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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최후’에서 생각한 것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4월 16일】 최근 명혜망에 오른 정련(淨蓮) 수련생이 쓴 체험 문장 『최후의 최후』(명혜망 4월 11일 교류 문장)를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는 그저 문장 중에 제기된 동수 때문에 조급하게 여겼고 왜 아직도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을까?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만 여겼다. 오늘 두번 째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도 마땅히 안으로 찾아봐야 하며, 자신에게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세심하게 생각해 보니 과연 그러했다.

내가 걸은 굽은 길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다. 이는 일종의 일을 하려는 마음인데 다시 말해서 나는 얼마만큼 일을 했으니 마땅히 좀 쉬어야 겠다고 집착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아로부터 출발하고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여전히 일종 위사(爲私)한 마음이었다.

우리가 이 속세에 온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중생구도의 서약과 사명을 지니고 온 것이다. 아직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지 못했는데 우리가 무슨 구실로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있단 말인가? 대법도(大法徒)로서 우리는 개인의 원만은 문제가 아니므로 오직 사람을 구하는 것만 상관해야 한다. 바로 예전에 악가군(岳家軍 역주: 악비의 부대) 처럼 우리는 저마다 절기(絶技)를 품은 장졸들이다. 비록 지금 적의 수도를 곧바로 쳐들어 갈희망이 존재하지만 아직도 많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고, 적의 우두머리는 아직도 철저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큰 성공을 이루었다 하여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가? 원수(元帥)가 군대를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 우리가 어찌 스스로 주장을 세울 수 있는가? 이렇게 간단히 비유하면 동수들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수련과정을 회고해 보면 나는 줄곧 일종 기복(起伏)상태에 처해 있었다. 한 동안 정진 하다가도 다음에 또 한 동안 쉬곤 했다. 바로 학교에 다닐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도 주말이 되면 영화구경을 하거나 노래를 들으며 한바탕 놀고는 다음에 다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후에 어딘가 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중에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손해를 당하고서야 비로소 그 실패를 반성하고 문제를 정시하며 뿌리를 파보았다. 하지만 지금껏 아직도 이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아직도 안정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어쩌면 사부님께서 나더러 이 집착의 뿌리를 잘 파보고 이런 부정확한 상태 속에서 돌파해 나오라고 하신 것 같다 .

당시의 그 단계에는 일이 바빴지만 세 가지 일도 열심히 했고, 개인 자료점을 건립했으며, 나중에는 한 차례 큰 면적의 진상을 알렸다. 원래는 안전하여 아무 일도 없이 응당 있어야 할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후에 나는 자신에게 휴가를 주었고, 사상이 느슨해져 한동안 기본적으로 법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속인의 집착에 써버렸다. 어쩌다 세 가지 일을 해도 형식에 지나지 않았고 적당히 대처하는 식이었다. 마음은 이미 속인 속에 있었고 법에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완전히 아주 우연하게, 거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는 아주 작은 일에서 나는 사악에게 꼬리를 잡혀, 원래 있었던 평온한 일자리와 수련 환경을 잃어버렸으며, 지금까지도 생활이 어려운 상태를 돌파하지 못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데 불필요한 어려움을 가져왔다.

내 생각에 문장 중에 제기한 수련생이 천목으로 본 것과 자신의 깨달음에 근거해 이젠 원만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세 가지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조용히 수련하겠다는 그 집착의 근원으 나의 이런 상황과 똑같은 것으로 단지 표현만 다를 뿐이다. 이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환희심, 과시심, 자만심, 일하는 마음의 일종으로 아주 쉽사리 마가 틈 탈 기회를 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진작부터 말씀하셨다. 수련은 최후까지 멈춰서는 안 되며 모두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야 하고, 자신의 이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문제에 부딪쳤을때,누가 (속인이든 동수든 상관없이)문제를 제출할 때면,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 하면 문제가 없다면 절대로 문제를 제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절대로 사부님의 법을 단장취의 하는 것으로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지 말아야 한다. 동수여, 우리는 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법에 서서 법을 크게 보는가? 아니면 자신을 크게 보는가?’ 바꾸어 말한다면, 정말로 원만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배운 것은 다만 이 끝없는 대법 중에서 자그마한 한 점에 불과한데 이렇게 위대한 법을 왜 지금 좀 더 많이 배우지 않는가? 좀 더 많이 배우면 더욱 좋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책을 거두어들이는가? 참으로 당국자에게 미혹 되었다면, 건의하는바, 동수들은 생활 중에서 혹은 역사의 간단한 사례를 들어 비유하고, 간단한 도리로 수련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절대로 이런 상태를 줄곧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올 때까지 지속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악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훼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너무나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의식하게 되었고, 나는 이 문제에서 어쩌면 동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인식을 써낸 것이다. 동수들이 하루 빨리 깨어나길 기원한다.

개인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동수들이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4월 1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4/16/1765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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