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법 과정에 당신은 어느 정도의 심혈을 기울였는가

《7년 동안의 자료점 생활에 비추어 나의 수련 경력을 말해 보다》 를 읽은 소감

글/ 절강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5월 19일]
본 지역의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힘이 대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사부님 자비를 대하기 부끄럽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은 자료를 만들려 하지 않는데다가 사악의 박해가 더 해져 본 지역에 자료를 만드는 사람이 희소하고 또 협조마저 결핍한데 장장 이렇게만 나간다면 이 어찌 될 일인가 ? 어찌 이 지방 사람들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이 문장이 여러분을 불러 깨우치게 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다 .

《7년 동안의 자료점 생활에 비추어 나의 수련 경력을 말하다》(이하는 《자료점》으로 간칭)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부동한 견해를 말하였고 어떤 곳은 그야말로 표창이 하나뿐이 아니었다. 나도 여기에서 이 방면에 대한 문제를 좀 말해 보고자 한다.

재가 생각 하건대, 작자께서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력을 들여 3만자가 넘는 이 문장을 써냈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가? 자료점 수련생이 지불한 심혈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인가? 자료점 동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료점 수련생이 겪은 고생과 곡절을 기재하기 위해서인가? 사실상, 작자가 이 문장을 쓴 것은 작자 본인을 포함하여 그는 이미 한 손으로 사람을 붙잡고 한 손으론 대법을 붙잡고 있는 사람으로선 가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는 이미 남을 위하고, 무사하며, 정법 정각의 높은 각도에 서서, 우리 정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또 아주 준엄한 문제를 폭로하였는데, 바로 정법에 대한 심혈 정도와 생명 가운데 사를 위한 성분이다.

어떤 사람은 이 문장의 어투가 선하지 못하고, 자비가 결핍하다고 하는데, 작자는 대법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의 손목을 잡고 탄식하거나 우주 창생을 가엽게 여겼다고 말하기 보다 적절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한다. 나를 잊는 그런 경지, 중생구도를 위해 달갑게 감당하는 그런 무명 영웅은 사람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한다 .

정법에 기울인 심혈 정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상 기다리고, 의뢰하는 등이 산생되고, 주동이 아니라 피동적이거나 심지어 소극적, 혹은 체면이 두려워 기술을 배우는 척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자아 보호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득실을 법 실증과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중히 본다. 그러하기 때문에 자신은 자료를 만들 조건이 없다고 말하며, 따라서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조건이 좋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이런 문제는 우리 여기에서도 아주 두드러진다. 정체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본지의 중생구도의 국면이 시종 열리지 못하고 있으며, 진상을 알리는 사람이 적고, 자료를 배포하는 사람이 적으며, 자료를 만드는 사람은 더욱 적으나 도리어 본지 사악은 아직도 아주 창궐하다. 개체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다. 하나는 조건이 되는데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진상자료를 감히 집에 두지 못한다. 심지어 사부님 경문마저 집에 두지 못하는데 사악에게 “꼬리”를 잡힐까봐 두려워서이다. 셋째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아주 적게 한다.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들은 아주 억울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도 대법을 포기하려 하지 않으며, 그도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하라고 한 것은 세 가지 일이지 두 가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장래 빠뜨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환득환실하면서 자세하고도 주밀한 “안전”의 방비하에 그도 진상자료 배포 같은 일을 조금 한다. 하지만 수량과 차수는 아주 제한돼 있다. 그의 진상 알리기, 그의 진상 배포는 사실상 모두 그의 생명의 미래를 보장하는 기초에 세워 졌고, 생명중의 위사하는 성분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가장 뚜렷한 표현이 있는데, 그는 어느 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되었다는 말만 들으면 그의 머리 속에 움직이는 첫번째 염두가 “나하고 연루되지 않겠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의 두 번째 염두는 “그에게 누락이 있어 그가 잡힌 거야”, 혹은 “그가 정념정행하지 않았을 거다”이다 . 수련생이 잡힌데 대해 그는 심지어 냉담하고 마비돼 있다.

사실상 그는 속인 중의 “교활” , “총명”으로 자신의 한 가지 사람 마음을 보호하는 것을 “정념”으로 그릇되게 여긴다. 모 종의 각도로부터 말하면 사악은 바로 당신을 사람의 상태에 단단히 묶어놓고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제멋에 좋아하고 제딴에 청성하다고 뽐내지만 이 역시 일종의 교란이고 변상적인 박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들은 아직도 돌파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의 관념이란 바로, 내가 자료를 만들지 않거나 적게 만드는 것은 내가 꼬리를 잡혀 박해 받아 떨어지고 후에 또 엄정성명을 써서 자신에게 오점을 남기기 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참으로 속인식의 “총명”에 가로 막혔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모두 이런 상태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한데 뭉쳐 법에서 제고해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몇 년간 본 지역에는 걸어 나온 사람이 줄곧 그 몇 사람 밖에 안되었다. 바로 《자료점》문장에 제기된 것처럼, 이 몇 년간 정법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모두 예전의 얼굴들로서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서곤 하였으나, 걸어 나오지 못한 그런 이들은 지금까지도 아직 나오기 아주 어려워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도 “사”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인의 “이”와 “정”을 내려 놓지 못하였고, 줄곧 개인 수련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법 선두에 선 대법제자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는 것이란 바로 개체, 자아이므로 그가 찾은 것이란 단지 “일하려는 마음” 혹은 “법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는 등 모호한 개체 문제일 뿐, 법의 정체로부터, 정법으로부터, 중생구도의 각도로부터 문제를 사고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료점》 문장 작자의 폐부로부터 울려 나온 “사람을 울리는 그런 감탄”이 나타난 것이다. “끝없는 부처님 은혜를 어쩌면 다만 진정으로 정법시기에 걸어나온 대법제자만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죄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의 자비는 오직 진수 대법제자만이 비로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

우주가 재조직 되고, 무량한 자비와 끝없는 홍대한 은혜 속에서 사부님 따라 정법하는 가운데서 당신이 아직도 근본상에서 사람의 득실과 안위를 놓지 않는다면, 그럼 오직 우주의 역사가 당신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씬씽에 따른 위치를 놓아 줄 수 밖에 없으며, 역사는 결국 설명이 있을 것이며, 당신의 일체를 견증할 것이다 !

사부님은 《정진요지 1》 에서 말씀 하셨다. “하지만 수련자 또는 속인은 근본적인 버림마저도 하지 못하면서 역시 이 이치를 담론하는데, 그것은 집착심을 버리지 않기 위해 구실을 찾아 난법(亂法)함에 불과하다. ” 당신의 “염”이 우선 바르지 못한데 또 어디서 “정행”이 올 수 있겠는가? 당신의 이른바 정념정행도 당신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고 다른 사람의 누락을 질책하는 핑계로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도 건의 하는 바, 매 대법제자마다 모두 《자료점》 이 문장을 읽어 보고, 그 속에서 씬씽 차이를 찾아보는 동시에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보라.
이 천지개벽의 우주 정법에서, 우주의 첫째가는 칭호를 가진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신이 정법에 심혈을 기울인 정도가 얼마나 되며, 결국 당신이 무사적으로 자신을 정법과 중생구도에 바쳤는가? 아니면 정법을 당신이 개인 요구를 획득하는데 사용했는가?

이상은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의 인식이므로 부당한 곳은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5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5/19/178772.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