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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전감(思维传感)으로 단식하는 동수와 교류하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5월6일】지금 단식하면서 박해를 반대하는 동수, 과거에 나도 당신들과 같은 인식을 했었다. 사악에게 불법으로 체포된 후 단식이 가장 좋은 반(反)박해형식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후에 나와 수련생은 교류하는 과정에서 정법이 우리 대법제자에 대한 현재의 요구는 진정으로 신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해보라. 만약 한 신이 현재 감옥이나 노동교양소안에 있다면 그는 단식 이런 형식으로 사악의 박해를 부정할 필요가 있는가? 한 대법제자는 모두 수련을 잘한 일면이 있고 모두 각종 신통이 존재한다. 정념 중에서 신통을 사용할 수 있는데, 즉 발정념할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배불리 잘 먹고 정신을 가다듬고 발정념하여 사악을 제거할 수 있다면 단식을 취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신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그런 환경에서 부단히 법을 암송해야 하고(얼마정도 기억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바르게 되돌려야 한다. 이것도 매우 관건적인 한 점이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마라〉)내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엔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마음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실 이미 비자각적으로 낡은 세력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면 발아래의 길을 다시 귀정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사악의 배치를 부정하겠는가?

그리고 우리 대법제자는 어떤 시기에도 모두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박해받아 음식을 주입당한 수련생은 신체가 매우 허약한 상태가 나타났으며 심지어 박해받아 치사했다. 이런 결과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모두 일정한 부면적인 영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불법으로 감금당한 후 근본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어떤 방식을 이용하여 나갈 것을 생각하지 않고, 완전히 어떻게 법을 실증할 것이며 어떻게 신변의 중생을 구도하며 단지 세 가지 일을 틀어쥐고 잘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상태가 무사무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철저히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여 최후 결과는 제자가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온 것이다.

기실 나도 과거에는 단식에 대해 인식이 명확하지 못했다. 오직 정념이 강하기만 하면 이런 형식으로 반박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단식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정념이 강한 수련생은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악의 박해를 해체할 수 있으며 사악을 크게 떨게 하며 진정으로 사악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정념이 부족한 수련생이 사용하면 아마 정체와 개인에게 커다란 손실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물론 매 사람마다 매 일보를 걷는 것은 모두 자신이 정확하게 깨달아 걸어온 것이다. 나도 단지 당신들과 함께 법리상에서 교류할 뿐이다. 그러나 당신의 정황을 알고 있는 동수들은 모두 당신들을 가지해주고 있으며 수련생을 구출하려고 방법을 찾고 있다. 희망하건데 우리가 모두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여” 사악의 배치를 철저히 제거하고 사악에게 박해당하는 관련 중생을 구도하기 바란다.

문장작성:2008년05월05일
원고발표:2008년05월06일
문장수정:2008년05월06일 01:28:38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5/6/17786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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