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6월 7일】 오늘 명혜망에서 동수의 문장 ‘사람을 구하는 것이 다급하니 다그쳐 일사일념을 바로 잡자’, ‘두려운 마음을 해부함’을 읽은 후 너무나 깊은 계발을 받았다. 나는 평소 비록 정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어도, 늘 작은 물건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늘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게 일할 수 없었으며, 은근히 사람이 볼까 두려워했고,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는 이런 마음이 있었다. 오늘 나는 단번에 문제의 근본 원인을 붙잡은 것 같다 ㅡㅡ나는 여전히 자신을 속인으로 여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기개가 없고 장래성이 전혀 없는 속인으로 보고 있었다. 사부님의 요구대로 자신을 한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더욱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 보통 속인이라면, 국가 통치자가 무도하고 잔혹할 때면 안전을 위하고 생활을 위하며 가족을 위해 울분을 참고 죽어지낼 수 있으며, 양지를 묻고 통치자의 노역과 혹사에 순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대혁명’ 시기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양심을 잃고 서로 팔아먹으며 알력으로 자신을 보호한 원인이다. 물론 역사상 적지 않은 영웅호걸들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공정한 말을 했으며, 심지어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았다. 예를 든다면 송나라 때의 판관 포청천은 황제 친척들의 협박과 회유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의 일을 처리해 주었다. 남송 말기의 문천상(文天祥)은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편단심을 남겨 청사에 길이 남았다.’ 맹자는 ‘사생취의(捨生取義)’, ‘빈천(貧賤)하다고 하여 마음을 움직이 않고, 부귀에 현혹되지 않으며, 위무(威武)에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뜻은 바로 가난하다고 하여 의지를 굽히지 말아야 하며, 부귀를 탐내 자신을 방임해서는 안 되고, 잔혹한 무력 앞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이 몇 마디 말은 우리 중화민족의 전통문화중에서 ‘기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이며, 또한 사람이 되는 기본적인 도덕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속인 중에서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인이기에,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초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므로 마땅히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
한 속인이 만약 사악한 당이 정한 사법(邪法)을 위배한다면 사당은 이것을 근거로 당신을 박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속인이 아니라 수련인이다. 우리에 대한 박해도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가 아니라 다른 공간의 사악이 사당을 조종해 정법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씬씽에 누락이 있고, 우주대법에 위배되는 일을 하거나 또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지 못할 때에만 비로소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바르게 걷고, 정념이 강하며, 우주대법에 따라 일을 한다면 사악이 당신을 박해하려 해도 감히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법제자 자신은 이미 아주 큰 신통 법력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정념이 있기만 하면 완전히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에겐 사부님께서 계시고 무수한 정신(正神)들이 있으며, 매 대법제자 주변에는 또 호법신(護法神)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국가의 법률을 준수해야 하지만 한 속인으로서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해 수련하고 있으므로 인간 이 한 층에서 법의 표현을 수호하는 것이지, 속인 중의 법률이나 법규에 제약되는 것이 아니다. 중공 사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그 자체가 법에 위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의 이 일면이 중국 공민으로서 사당이 제정한 공민의 신앙자유, 인신자유를 침범하는 사법(邪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정정당당한 것이다. 이럴 뿐만 아니라, 인성을 위배한 일체 규정과 천리를 위배한 일체 규정, ‘眞善忍’을 위배한 일체 규정은 모두 우리가 준수할 것이 못 된다.
안으로 찾아보면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고 ‘규칙에 따라서 행하려는’ 요소도 있다. 어릴 때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좋은’ 학생이었고, 커서는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있으며, “주인의 뜻대로 일을 하는” 사회풍조의 영향을 받아 지도자의 의도를 거슬러 눈 밖에 날까 두려워했다. 많은 경우 지도자가 옳지 않게 했다 해도 뒤에서만 말할 뿐이며, 지도자가 알면 곤란한 처지가 되므로 두려운 마음이 더욱 중해졌다. 어쩌다 지도자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 더욱 두려워 지도자를 보는 것도 무서워했다.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는 담력이 없어 마치 사람으로 된 것이 지도자의 인정을 얻기 위한 것 같았고, 마치 사람이 되는 준칙이 바로 상급, 선배나 타인의 관념인 것 같았으며 불변의 고유한 도덕규칙이 아니었다. 이처럼 두려운 마음은 사실 사당이 어릴 때부터 주입한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곧 무엇을 한다”는 당문화(黨文化)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일체 집착을 내려놓는 대법도(大法徒)이며, 일체 속인의 이치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신우주의 생명이며, 사부님께서 관할하고 계시기에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자격이 없다. 두려운 마음이란 이 껍질을 제거해 버리고 사람에서 철저히 뛰쳐나와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신이 사람 가운데 있’는 수승함과 위대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정당당하게 아무 거리낌 없이 미혹속의 중생을 자비롭게 구도하면서 최후의 길을 잘 걸어 가도록 하자.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6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6/7/1797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