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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정행 중생구도

글/ 대륙대법제자 혜련(慧蓮)

【명혜망 2008년 6월 17일】

5월 12일 사천 지진이 발생한 후 나는 우리 대법제자들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더 깊이 인식했으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빨리 사람을 구해라! 빨리 사람을 빼앗아라! 정법의 최후 단계에서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의거하지 말아야 하며 시간을 다그쳐 자신의 가장 큰 지혜와 가장 큰 능력으로 될수록 많은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라는 외침을 참을 수 없었다.

아래에 내가 십년동안 정념정행하면서 중생을 구도한 일부 경력과 체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1. 압력을 무릅쓰고 견정한 정념으로 진상알리기

내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정부에서 연공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여 하지 않는가? 정부는 이 몇 십 년간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는가. 나는 그들을 위해 연공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이 기간에 어떤 사람은 불교에 들어갔으며 나를 데리고 불교를 배우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견정하게 대법 중에서 수련했으며 법공부와 연공을 종래로 중단한 적이 없었다. 나는 단지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었다. 사부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심을 느꼈으며 종래로 고독하고 적막함을 느끼지 못했으며 반대로 자신이 매우 충실하게 느껴졌다.

‘7.20’ 사악한 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직장 상사들은 나더러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으며 나더러 ‘적발’하게 했다. 나는 쓸 것이 없다고 했다. 상사는 신문에 나오는 대로 베껴 쓰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신문에서 어떻게 거짓을 조작해내고 어떻게 모함 했는지 이야기했다. 나중에 나는 딸의 집에 가서 손주를 봐주었다. 공안이 딸집에 와서 나더러 북경에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였다. 직장의 한 동료는 매년 1만 원에 달하는 의료비를 썼지만 출근할 수 없었다. 나중에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가 좋아졌으며 한푼의 의료비용도 쓰지 않았고 매일 제때에 출근할 수 있었으며 열심히 일하여 우리 직장의 노동모범이 되었다. 나는 많은 외국사람, 홍콩 사람들도 연공한다고 알려주었다.

사악한 당이 분신자살을 날조한 후 나는 다시 한 번 직장에서 여행가는 기회를 이용해 국장, 과장으로부터 일반 간부동료 모두에게 ‘천안문분신자살’위조사건 진상을 이야기하고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또 사부님의 자비와 북경에서 매우 많은 노인 환자들의 병을 봐주신 신기한 일화 등을 이야기했다.

며칠 동안 여행하면서 온 직장의 동료들이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공안이 또 우리 직장의 책임자를 찾아와 자신들에 협조해 나를 찾으려 했을 때 직장 책임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집에 잘 있는데 당신들은 그 사람을 찾아 뭘 하는가? 당신들은 나쁜 사람을 잡지 않고 왜 전문적으로 좋은 사람만 찾는가?”

공안들은 흥미를 잃고 떠났고 그 후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2. 교란을 제거하고 지혜롭게 자료점을 건립하다

나는 처음에 손으로 진상자료를 베껴 썼다. 후에 복사 용지로 복사해서 썼다. 쓴 후에 보기 좋은 붉은 편지지에 넣은 후 위에 “(이것을)얻으면 연분이고 보시게 되면 복이며 마음을 기울여 보시면 진정한 복이고 전달해서 보시면 복 중의 복입니다.”라고 썼다.

나는 기관에서부터 학교, 공안국에서부터 검찰원까지, 도시에서부터 농촌까지 자료를 배포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마음만 있었다. 반드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으며 사부님께서 바로 내 신변에 계신다고 느꼈으며 사존의 보호가 있어 ‘두려움’은 나의 마음속에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다. 후에 동수들로부터 일부 진상자료와 cd를 얻게 되었는데 시디로 진상하면 정말 좋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보자마자 명백해졌다. 이리하여 나는 cd를 제작하고자 했다.

cd를 제작하려 하자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나는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른다. 예전에 컴퓨터를 만져보지도 못하였다. 더욱이 프린트하고 복사하는 것은 말할 수도 없었다.

컴퓨터를 사자면 남편이 동의할지 알 수 없었고 컴퓨터를 사면 누구를 찾아가서 배울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곤난은 매우 많았다. 대법제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반드시 사기로 결심했으며 반드시 배울 수 있다고 견정하게 믿었다.

어느 날 나는 남편이 카드 놀이를 하는 틈을 이용해 돈 만원을 들고 차를 타고 백킬로 넘게 떨어진 시내 컴퓨터 상점에 가서 컴퓨터를 보았다. 낡은 것은 사고 싶지 않았다. 고장 나면 수리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것을 골라서 샀고 파는 사람에게 사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컴퓨터를 사서 집에 오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 오늘 어디 갔다가 이제야 집에 들어와?”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친구 집에 가서 컴퓨터를 배우고 친구 컴퓨터를 가져왔어요.” 남편이 말했다. “우리 집에는 인터넷 선도 없는데 어떻게 인터넷을 연결하려고 그래?” 나는 말했다. “친구가 cd를 다운받아 주었는데 컴퓨터를 켜면 더 훌륭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훌륭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어요. 친구가 그러는데 만약 이 컴퓨터가 쓸만하면 아주 싼 값에 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당신하고 상의 드리는데 돈을 주실 수 있어요.”

내가 웃으면서 반 농담조로 그에게 말했고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

이렇게 컴퓨터는 우리 집에 안착되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넣었다. 사용할 때는 상자를 열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잠가놓았다. 하루는 남편이 모처럼 들어와서 보더니 말했다. “엉? 이렇게 작은 컴퓨터가 있어?” 그는 cd-rw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는 말했다. “맞아요. 당신은 정말 총명해요.” 그는 컴퓨터를 보더니 말하였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은 무엇으로 화면을 보지?” 나는 말했다. “당신은 못 알아보실 거에요. 당신이 볼 줄 알면 배워서 뭘 하겠어요?” 그는 할 말이 없자 몸을 돌려 갔다. 집에서 자료를 제작할 때 나는 자료를 제작하는 한편 법을 암송했다. 뿐만 아니라 읽는 소리도 매우 컸다. 남편은 내가 책을 읽는 것을 보고는 방에 들어와 나를 교란하지 않았다.

내가 컴퓨터 가게에서 조금만 배웠고 당시 그는 내게 4배속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정도 속도로는 하루에 20장 정도 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매우 느리게 느껴졌다. 마침 난처해할 때 사부님의 보호 하에 무의식 중에 컴퓨터를 아는 외지 수련생을 찾았다. 그의 도움 하에 나는 하루 몇 십 장을 더 제작할 수 있었다. 내가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정진함에 따라 심태도 더욱 안정되었으며 정념도 더욱 강해졌다. 양호한 심태와 강대한 정념은 시디를 제작하는 데도 자연히 쉽고 자유로워졌으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제작해놓은 시디에는 작은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이것은 사회에서 볼 수 없는 뉴스입니다.” 자신이 제작하고 자신이 배포했다. 어떤 때는 자료점에 가져가 동수들더러 배포하게 했다. 이렇게 일 년 동안 대략 몇천, 몇만 장을 만들었다.

대법의 용련(熔煉) 중에서 사부님의 자비하신 감화 하에 수련하는 제자로서 나는 모르던 데로부터 알게 되었으며 낯선 데로부터 익숙해졌다. 비바람속에서 나는 사부님과 법에 대한 바른 믿음에 의거해 진정으로 성숙을 향해 걸어갔다. 이 몇 년 간 나는 시디를 몇만 장 제작했다. 모두 나의 퇴직금과 저축을 사용한 것이다. 나는 단지 나의 노력이 보다 많은 세인을 일깨워주길 희망했다.

3. 정념정행하여 진상을 알리면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다

2005년 여름 한번은 수련생이 함께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백여 부의 소책자와 백여 장의 cd를 갖고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마을마다 모두 배포했다. 본래 원래 길로 되돌아가려 하다가 수련생이 말했다. “앞으로 걸어가면 공공도로와 매우 멀고 걷기에 좋은 길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돌아가려 하였다. 방금 공공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뒤에서 불렀다. “그들은 파룬궁이다. 그들은 파룬궁이다!”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빨리 앞으로 가세요. 내가 그들을 대처할께요.” 수련생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갑자기 몸을 돌려서 큰 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은 왜 소리를 지르는가? 파룬궁이 뭘 어쨌단 말인가? 파룬궁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그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외쳤다. 단번에 그 배후의 사악이 놀라 도망갔다. 그는 멍해 있더니 풀이 죽어 떠나갔다. 만약 당시 나의 정념이 강하지 않아 두려움이 있어서 달아났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區) 정부와 2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현지에서 몇 명의 동수들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된 후 정념이 부족하여 도망치려하다가 사악에게 납치당해 박해받았다. 우리는 이번에 끝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놀라움은 있어도 위험은 없이 집에 돌아왔다.

2007년 5월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로 부임한 ‘610’주임은 내가 알고 있던 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부모도 알고 있었다. 나는 직접 ‘610’주임의 집을 찾아갔다. 당시 그 본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그의 부모를 만나 진상을 알렸다. 진상을 이야기한 후 그들에게 ‘풍우천지행’, ‘탈당물결’, ‘천년예연’ 등의 시디와 여러 종류의 진상 소책자를 주면서 반드시 다 보라고 알려주었다. 이것은 아들의 생명에 연루되는 문제이다. 그때부터 우리 고향에서 다시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동수들이 정체적으로 승화하여 현지 ‘610’인원 및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린 것이 원인이다.

4. 곤난을 돌파하고 심성을 제고하며 수시로 도처에서 진상을 알리다

2005년 8월 아들에게 몇 번이나 전화가 와서 우리더러 성(省) 수도에 이사가 살라고 했다. 남편도 가겠다고 동의했다. 나도 방법이 없어서 단지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매우 순조롭게 하던 일이지만 지역이 바뀌면서 번거로운 일도 많아졌다. 나는 매일 아들 가족에게 밥을 해주어야 했다.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cd를 만들고 자료를 배포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온 집안일을 나 혼자 부담해야 했다. 나는 집안일을 하는 한편 cd를 제작했다. 어떤 때는 티비를 이용해 cd를 검사했다. 나는 집에서 마치 채플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장의 cd를 켜놓고 급히 요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cd를 놓고 밥을 했다. 집에서 걸을 때도 달음박질을 했다. 자료를 배포할 때 나는 매일 아침에 채소를 사서 자료를 갖고 주택지, 학교, 기관에 가서 배포한다. 배포한 후 야채를 사서 집에 돌아온다. 집안일은 매일 9시 되어야 다 끝난다. 이때 나는 또 ‘명혜주간’ 등의 자료를 본다. 밤 11시에 정공을 하고 12시에 발정념 한 후 잠을 잤고 아침 3시 반이면 일어나 동공을 연마한 후 법공부를 했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갔다.

하루는 내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 집안일을 너희가 좀 도우면 안 되겠니?” 말한 것이 좀 듣기 좋지 않았는지 며느리는 말을 들은 후 밥공기를 내려놓고는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렸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화가 났다. 이런 말도 듣지 못하는가? 나는 아들에게 마누라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였다. “어머니, 불광이 널리 비치는 것은 어디에 갔습니까?” 그의 이 말은 단번에 나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아들의 입을 빌려 제자를 일깨워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인으로서 내가 어찌 이 일을 이렇게 대한단 말인가. 이튿날. 나는 주동적으로 며느리를 찾아가 의견을 교환했다. 며느리는 내가 직접 찾아가자 매우 미안해했다. 급히 나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나는 말했다. “얘야. 내가 성질이 나빠서 어떤 일은 젊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나와 의견이 같을 필요는 없으니 나한테 무슨 의견이 있으면 말하거라. 내가 고칠 것이다.” 그러자 며느리가 말했다. “저는 아무 의견이 없습니다. 어제 직장상사가 너무 까탈스럽게 구는 바람에 기분이 나빴는데 집에서 또 잔소리를 듣고 화가 난 것입니다.”

나는 또 말했다. “얘야, 네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애들 교육 잘 시키는 것이 네 책임이다. 이 집을 잘 관리하면 된다.” 결국 그녀는 출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 피곤하실 텐데 우리 같이 식사하러 가요” 나는 말했다. “그렇게 해도 좋다. 이번 일요일에 모이도록 하자.” 그녀는 기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일체 마난은 모두 심성 제고 중에서 해체되었다. 나는 단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었다.

나는 집에서 5년 동안 cd를 제작했다. 가족들은 지금까지 간섭하지 않았으며 남편도 내 돈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내가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온 것은 정념에 의거한 것이며 시시각각 사부님의 가르침을 잘 기억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중생들이 구도되는 유일한 희망이다.”

작년부터 올해 수갑올림픽이 가까워지자 사악한 당은 소위 ‘올림픽’ 안전이란 깃발을 들고 우리 대법제자들을 미친 듯이 박해했다. 수련생이 납치된 소식을 듣자 어떤 수련생은 긴장했고 힘겹고 고통스러워하며 수련생이 자신을 말할까 봐 감히 집에서 나와 진상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 삼퇴를 권하는 일도 적어졌다.

나는 동수에게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은 당신에게 무슨 위험이 되지 못하며 이것도 관리하는 이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邪)는 정(正)을 이기지 못하며 마는 영원히 도보다 높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악한 당이 미친 짓을 하는것은 그것이 사면초가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세인을 기만할 수 있을뿐 대법제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작용도 없다.

올해 1월 19일은 바로 사악한 당이 비밀리에 명령한 날이었다. 나는 다른 성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올해는 딸의 집에 가서 설을 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아침 일찍 떠났다. 딸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현지 동수와 연락했다. 현지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는 자료가 있는데 배포할 사람이 없습니다. 수련생이 납치당했기 때문에 매우 많은 동수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 매우 괴로웠다. 내가 이 낯선 지방에 와서 진상하려면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려 하자 동수의 말을 듣고는 좀 난처하였다. 큰 도시이기 때문에 매 주택지마다 모두 경비가 있으며 도처에 모두 순찰하는 경찰과 경찰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 직면하여 나는 그만두려고 생각했고 돌아가서 다시 배포하려 했다. 이 일념이 생기자 나는 즉시 그것을 부정하였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사람의 관념이 있으면 안 된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다. 어디에 가든지 모두 같다. 여기의 중생은 구도되기 기대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 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곳의 사악의 미친 짓은 나에게 아무런 위험도 될 수 없다.

그곳에 간 사흘째, 나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한 주택지에 도착해 28층 집에서 아래로 배포할 때 마음이 매우 안정되지 않았다. 10여 층 배포하자 더 배포하고 싶지 않았다. 이 며칠 돌아가서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잘하여 마음이 안정된 후에 다시 배포하려 하였다. 나는 즉시 일념을 잡고 안을 향해 찾았다. ‘왜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까? 곧 설이 다가오는데 아들들이 모두 여기에 와서 설을 쇨 것이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집에 사람들은 어찌하겠는가.’ 바로 두려운 마음과 사심(私心)이었다.

이 사심은 바로 모든 생명의 가장 완고한 매듭이다. 설 며칠 전 매일 『전법륜』을 제외하고 사부님의 신경문을 읽었다. 사부님께서는 2000년 10월 21일 『미국서부법회설법』중에서 말씀하셨다. “한 수련하는 사람은 수련과정 중에서 줄곧 최후에 이를 때까지 당신에 대한 근본 고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나더러 시험지를 바치라는 것으로 사부님과 법에 대해 견정하게 믿는 정도를 보는 것이다. 나는 한 대법제자의 책임감과 사명감 중생구도의 긴박감은 모두 한 사람이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는가 하는 가운데 그의 진실한 일면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설날이다. 아이들은 모두 관광지에 놀러 갔다. 나는 “너희들은 모두 가라,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가지 않자 “대법의 복음을 관광지에 가져다줘야지.” 이것은 마치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어 말씀하신 것 처럼 나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가겠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백여 부의 자료를 들고 갔다. 대부분은 소책자와 ‘구평’ cd였다. 초하루가 되기 며칠 전 나는 동수에게서 가져온 자료를 서로 배합시켜 놓고 성의껏 자신이 주머니에 잘 포장하여 만든 것을 때가 되면 합리적으로 사용하려 하였다. 한 곳, 한 아파트 안에서 같은 진상자료를 배포하지 말아야 한다. 배포할 때는 언제나 세인들이 가져가기 쉽고 편리한 각도에서 고려해야 하며 순정한 심태로 매 하나의 마디와 사소한 부분에 주의해야 한다.

공원에 가자 아이들은 사람이 너무 많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돌아가려고 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혼자 남아 좀 놀다가 너희 아버님이 돌아오시면 함께 돌아가겠다.”(남편이 탄 차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세인들더러 나의 존재롤 보지 못하게 했으며 나를 은폐시켜 달라고 빌었다. 나는 이 진상자료를 배포해야 하며 이곳의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나는 손에 있는 자료를 걸어가면서 배포했다. 어떤 것은 공원의 의자 위에, 화분 위에, 나뭇가지 위에 배포했다. 오직 자료를 놓기 쉬운 곳이거나 세인들이 발견하기 쉬운 곳이면 나는 모두 배포했다. 사존의 보호 하에 나는 정말로 은신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전혀 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침 또 문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말했다. “내가 당신을 가릴 테니 배포해.” 나는 남편과 함께 걸어가는 한편 자료를 놓을 자리를 찾았다. 이렇게 가져간 자료를 모두 배포했다. 이 정월 초하루는 정말이지 상서로운 시작이었다.

이런 좋은 출발이 있은 후 나는 그날부터 아이들이 해변가를 가거나 주점, 찻집, 상점, 슈퍼, 관광지에 가자고 하면 하나도 빠짐없이 가곤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모두 구도해야 할 중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출근한 후 오전 9시가 넘자 나는 혼자서 주택지에 왔다. 이 시간에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출근한다. 현재 여자들은 모두 큰 핸드백을 메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딸보고 하나 사달라고 했다. 낮에 이 가방을 메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주택지에 가면 마치 친지를 방문한 것 같다. 손에는 옷이나 우산을 드는데 이렇게 하면 옷으로 손에 든 자료를 가릴 수 있었다. 나는 왔다갔다 하면서 아파트에서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30여동의 아파트에 모두 자료를 배포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오후 2시가 넘으면 나간다. 그것도 자료를 배포하는 좋은 시간이다. 밤에 나와 남편은 함께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포장해놓은 자료를 자동차 와이퍼 앞에 놓는다. 간혹 거리의 경찰차와 순찰 오토바이가 뒤에서 스쳐지나 가거나 혹은 앞에서 온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묵념했고 사부님께서는 마치 내 곁에 계신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단지 사람을 많이 구도하고 싶었다.

인근의 주택지에 나는 모두 배포한 후 차를 타고 좀 멀리 떨어진 주택지에 가서 배포한다. 한 자료점의 자료로는 부족하였다. 나는 또 다른 한 수련생을 찾아서 가져오게 하였다. 매 주말마다 모두 이렇게 하였다.

한번은 손주가 병이 나서 병원에 갔다. 나는 당시 병원에도 자료를 배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병을 볼 때 나는 그의 책상 위에 한 부를 놓았다. 소아과 진료소, 한의 진료소, 양의 진료실, 방사선과, ct실에도 나는 모두 방법을 찾아 자료를 보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도되도록 하였다. 진료실이나 입원실은 일반적으로 아침 8시에 가면 가장 좋다. 왜냐하면 마침 의사들이 교대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매우 많은 병실이 열려 있지만 사람이 없다. 이것은 바로 자료를 배포하는 좋은 시기이다. ‘구평’책자거나 cd거나 모두 그들의 서랍에 넣는다. 오직 우리가 하려는 마음이 있고 마음을 써서 하면 수시로 어디에서든지 모두 우리더러 허다한 기연을 발견하게 한다. 정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공은 사부에게 달려 있다.” 나는 그 지방에서 네 곳의 큰 병원에 자료를 배포했다. 원래 나는 딸집에서 한달 정도 묵으려 했지만 그곳의 중생을 위해 2개월간 있었다. 자료를 배포할 때 점으로부터 면에 이르기까지 분포 상태와 방식에 주의해야 한다. 한곳에만 국한시켜 배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쉽게 보안에게 발각되며 자료가 쉽게 몰수당한다. 중생도 진상자료를 볼 수 없게 되며 구도되지도 못한다.

이런 것을 써내는 것은 단지 동수들과 교류하여 서로 참고가 되고 공동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성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올해 『문안』중에서 말씀하셨다. “정법은 반드시 성공하고 대법제자는 반드시 원만한다.” 나는 자주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대법제자의 칭호에 자격이 있는가? 세 가지 일을 신의 마음으로 했는가 아니면 사람마음으로 했는가? 수련의 길에서 나는 대법정체에 대해 원용했는가? 가족들에게 자비롭게 대했는가? 시시각각 사존께서 말씀하신 선타후아 무사무아의 정념정행으로 세 가지 일을 잘했는가 아니면 자신의 원만을 구하기 위해 했는가?’ 나는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워주며 정법의 길에서 유감을 남기지 않으려 한다.

나는 능력이 있고 조건이 있는 동수들이 기다리지 말고 의거하지 말며 자아의 속박을 돌파할 것을 희망한다. 우리들로 하여금 법을 얻은 일면, 신의 일면으로 자신을 이끌어 강대한 위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우리 사존의 자비심을 저버리지 말고, 중생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며, 노력하여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잘 완수하고 하루빨리 이 사악한 박해를 제거하고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도록 하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6월 1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minghui.org/mh/articles/2008/6/17/1804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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