 법을 실증하는 길에 그 어떤 집착이든 있기만 하면 구세력과 구우주의 생명은 곧 기어이 일이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하는데 이는 인위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어려움을 증가시킨 것이다. 물론 집착하지 않으면 올림픽에 문제가 나타난다는 말은 아니다. 올림픽은 속인 중의 일로서 하늘이 변하면 사람은 자연히 움직이게 마련이며 인간 세상의 변화는 모두 우리 이번의 정사대결에 따라 변한다. 우리가 제거할 것은 정법을 파괴하고 세인을 박해하는 사악한 생명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진상을 알고 구도하게 하자는 것이지 악당을 겨냥해 무슨 일을 하여 우리가 그것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그것이 할 수 없게 되도록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법을 파괴하여 원기가 크게 상했기 때문에 삼계 중에서 발 디딜 곳이 없는데 이는 사악이 실패하는 필연적인 표현이다.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그것의 진면모를 폭로하는 이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중생이 그것을 똑똑히 인식하게 하고 그 것에서 벗어나 구도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공하면 병이 낫지 않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우리는 구하지 말아야 하는데 밖을 향해 구하면 그것이 어떠한 변화가 있겠는가, 중생들은 모두 우리를 기대하고 있는데 설마 우리가 사람의 일을 기대한단 말인가?

예언에 대해 말하자면 미래에 대해 예언할 수 있는 것은 동서고금의 예언가들이 모두 특이 공능이 있거나 혹은 수련자임을 설명하며 혹은 다른 특이한 능력이 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과 수련한 것은 오늘 우리가 수련하는 대법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어떤 동수들은 곧바로 예언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면서 예언 중의 일이 발생하는 것을 집착하고 기다린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은 말한다. 우리는 어쨌든 경서에 대해 흥미가 있다. 당신이 늘 경서를 둘러싸고 학습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한 법문 중에서 수련한 것이다. 왜냐하면 경서도 그 한문의 공과 법을 합친 것이기 때문에 배우기만 하면 곧 그 한 문의 것을 배운 것으로 되는 이런 문제가 있다. 만약 당신이 파고 들어가서 그것의 것에 따라 수련한다면 그 한 법문으로 가게 되는 것으로 곧 우리 이 한 법문이 아니다.”(『전법륜』)

수련은 엄숙한 일이다. 예언은 단지 오늘 대법제자들이 조사정법하는 천고(千古)의 큰 연극에서 하나의 밑바탕에 불과하며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제공된 것일 뿐이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늘 예언에서 무엇이라고 말했는데, 실제상 왜 그렇지 않은가? 라고 집착한다. 곧 법으로 간주한다. 정법이 시작된 후에 일체는, 정법 과정 자체를 포함해서, 모두 미래의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라. 예언은 다만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부님의 어떤 말씀은 마치 그런 일 같은데 때가 되면 왜 그렇지 않은가?” 라고 말한다. 사실 당신은 모두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집착은 집착이 아니란 말인가? 닦은 것이 아무런 누락도 없어야만 비로소 가장 잘 닦은 것이다. 대법제자가 곧 정정당당하게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의지하려는 어떠한 생각도 다 없다면, 사악도 감히 당신의 틈을 타지 못하며 나쁜 것은 당신을 보기만 해도 도망간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이 잡고 틈을 탈 수 있는 어떠한 누락도 없기 때문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

정법수련은 무위(無爲)를 중시한다. 무위라야만 마음이 조용해질 수 있고 무위라야만 자신으로 하여금 구함이 없게 하고 무위라야만 자신의 신의 일면을 펼쳐 정념이 나오게 할 수 있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7/22/1824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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