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에서 온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4월 30일] 해외에 온지 몇 년이 되었는데, 거의 모든 대륙 수련생이 공동으로 갖고 있지만 서로간에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폐단을 발견하게 되었다. 매우 많이는 모두 후천적 환경이 가져다준 관념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이를테면 대륙 수련생이 쓴 “7년 동안의 자료점 생활로부터 말해보는 나의 수련과정” (이하 “과정”으로 약칭) 중, 나는 허다한 오해는 모두 서로간에 소통이 되지 못하여 생긴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주관 억측에 의지하였기에 없는 문제가 적은 문제로, 적은 문제가 큰 문제로 변하도록 야기시키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나를 몹시 유감스럽게 하였고 가슴 아프게 하였다.
예를 들어 보자. “과정” 이 글에서는 한 부유한 갑 수련생이 자료점의 을 동수에게 시기가 지난, 그러나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주었다. 이 옷이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알바 없는 을 수련생은 그 옷을 입고 병 동수의 집에 갔다. 그런데 병 수련생은 그가 이렇듯 고급적인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직접 상대방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라 (아마 모순이 생길까봐, 난감해할까봐) 도리어 주관 억측에 따라 을 수련생이 여러 사람의 돈을 마구 쓴다고 여겼고, 따라서 을 동수의 뒤에서 도처로 다니면서 소문을 냈다. 이런 행위는 변이된 것으로서 다시 말해서 날조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중국 대륙에 있고, 모두가 이런 변이된 환경에 잠겨 있어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일이 만약 서양 동수들 가운데서라면 발생할 기회가 아주 적다. 이를테면 갑 수련생은 을 수련생이 아주 값진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것이다. “자네 어찌 돈을 팔아 이렇게 값진 옷을 샀는가, 이건 옳지 않네.” (혹은 비슷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을 수련생이 곧 말할 것이다. “아, 난 몰랐네. 이건 모모가 준거네” 이러면 곧 오해가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륙의 이런 환경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모두 틀에 박힌 사유가 있어 모두 이젠 습관이 되어 버렸고, 말하고 일하는 것이 모두 단도직입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습관적으로 빙빙 에돌며, 모두 자신의 주관 억측에 따라 분석하는데 누구도 어디에 틀린 곳이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도 해외에 온 후, 동서방 문화의 비교와 충격을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을 “과정”이라는 이 문장 가운데서 적지 않게 보았다.
또 예를 든다면, 자료점의 갑 수련생이 을 수련생을 도와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여 신당인을 보게 하려 하였다. 을 수련생이 갑 동수에게 물었다. “자네 오늘 법공부 했나?” 갑수련생은 웃으면서 안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또 재수없게 되었다. 을 수련생은 또 주관 억측에 따라 인정하기를, ‘갑동수에게는 일하려는 마음이 너무 중하다. 법공부도 안했다.’라고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갑수련생은 또 필요한 해석을 하지 않았다. 사실 갑수련생이 조금만 해석했더라면, 오직 과시심이나 원망 등 기타 집착심이 없었더라면 이런 오해는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난 아직 법공부를 못했네. 시간을 짜낼 수가 없었어. 나는 자료를 만들고 여러 사람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데 xx 시간을 들여야 하네. 나도 나의 사업을 조금 분담해줄 사람이 있기를 바라네. 그러면 나에게도 법공부할 시간이 있을거네” 물론 을 동수도 만약 말투를 바꾸어 많은 것을 잘 물어 보았더라면, 이를테면, “자네 이렇게 시간을 짜내어 우리를 도와 주느라고 자네에게 법공부할 충분한 시간이 있겠나?” 등등이다.
또 있다. 병 수련생이 자료점에 갔는데, 정 수련생은 배고플 때 먹으려고 사다 놓은 썩은 사과로 병 수련생을 접대하였다. 병 수련생은 비웃으면서 말했다. “이런걸 나는 먹지도 않거니와 사지도 않네!” 정 수련생은 이런 말을 듣고서도 웃기만 할 뿐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병 수련생은 주관 억측에 따라 인정하기를 “이 자료를 만드는 사람들은 무슨 시간이 있어서 과일을 다 사는가, 그것도 다 썩은 것을.” 그러나 정 수련생은 해석하기 싫어했기 때문에 제때에 오해를 제거하지 못했다. 가령 정 수련생이 직접 물었더라면,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썩은 사과를 샀는가?” 그러면 을 수련생이 대답할 것이다.” 이것으로 허기를 채우고 비용을 아낄려구요” 이러면 오해가 없을 것이 아닌가?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은 대단하다. 하지만 문제가 나타났을때, 여러분이 모두 자신부터 찾아본다면 오해도 곧 적어질 것이며 협조도 잘 될 것이며 효율도 곧 높아질 것이다. 자료를 만들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하고 자료를 만드는 사람도 무슨 일이나 모두 묵묵부답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과 안전규정에 영향주지 않는 전제하에서 마땅히 해석해야 할 것은 해석해야지 모두 병마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지 말아야 한다. 자료를 만들지 않는 사람은 필경 허다한 일을 요해하지 못하고 있다. 쌍방의 사유가 모두 좀 간단해진다면 오해도 적어지고 더욱 더 원용해질 수 있다.
사실 내가 해외에 막 왔을 때, 몸에는 흠이 많아 늘 해외 동수들과 마찰이 있었고 오해가 있었으며 발생한 후이면 늘 난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원래는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서서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스스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해외에 온 대륙 동수들께서는 만약 이런 대륙 동수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보았다면 제때에 제출해 주기를 바란다. “허, 스스로 깔보는군. 혹은 나도 쓸 줄 모르는데 다른 사람더러 쓰라고 해. 혹은 어차피 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등등의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란다. 이런 생각은 모두 변이된 것이며 모두 수련 가운데서 귀정해야 할 것들이다.
전체 대법제자들이여, 공동으로 정진하기 바란다!
개인의 깨우침이므로 틀린 곳은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4월 3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4/30/1775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