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산동 덕주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4월 18일】오늘 명헤망 사이트에서 사부님의 신경문《설명》을 읽은 뒤 약간의 감개가 있었다. 왜 대법제자는 지금까지 똑같은 잘못을 연이어 저지르고 있을까! 사부님의 경문에 질책의 뜻은 없지만 우리 자신은 이 속의 문제를 엄숙하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사람 속의 형세 혹은 경향 이것이 어디 수련자의 행위란 말인가? 비록 속인 속의 허다한 활동은 사당 박해를 제지함과 반항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우리 수련인의 거동이라고 할 수 없다. 수련인 현재의 책임은 바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다른 추구가 없다. 세인의 활동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사악의 수련인에 대한 박해에 근본적으로 똑똑히 인식하지 못해서이다. 자신의 일부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인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예전에 세인의 활동에 집착이 생기면, 비교적 큰 범위의 파동이 생길 때 구세력은 이를 구실로 박해를 가했으며 심지어 수련자의 생명을 빼앗았다. 한차례 또 한 차례의 교훈은 마땅히 우리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경문에 《설명》이란 제목을 쓰신 것을 보았는데 수련에서 집착을 기어이 사부님께서 몸소 설명하셔야만 했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중요하게 여겨야 진상 알림, 중생 구도에 대해서는 무척 냉담하다. 예를 들어 사부님께서 《9평》을 널리 전하여 사령을 제거해야 한다는 문제를 여러 차례 설법하셨지만 오히려 《9평》 배포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영원한 마음이 없다. 신운 공연은 지금까지 해외에서 공연되고 미혹 속에 있는 중생을 광범위하게 구도하고 있다. 《명혜주간》에서는 대륙에서 신운을 널리 알린 체험과 경험을 여러 차례 실었고 공연의 형식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 역시 사부님께서 긍정하고 참여하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동수들은 반 박해에 유리한 세인의 행위를 보거나 자신의 집착에 부합되기만 하면 아주 열성적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법에 부합되는지를 냉정하게 사고하지 않는다. 속인의 거동이 기세 드높게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기만 하면 흥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전파하는데 완전히 사람의 사유로 나아갈 뿐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정법이 현재까지 걸어오면서 우리가 무엇을 하러 왔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땅히 명백해야 한다.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서 사람마음의 집착을 닦아서 제거하여 순정한 심태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사고해야할 문제이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더 이상 수련 중에 나타난 교란으로 인해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걱정하고 마음 쓰게 하지 말자. 우리는 정말로 마땅히 법속에서 성숙해야 한다.
문장완성:2008년 04월17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4/18/17669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