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8년 6월 8일】 최근, ‘7.20’ 이전에 법을 얻은 노 동수 몇 분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어떤 동수들은 병업이 비교적 중하게 표현되어 몇 번이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어떤 동수들은 ‘명혜주간’을 보지 않으며 이미 반년 가까이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 박해가 처음 발생했을 때 이 동수들 중 어떤 이들은 내심에서 우러나와 자아를 내려놓고 생명을 돌보지 않으며 진상을 알렸다. 어떤 동수들은 일찍이 태연하게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좋지 않는 상태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
우선 우리는 관용해야 한다. 수련인이라면 누구나 다 잘못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이 어느 한 시기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는 것 역시 정상적인 것으로 우리 주위 동수들도 우선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노 동수이니 마땅히 앞에서 걸어야 하며 마땅히 정진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코웃음 쳐서는 안 된다. 수련은 선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수련을 잘하고 못하고도 선후에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동수의 문제를 보았을 때 자신에게도 유사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내가 어떻게 그를 도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다음, 나는 그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했는데 수련 기연(機緣)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기에 정진하려는 의지를 느슨히 했고 안일한 마음을 방종했으며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지 않고 수련에서 위로 향상하려는 의식이 없어 조성된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비록 이미 10년간 수련했고 지금은 퇴직하여 집에 있기에 시간도 충분하다. 그러나 기껏해야 한 강을 공부하는데 많이 보면 눈이 아프다는 것이다. 아마 70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들을 놓고 말하자면 눈이 아프면 확실히 불편하긴 하다. 그러나 수련인으로 놓고 말하면 이것은 당면한 고험이며 내려놓아야 할 집착이다. 아픔을 두려워하는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보는 것을 견지한다면 곧 이 상태를 돌파할 수 있으며 나중에는 아무리 오랫 동안 책을 보아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이 문제에서 직접 겪은 체험이 있다. ㅡ ㅡ 나는 본래 책을 보는 시간이 좀 길어지기만 하면 눈이 몹시 아팠고 심지어 눈만 아픈 것이 아니라 격렬한 두통에 메스꺼움까지 동반했으나 오직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계속 견지하여 보니 곧 아프지 않게 되었다. 수련인은 나이가 많다고 노화되는 것이 아니니 법공부에 노력을 기울이고 힘을 들이며 힘든 것과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동수들은 병업관(病業關)속에서 맴돌고 있다. 그들 자신은 “이것은 몇십 년 동안 된 고질병이다”라고 하거나 혹은 “다른 병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병만은 정말 고통스럽다” 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이런 말을 할 때 이 자체가 이미 병이며 또 이 병의 완고함과 심강성을 인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것을 이미 승인한 후 다시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니 그 효과가 좋을 수 있겠는가? 수련인에게는 에너지가 있다. 아마 일정한 층차 중에서 일념이 나타나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만약 병업이 우리 자신이 구해 온 것이라면 우리 자신이 이를 강황한 것으로 당신이 부정하지 않는데 그것이 어찌 소멸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제때에 관념을 전변해야 하며 자신에게 정확하지 못한 관념이 있음을 발견하기만 하면 즉시 부정하고 배제해 버려야 하며 관념을 전변하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매번 이런 관념이 반영되어 나올 때 이것은 수련인의 정념이 아니며 주의식이 아니고 사상업의 반영이자, 바르지 않은 염두, 망념임을 똑바로 인식하고 우리 모두 내심으로부터 “나는 이것을 고질병라고 승인 하지 않으며, 나는 그 어떤 박해도 부정하니 너는 즉시 떠나야 하며 수련인을 교란할 수 없다.”라는 정념을 발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병업이 제거되고 아프지 않을 수 있다 .
어떤 동수들은 본래 담이 작아 자기 집의 전화가 감시 당한다고 생각하고는 더는 ‘명혜주간’을 보지 않으며 진상을 알리는 것도 포기해 버렸다. 사실 진수(眞修) 동수들은 모두 당신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압력 속에서, 심지어 너무나도 고통스런 몸부림 속에서 걸어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안전을 보증하는 전제 하에 여전히 ‘명혜주간’을 보아야 하며 여전히 진상을 알려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혼자 수련해도 제고할 수는 있지만 네비게이션이 없고 단체 환경을 떠났기 때문에 제고가 늦고 학습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환경이 없기에 자신의 부족을 보아내기가 몹시 어렵다. 진상을 알리는 것도 잠시 능력을 헤아려 행할 수 있으며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하지 않는다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지 않는 것이며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걷는 것이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곤난을 극복해야 한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당신은 막후의 일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우편주소나 인터넷 주소를 수집하는 등이다. 물론 여전히 마음에 공력을 들여 자비심을 수련해 내야 한다. 당신의 마음이 진정 중생에 대해 자비로울 때면 진상을 알리는 지혜 역시 샘 솟을 것이며 길도 갈수록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한 치의 시간은 금과 같고, 금으로는 시간을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시간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에 정력을 쏟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10년을 수련했는데 매일 한 강을 보고 한 항목의 진상을 알리며 일년에 하나의 집착을 내려놓았다고 하자. 반면 다른 한 사람은 5년간 수련하면서 매일 3강을 보고 매일 10항목의 진상을 알리며 한 달에 하나씩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그들이 동시에 수련을 끝낼 때 누구의 수확이 더 많겠는가? 수련이란 얼마나 대가를 치렀으면 그만큼 얻는 것이지 수련의 선후와 나이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누가 수련하면 누가 얻는 것으로 여기서 노년 동수들이 반드시 만겁에도 없을 이 기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진정으로 정진하기를 희망한다.
아마 모두들 이런 감수가 있을 것이다. 신변의 일부 동수들은 결코 총명하고 지혜롭지 않으며 담도 아주 작다. 하지만 그들의 수련 상태는 줄곧 괜찮은데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들이 오랫동안 꾸준히 나아가면서 법공부를 했고 안을 향해 찾으며 엄격하게 집착을 버리고 제때에 관념을 개변한 데 있다. “나약한 사람이 분발하면 용감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사려하면 지혜로운 사람과 식견을 같이 할 수 있으며 기교가 서툰 사람이 능히 힘쓴다면 기교가 있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최돈예(崔敦禮)의 『추언(芻言)』]
그러므로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비록 근기의 좋고 나쁨이 있고 오성이 높고 낮음은 있지만 관건은 여전히 수련하는데 마음을 기울이는 정도에 달렸다ㅡㅡ근면함은 서툰 것을 보충할 수 있다. 매우 많은 동수들은 시간과 다투면서 분초의 시간도 아껴 법공부를 하며 수련하는데 이 역시 그들이 진보가 빠르고 제고가 빠른 원인이다.
미혹의 세계에서 몸 담고 수련하기에 사람의 타성,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등은 그 자체가 사람의 의지를 갉아먹는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정념으로 망념(妄念)을 억제하지 않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사람의 무지에 떨어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정진하는 매우 많은 동수들은 모두 목표를 정하고 자신을 관리한다. 예를 들면, 하루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두 시간 이상 법공부를 한다거나 단체 연공에 참가한다거나 일주일에 얼만큼 진상을 알린다는 등이다. 이렇게 장기간 견지한다면 수련이 조리 있어 문란하지 않으며 매우 착실하게 될 것이다.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바로 자신이 정진하도록 독촉 하는 동력이 될 것이며 목표의 달성은 수련의 신심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외적인 핍박과 억지로 가한 동력에 의거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사람을 원만하고 성불할 수 없게 한다. 오직 내재적인 자기 마음의 제약만이 비로소 사람으로 하여금 승화할 수 있게 하며 착실하게 수련을 견지 하는 것이 바로 고험이다 .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학습하도록 하자
“대법의 전통을 유지하고 대법의 수련원칙을 수호하며 착실히 수련함을 견지함은 매 한 대법제자의 장기적인 고험이다 .” (『정진요지』「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고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자」) 우리 모두가 법공부에 노력을 기울이며 마음을 조용히 하고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등의 경문을 학습할 것을 희망한다.
문장발표 : 2008년 6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6/8/1798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