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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일이 “의무적인 노동”인가?

글: 미국대법제자

【명혜망2008년04월28일】최근 명혜주간에서 《7년간 자료점 생활을 하면서 수련의 길을 걸어온 노정에 대하여》라는 글이 있었는데, 여기서 수련생은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가장 현저한 표현은 자신의 가정과 일에는 심혈을 기울이지만, 대법의 일은 마치 지출이 초과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과 대법의 일을 선명하게 갈라놓는다. 가정일이나 개인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일분일초도 시간을 끌지 않지만, 대법의 일이라면 미루고 싶으면 마음대로 미루어 버린다. 자신의 가정일이나 사업은 조금도 빈틈없이 열심히 하지만 대법의 일은 얼버무리거나 대충한다. 마치 자신의 일과 대법 일 사이에 특별한 상표 딱지를 붙인 것처럼 선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나는 해외 서양수련생은 이 방면에서 많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대륙대법제자와 해외의 화인대법제자에게는 이토록 돌출하게 표현되는가? 나는 대륙의 사악한 당문화에서 각종 “의무노동”이 연상되었는데, 예를 들면 “전 인민 의무 식수조림”, ”전 인민 위생” 및 크고 작은 단위, 기관에서 형형색색으로 해야 하는 “의무 노동”이 있다. 사실 이런 “의무 노동”은 서방의 정상적인 사회에서 하는 “자원 봉사”와는 뚜렷이 다르다. 서방의 자원 봉사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지원하는 것으로 독촉하는 사람이 없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이에 비해 악당사회의 “의무 노동”은 자원이 있고, 열정적이라서 하는 게 아니라 단위에서 월급을 주지 않고 “헛되게 힘만 내는”식으로 고루 분배해 주는 일이다.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도 피곤해지고 ‘의무 노동”을 생각하기만 하면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며, 떠밀고 싶으면 떠밀고, 시간을 끌고 싶으면 끌고 대충 한다.”는 식으로 취급했다.

우리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은 표면으로 보면 확실히 의무적인 것 같지만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주는 것도 없으며, 일을 하지 않아도 면직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의무 노동”의 당문화 속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은 대법제자는, 비자각적으로 그런 속인의 “속인 노동”의 심태로 대법의 일을 대한다. 그들은 대법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거나, 자신이 대법 일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심태는 사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수련생이 말한 것과 같다. “나는 무엇을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하는지, 법리에서 진정하게 깨닫지 못하고, 사심이 너무 큰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

사실 다른 공간에서 우리 속인사회와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 표면공간과는 반대이다. 당신은 자신의 속인 일과 개인일이 더 중요하고 긴박한 것 같아서 대법의 일은 급할 필요 없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부업” 혹은 “과외로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공간에서 보면 반대이다. 당신이 속인 중의 일과 개인의 일은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보조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속인사회에서의 생존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며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하기에 편하게 하려는 것으로, 대법의 일이야말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박한 “주요업무”이며 반드시 잘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올 때의 큰 소원이고 사전에 언약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지 않거나 참답게 하지 않으면 무한한 희망을 기탁한 중생들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 천만년동안 고생하면서 윤회하여 기다려온 이 정법의 한순간에 미안하지 않은가!

그리고 한 가지, 많은 수련생은 현지의 자료점, 그리고 명혜망 일체를 통틀어 일하는 “의무 노동자”, ”단위”혹은 “상급”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일이 생기면 당신을 찾고 당신에 우리가 부딪친 일체 기술문제, 수련문제, 협조문제, 심지어 개인문제를 모두 우리를 대신하여 의무적으로 해결해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심각한 의뢰심과 기다리고 의거하는 마음이 있으며 먼저 자신이 참답게 법을 배우고 안을 향해 찾지 않으며 자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듯 일체를 “상급”에 의지하고 일하는 것을 “단위”에 떠밀고 있는 심태는 사실 일종 당문화의 변이현상이다. 그것은 대륙의 악당통치하에서 인민의 일체를 엄밀하게 통제하기 위해 의, 식, 주, 행과 혼상가처(婚丧嫁娶), 교육문제, 호구와 양식문제 등등을 포함하여 어떤 일이나 모두 단위와 상급을 찾고 사람들의 일체 생활자원과 생존조건 모두 악당에게 통제 당한다. 장기적으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던 중국인은 이런 변이된 심태를 양성하였다. 실제로 이런 “총 도급하는” 현상은 서방의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방법을 생각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단위, 회사는 공작하는 장소와 관련 월급만 제공하며 누구도 당신을 대신하여 주식을 모두 맡아서 해결해 주고 학교가게 하는 등 개인 일을 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륙에서 갓 서방에 온 중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매우 힘들어하며 서방사회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서방 사람으로 말하면 대륙에서 그렇게 변이된 생활방식이야 말로 진정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법제자로서 이런 당문화가 조성한 변이된 관념을 반드시 제고해야 한다. 모두들 《해체 당문화》를 많이 읽어보고 수시로 자신의 변이된 관념을 제거하기 바란다.

개인이 깨달은 부분이기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작성:2008년04월27일
원고발표:2008년04월28일
문장갱신:2008년04월28일 02:38:11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8/4/28/17739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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