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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전의 사악의 미친듯한 표현에 대한 반성

글 / 요녕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7일] 올림픽 경기 개최가 이제 한 달 남았다. “사악의 횃불”이 지금 바로 대륙에서 대대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법제자를 미친듯이 납치하는 사건에 대한 소식도 끊임없이 각지로부터 전해오고 있다. 날마다 명혜망에 오른 긴 박해사실 보도를 읽노라니 마음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좋지 않다. “사악의 횃불”은 이제 곧 우리 성(星)에 도착할 것이다. 성내 각 시 “610”, 공안국은 비밀리에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배치하였고, 마음대로 납치하고 대법제자를 괴롭히고 있어, 지금 인심이 들뜨고 분위기가 긴장한 국면이 나타나게 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이미 집을 떠나 숨기 시작했고, 동수간에 만나면 서로간의 부탁이란 올림픽 전에 많이 주의하고 조심하며 발정념을 많이 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정체의 목전 수련상태를 보면 마음에 느껴지는 바가 아주 많다. 우리는 정말로 너무나도 피동적이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사악에게 끌려다니고 있다. 목전의 표현으로는 “사악의 횃불”이 어디로 전해지면 어디에서 곧 박해가 발생한다고 하면서, 우리 모두는 약자의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으로서 박해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며, “사악의 횃불” 전송이 끝나 안전하기를 소극적으로 기다리고만 있다. 이는 참으로 미래 우주의 각자(覺者)로 성취할 수련인의 마땅한 상태가 아니다. 대법제자의 신념(神念), 대법제자의 정념정행이 어찌 소리없이 사라진단 말인가? 여러 동수들이 발정념을 많이 하라고 서로 일깨워 주고 있긴 하지만, 그 기점을 파보면 많이는 역시 위아위사의 각도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호하여 박해의 발생을 모면하려는데 있다. 우리는 참으로 반성해보아야 한다. 어찌하여 정법진행의 오늘에 이르러 사악이 거의 없는 정황하에서 이렇듯 대규모 박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듯 무능한 표현을 보일 수 있는가? 우리의 씬씽[心性]에 아직도 무슨 누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법리상에서 우리가 승화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질질 끌면서 제고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 설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후 나는 우리의 사람 마음, 관념이 박해의 발생을 자양시켰고 느꼈다.

1. 안일을 추구하는 숨겨진 마음, 시간에 대한 집착

올해 중국대륙에는 천재인화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아울러 사건 발생의 시간이 유난히 교묘하게 일치하는 것이 마치 모두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해외 사이트에서도 많은 평론이 있고 동수 사이에서도 흥미진진하게 이런 사이트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의 천상에 근거하여 적지 않은 동수들이 모두 하는 한 마디 말이란 바로 “올림픽 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말 밖의 뜻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게다가 《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에서 사부님께서 이런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올림픽은 아직 몇 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악한 당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 그것에게 얼굴을 돋보일 기회를 주는가 안 주는가는 사람이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여러 동수들은 모두 사람의 마음으로 악당이 해체되어 정법이 종결되는 시간을 알아내려 하고 있는데, 마음속에서 모두 이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가령 속인의 각도에서 이해한다면, 9년이나 되는 미친듯한 박해를 겪었기 때문에, 평화적인 날이 도래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이치에 맞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자이며 우주 대법이 만든 정법제자로서, 성취해야 할 것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법정각의 생명인데, 시간에 대한 집착한다면 이는 하나의 아주 커다란 사심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리로부터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오직 중생을 빨리 구원 하려는 것만 있어야할 뿐 자신이 하루 빨리 해탈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법을 얻은 그날부터 우리는 이미 해탈중에 있는 것이다. 우리와 역사상의 수련자들과의 유일한 다른 점이라면 우리에게는 사람을 구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그 실질은 역시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당초에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홍원을 내보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 역시 구우주의 도태와 해체속에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사전(史前)의 그 무사(無私)한 일념을 소중이 여기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갱신과 미래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며, 그래서 비로소 우리의 오늘이 있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시간이 아직도 얼마나 길든지 간에 모두 우리가 고려할 바가 아니며 일념을 움직이는 것 모두가 집착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오직 사람을 많이 구하려는 생각만 있을 뿐 기타의 어떠한 염두이든 모두 사(私)를 위한 것이므로 모두 마땅히 이러한 염두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시각에 우리가 모두 마음속으로 남몰래 시간을 따지고 천상변화를 기다린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 상반되는 결과일 것이며, 다시 한 번 구세력에게 우리를 고험할 구실을 주게될 것이다. 지금의 올림픽 전의 미친듯한 이러한 탄압이 우리의 사람 마음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방면의 교훈은 너무도 많다. 우리가 집착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은 오직 사부님 정법에 어려운 정도만 더해주고, 중생에게 재난을 가져다줄 뿐이다. 참, 우리는 어느 때 가서야 진정으로 성숙될 수 있는 것인가?

2. 미친듯한 가상을 중히 보고 피동적으로 박해를 승인하다

목전에 표면으로부터 볼 때, 박해는 실제적으로 발생하였고 때때로 “610”이 또 무슨 행동이 있을 것이고, 또 무슨 문건을 내려보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소식들은 흔히 모두 대법제자가 앞당겨 듣게 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긴장되고, 현지에 박해가 있을 것이므로 주의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정념이나 발하여 현지 사악을 제거해야 하겠다는 고작 이것 뿐이다. 사상 가운데 이미 박해를 묵인하였고, 자신을 박해받는 신분으로 배치해 놓았다. 원래 자신에게 바로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이다. 사부님의 《2008년 뉴욕법회 설법》을 공부한 후 나는 이 인식을 고쳤으며, 원래의 인식은 틀린 것으로서 관념을 바꾸어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현재 대법제자가 오직 정념이 아주 족한 상황 하에서는, 사악한 생명은 이미 맞설 능력이 없어졌다. 그것들이 매 한 차례 악행을 하는 데는 아주 많은 썩어빠진 귀신들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거의 몽땅 출동한다. 왜냐하면 법을 바로 잡고 우주를 정화하기 때문에 그것은 소멸되어야 한다. 사악한 힘은 바로 이렇게 소멸되고 감소되는 것이다. 소멸되면 그것 역시 한 단락 시간 잠잠해지는데, 매번 모두 이러하다. 그럼 이 정황으로 본다면 대법제자는 더욱 마땅히 냉정해야 한다.” (《2008년 뉴욕법회 설법》)

이 단락 설법으로부터 나는 깨닫게 되었는데, 악당에게 표면적으로 또 무슨 행동이 있을 것이며 마치 아주 미친듯한 모양이지만, 사람의 표면적으로는 마치 우리가 아주 피동적인 것 같지만, 원래는 우리가 마땅히 주동적으로 출격하여 그것을 소멸해버려야 할 때이다. 그것이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대면적으로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 매번 병력을 모두 출동할 때가 모두 우주를 정화할 기회로서 정법 가운데 바로 이렇게 사악을 소멸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비록 한때 사람 마음이 들떴고, 두려운 감각이 있었다 하더라도 법리상으로는 반드시 똑똑해야 한다. 우리는 박해를 감당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것들을 소멸해야 한다. 이는 사명이며 책임이다. 어찌 자신을 늘 박해받는 위치에 놓는단 말인가? 이 관념을 돌려세우지 않고서야 어찌 박해가 또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목전에 각지에서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는 박해와 연상해 보면, 우리가 인위적인 관념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이같이 미친듯한 가상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속인의 군자마저 정정당당하게 할 수 있는데, 우리 대법제자가 도리어 무슨 소식을 좀 듣거나 하면 곧 숨어 버리고 마음이 두근거린다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대법제자의 칭호를 더럽히고 너무도 패기 없는 것이 아닌가?

동수여, 우리 모두 근심도 두려움도 없는 사람이 되자. 우리는 결국 최후까지 숨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하루라도 일찍 정념을 강대하게 하면 하루 일찍 박해를 종결지을 수 있을 것이며, 하루 일찍 법정인간의 도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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