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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 『모래를 일다』를 읽은 소감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3월 31일】 사부님의 경문 『모래를 일다』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의 첫 일념은 『전법륜』 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었다. “거센 파도가 모래를 일듯이 수련이란 곧 이런 일로서, 남은 것이야말로 진짜 금이다.” 이 구절이 반복적으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최후에 도달했으니 물론 진짜 금과 모래, 또 불순한 금을 갈라야 한다. 진짜 금이라면 곧 금빛을 발해야 하며 사실 이는 아주 엄숙한 일이다.

나는 또 신변에 있는 일부 동수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고 모순이 있어 여러 차례 해결하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았다. 순식간에 지나갈 이 시기에 어떤 수련생은 연공동작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처음 새벽 연공을 시작할 때, 한 수련생이 “(새벽연공에) 일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라고 했다. 또 한 수련생은 “마침 연공할 때 모두 원만 하는데 당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 수련생은 깜짝 놀랐고 이후 시간을 안배해 새벽연공을 견지했다.

어떤 수련생은 연공동작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해 다른 사람을 정말로 조급하게 만든다. 다른 수련생이 보고는 조급해 하며 몇 번 제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늘 흔들리는데 여러 번 제기하자 또 화를 낸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이스가 강해야 한다고 하셨다. 주이스가 강한 사람은 법에 있을 때, 연공할 때 결코 흔들거리지 않을 것이다.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또 어떤 수련생은 잠을 잔다. 이는 정말로 중시해야 한다. 흔들거리고 동작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연공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모두 사부님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한 동안 교공(敎功) 비디오를 잘 보거나 혹은 『대원만법』을 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여러분이 명혜에 문장을 발표해 몇 차례 제기했던 문제이다. 바로 단체 법학습을 할 때 글자를 틀리게 읽는 문제이다. 어떤 수련생은 틀리게 있고도 다른 사람이 지적해주면 고치려 하지 않는다. 사실 다 고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자신과 모순이 있는 수련생이 제출하면 고치려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런 마음도 정말로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법이며 읽는 것은 법이 아닌가. 글자를 틀리게 읽었다면 마땅히 고쳐야 한다. 만약 자신과 모순이 있는 수련생이 제출해도 고치고자 하는 동시에 또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면 이는 일거양득의 좋은 일이 아닌가.

이외에도 단체법학습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법을 읽을 때, 이를 듣는 사람들은 가장 좋기로는 마음속으로 법을 읽거나 외우는 것이다. 가급적 함부로 작은 동작들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존사경법(尊師敬法)이 이 속에 체현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법학습은 형식이 아니며 반드시 엄숙하게 대해야 하는바 자세를 단정히 하고 마음이 순정(純淨)해야 하는 등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사찰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예를 올릴 때 모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올렸다. 우리는 만물을 창조한 우주대법에 대해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

나는 줄곧 자신은 단지 재물에 대한 집착만 있다고 여겨왔다. 한 차례 마난(魔難)을 겪은 후 많고 많은 것을 언급했기에 늘 명리정(名利情)을 그리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오늘 발생한 한 가지 사건이 나를 아주 고통스럽게 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명리정이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줄곧 말하려 하지 않았고 말을 하면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했는데 이는 아주 무거운 집착을 끌어안고 내려놓으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나는 출근하지 않기에 명리(名利)의 쟁투마당이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의 학습 성적이 나의 명리 마당에서 투쟁무대가 되었다. 아들의 성적이 좋으면 기뻐하고 마음속으로 흐뭇했지만 반대로 성적이 좋지 않으면 마음이 기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하고 그렇지 않다고 여겼지만 확실히 그랬다. 이런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욱 심해진다. 본래 아주 우수한 아이였는데 도리어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는 신세가 되었고 내 마음은 아주 괴로웠다. 안을 향해 원인을 찾아보았다. 아이가 정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아이에게는 아이의 상태가 있다. 물론 법학습을 많이 하면 분명히 더 좋아지겠지만 또 정에 너무 집착한 것이 아닌가? 나는 끊임없이 법학습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머릿속에 한 구절이 떠올랐다. “명이요, 명리가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정말 아주 깊숙이 감춰져 있어 건드려진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관찰할 수 있다. 정을 내려놓는 것은 단지 한 측면 일뿐이며 명리심을 남겨놓을 수는 없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마음을 졸이셨다. 경문(經文)은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으로 우리가 수련을 잘하고 보다 많은 사람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제자로서 우리도 잘 깨달아야 한다. 모순이요, 쟁투요, 각종 좋지 않은 마음을 우리는 없애버려야 한다. 자비롭게 자기 주변의 수련환경을 잘 원용하며 더는 신변의 동수들과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다투지 말아야 한다.

가정의 모순이란 관은 우리가 반드시 닦아버려야 하는 것으로 수련생이 함께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늘 다른 사람의 집착을 보는데 자신의 집착이 자신을 해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늘 자신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 하는데 이는 정에서 파생되어 나온 다른 일종의 집착이 아닌가? 지적하는 사람과 지적당한 사람, 우리 모두는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파도가 모래를 일어야 진짜 금이 될 수 있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3월 3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3/31/17553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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