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랑팡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6월 10일] 우리 모두 이런 체험을 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사람 마음을 자극하거나, 혹은 사람 마음이 반영되어 나와, 버리려 해도 참으로 어렵고 , 뻔하지만 버리기 어렵다걸….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아내와 아주머니(속인)사이에 모순이 생긴 적이 있었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아주머니가 뒤에서 어떠어떠하게 그녀 흉을 봤다고 하면서 불평하면, 나도 같이 불평을 했다. 우리는 아주머니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다. 쌀도 빌려 주고 돈도 빌려 주었으며 밭 농사도 그저 해 주었는데 왜 우리를 나쁘다고 말하는가? 화가 치밀어 한바탕 그녀를 꾸짖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야, 이건 그녀에게 빚을 진 것이니 괜찮다고 해도 마음을 버리긴 어려웠다. 생각하기만 하면 화가 치밀어 늘 제대로 넘어가지 못했다.
한 동안 지난 후 나는, 이대로 나가다간 안 되겠어, 나는 대법제자야, 내가 이렇게 하면 대법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고, 또 그녀가 나 때문에 대법을 미워한다면 이건 큰 일이다, 그건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그녀가 대법을 미워하고, 그녀가 또 그와 사이좋은 사람에게 말한다면 그 사람이 또 대법을 미워 할 것인데 그러면 그 사람도 도태될 것이 아닌가? 그럼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 안돼, 난 그녀한테 가서 사죄 해야겠어! ”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때 나의 마음은 아주 상화롭게 변해 불평 부리던 사람 마음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나는 아주 놀랍고 궁금하기도 했다. 방금까지 화가 나서 펄펄 뛰었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사과를 하려는 것일까? 좀 더 일찍 사과했더라면 일찍 해결했을 거고 이 사람 마음의 교란도 이렇게 며칠동안 받지 않았을 텐데. 왜 이전에는 사과할 생각을 못하고 갑자기 오늘 생각이 떠 올랐을까? 그러한 의문은 오늘에야 해결이 되었다.
아주머니를 불렀을 때 그녀는 내가 꾸짖을 것 같아 집안에 들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사과하려고 아주머니를 불렀어요, 모두 우리 애 엄마가 잘못 했어요, 소견이 좁아 남의 말을 가로막고 좋은말 나쁜 말을 가릴줄 몰라요, 나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제 때에 해결하지 않아…… 아주머니는 듣고 나서 온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쾌활하게, 에유,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요. 몇 마다 사과하자 모순은 일시에 눈 녹듯, 연기처럼 사라졌는데 그 기쁨이란 그지 없었다.
갑이라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한때 자료를 만들더니 그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사 일에만 바삐 보냈다. 한 수련생이 나에게 그녀가 하지 못하면 컴퓨터를 가져가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컴퓨터는 수련생이 산 것이지 그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에 나는 난처해졌다. 나는 천생 체면을 차리는 사람으로 남을 괴롭히는 말을 좀처럼 못한다. 늘 다른 사람이 내 말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컴퓨터를 직접 동수한테서 달라고 해서 그녀가 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수련생이 여러 번 재촉해도 찾아갈 수 없었다. 얼마 후 갑 동수의 상태가 더욱 나빠지기에 나는 수련생이 이렇게 된 것을 방임할 수 없다. 그건 수련생을 책임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동수에게 일이 생긴다면 중생을 구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법에 손해를 주게 되니 나는 법에 책임지고 수련생을 책임지며, 중생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 이런 깨달음에 이르자 사람의 정, 체면 같은 것이 죄다 옅어지면서 사라졌다. 나는 갑 수련생을 찾아 갔다.
을이라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2년 전에 자료를 만든 적이 있었다. 후에 일이 생기자. 자기에 대한 압력이 너무 큰데도 분담해 주려는 사람이 없다고 원망하면서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날 자료를 다시 만들겠다고 했다.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너무도 다망하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어,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바로 그에게 마땅히 걸어 나와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일깨워 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한 수련생은 예전에 《9평》을 만들다가 후에 하지 않았다. 일년이 넘은 후 갑자기 하겠다고 나섰는데, 그 당시에 그가 만든 9평이 질량이 나빠 사람을 구하는데 영향이 있다고 한 수련생이 있어서, 그는 불복하면서 내가 못 만들 것 같은가?라고 했다.
자료점에 나타난 문제와 관련하여 침통한 교훈이 있다. 2년 전 나는, 자료점의 두 수련생이 이미 폭로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의 정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옮기라는 말을 못해, 결국 사악에게 집 수색을 당하고 납치 되어 한 수련생은 5년 판결을 받았고 한 사람은 사오하게 되었다. 그 시기가 나의 수련의 길에서 가장 괴로운 날들로서 나는 자책과 고통 속에서 흘린 눈물이 얼마였는지 모른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넌 무엇 때문에 동수에게 옮기지 못하게 했느냐, 만약 옮기도록 했더라면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꼭 원인을 찾고야 말리라는 맹세를 하였다. 오늘 찾지 못하면 그건 내가 아직도 자신을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장차 나는 꼭 찾아낼 것이다. 일년이 넘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책임감, 수련생을 위해 책임진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통스런 경험을 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동수들이 사악의 잔혹한 시달림을 받으며, 생명을 잃게 되면서 나는 심심히 깨닫게 되었다. 오직 우리에게 시시각각 법을 위해 책임지고,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며, 중생을 위해 책임지는 의식이 있어야만 우리의 길을 온당하게 잘 걸어 갈 수 있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그래서 병 수련생이 나에게 을 동수에게 자료 만드는 일을 시킬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나는 ‘그의 출발점이 바르지 않다, 사람을 구하려는 긴박한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감정으로 일을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에게 허락한다면 후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우리는 동수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동수에 대한 책임은 바로 법에 대한 책임이고 중생에 대한 책임’이라고 했다. 그러자 병 수련생이 하는 말이, ‘그가 하려면 하게 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못하게 막으면 그가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가!’라고 했다. 그래서 병 수련생은 을 동수에게 기계를 보내주고 이것저것 보내 주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을 수련생은 집에 없거나 문이 잠겨져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 속인이 놀러와 있었다. 나중에 병 수련생이 또 물건을 주려고 갖고 가던 중, 길에서 크게 넘어져 온 땅바닥에 물건이 흩어졌다. 병 수련생은 일어나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이건 사부님께서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만두자, 나도 할 만큼 다 하였다고 생각했다. 을 동수도 그때부터 자료 만드는 일을 제기하지 않았고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반년 후 610에서 을 수련생이 자료를 만든다고 의심하여 납치해 갔다.
이 방면에 대한 나의 체험은 아주 많다. 동수들에게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 된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직접 말해도 듣지 않아 포기하려 할 때, 마음속으로 난 꼭 당신을 구해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훼멸 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그 사람은 달통 되고 구원 받게 된다. 우리가 무슨 일을 넘기지 못할 때, 대법에 손해를 주지 말자고 생각하면 일은 지나간다. 우리가 편리함만 추구해서 동수에게 전화를 걸려 할 때, 동수에게 번거로움을 주어서는 안 되며, 수련생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전화를 놓게 된다.
이상, 나는 다만 설명하려 할 뿐이다. 우리가 한 가지 일에 직면하여 얼마나 복잡하고, 사람 마음을 버리기 얼마나 어렵던 간에 우리가 대법을 위해 책임지고,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며, 중생을 위해 책임짐에 따라 할 때, 사람마음은 어느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게 되며, 일도 아주 간단한 것으로 변해 버린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는 하나의 정확한 사상을 지도로 삼지 못해 곧 그렇게 끊어 버리려 해도 그리 쉽지 않다.” 우리가 사람 마음을 버리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사실 바로 우리에게 하나의 정확한 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확한 사상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어느 한 층차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며, 아울러 그 속에서 방황하고 좌우지되고 있으니 당연히 사람 마음을 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법을 위해, 수련생을 위해, 중생을 위해 책임진다는 것은 일종의 무사무아의 경지이며, 일종의 강대한 정념이며, 동시에 하나의 정확한 사상이다.
사람마음은 낮은 층차의 산물로서 낮은 층차의 사람을 좌우지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법을 위하여, 수련생을 위하여, 중생을 위하여 책임지는 이 정확한 사상이 있을 때, 우리는 곧바로 높은 층차에 있는 것이며, 낮은 층차의 사람 마음은 스스로 사라질 것이고, 대신하는 것은 자비이고 이지이며 지혜이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옳지 않는 곳은 동수께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6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6/10/1800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