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2008년4월1일] 최근 수련생이 악당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명혜망을 통해 사악이 9월전까지 우리 지역에서 100여 명의 대법제자를 붙잡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목전의 상황에 견주어 나의 약간한 생각을 말하려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악당은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구실로 대법제자들을 마구 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법의 각도에서 보면 정법의 최후단계에 사부님께서《모래를 일다》라는 경문을 발표하셨는데 그러면 표면적인 이런 박해형세는 우리를 금인가 아니면 모래인가 고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최근 나는《정진요지》중 을 다시 읽어보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발생한 일은 대법제자의 씬씽을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수련인가? 당신이 좋다고 말하고, 내가 좋다고 말하며 여러 사람들이 좋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보아 낼 수 있겠는가? 바로 관건적 시각에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원만의 최후에도 의연히 근본적으로 대법에 대해 견정한가 견정하지 않는가를 고험 받게 되며 만약 근본에서부터 대법에 대해 의연히 견정하지 못하다면 그 무엇도 담론할 수 없음을 모두 알고 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최근에 겪은 것이 너무도 많다. 우리는 비바람 속에서 걸어왔으며 생사를 내려놓는 속에서 걸어왔고 마난 속으로부터, 박해 중 걸어온 것으로 우리가 겪은 것은 정말 너무나 많고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최후 관건적인 시각에 절대 가상에 이끌려가지 말아야 하며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법제자로서 매 한차례의 박해는 다만 우리들을 더욱 견정하게 하며 더욱 성숙하게 하고 더욱 이지적이게 할 뿐이다. 우리들이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私)를 내려놓기만하면 사악이 와도 우리는 즉시 우리들의 불법 위력을 발휘하여 그것들을 소멸해 버리고 사악을 모조리 제거 해 버릴 수 있다. 만약 우리 전 대륙 대법제자들 모두 생사를 내려놓고 무집무아하고 대법제자의 강대한 정념을 발출한다면 사악이 의연히 존재 할 수 있겠는가? 사악이 없어지고 이번 박해는 종식될 게 아닌가?
《금부처》에서 말했다. “도를 구하는 두 사람이 천신만고를 겪고 끝내 서방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최후의 고험 앞에서 한 사람은 마음이 성실하여 부처로 되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도리어 교활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수련은 곧바로 이처럼 엄숙한 것으로서 조금만 편차가 있어도 안 된다. 우리는 이처럼 여러 해의 간고한 수련을 경과하였는데 최후 시각에 교활한 사람으로 떨어지는 말로가 될 수는 없지 않겟는가.
문장완성 :2008년3월30일
문장발표 :2008년4월1일
문장갱신 :2008년4월1일00:40:35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4/1/17551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