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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치는 방망이 한 대가 나로 하여금 갑자기 깨우치게 하였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6월 26일] 사부님의 《2008년 뉴욕법회설법》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말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자책이라고 할까? 내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할까? 채찍질이 된다고 할까? 아무튼 마음이 비교적 괴로웠던 것은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잘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부님으로 하여금 대궁을 바르게 하고 우주의 중생을 위하여 마음을 다 기울이고 일체를 소모하게 하였다. 또 사부님더러 우리 대법제자를 위해 근심하게 하였다. 평소에는 언제나 사부님께서 좀 더 안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적게 걱정하시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 자신은 어떻게 하였는가? 사부님의 설법은 그렇게 거듭 충고하셨고 그렇게 자비로우셨으며, 이를 읽으면서 나는 눈물이 글썽이고 마음이 찡했다. 노제자로서 정말로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구도에 송구스럽다.

이번에 사부님의 설법은 나로 하여금 알게 한 후 정말로 예전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는지 보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일찍이 법을 명백하게 설명하셨다고 생각한다. 우리더러 세 가지 일을 잘하게 하셨으며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자신을 잘 수련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하였는가? 특히 자신을 잘 수련하는 방면에서 사부님의 법리에 대해 이해가 투철하지 못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의 원만이 제1위이며 대법제자의 원만은 이미 문제가 아니며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그속에 일체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원만에 대해서는 이미 장악하였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요구도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일에 부딪치면 무조건 안을 향해 찾지 않았으며 명(名), 리(利), 정(情) 등 작은 것에 대해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사소한 일에 주의하지 않았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도 주동적으로 가서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때엔 연공도 게으르게 한다. 발정념은 네 번의 정각시간 외에는 매우 적게 발하는 등등이다.

사부님의 설법은 정말로 머리를 한방 맞은 것처럼 나로 하여금 갑지기 깨닫게 하였다. 그렇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자신이 원만한 것을 아는가? 당신은 표준에 도달하였는가? 아직도 한가하게 정법의 결속을 기다리면서 원만하여 날아올라가기만 바라는가? 이것은 원만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신불(神佛)이 어떻게 원만에 집착하겠는가? 원만에 집착하는 사람이 원만할 수 있는가? 자신의 원만만 생각하는 이것은 사적인 것이 아닌가? 비록 세 가지 일은 하였지만, 마음에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그런 순정함이 있을 수 있는가?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면 정말로 찬 기운을 한 모금 들이마신 것 같았다. 나는 원만할 수 없다. 나의 중생도 구도할 수 없다. 이것은 엄중한 후과이다. 정말로 나는 놀라서 식은 땀이 흘렀다. 평소에 나는 얼마만큼 많은 진상을 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얼마만큼 삼퇴시키고 얼마나 되는 중생을 구하였다고 생각하면서 혼자서 기뻐하면서 꿈에 젖은 후 중생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제고시키지 않고도 원만할 수 없다. 더욱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더욱 담론할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엄중하다. 수련은 바로 이렇게 엄숙하다.

이 정법의 최후단계에 나는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을 진정으로 중시하려 한다. 자신의 제고를 첫 자리에 놓으려 하였다. 그러나 개인수련과 세가지 일은 갈라놓는 것이 아니며,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가운데 대법에 동화되고 자신을 수련하며 진정으로 원만의 표준에 도달함으로써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며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구도에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하고 보충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6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6/26/180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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