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성련(聖蓮)
【명혜망 2008년 3월 26일】 ‘원용(圓容)’이란 단어는 파룬따파 중에서 여러 번 나오는데 어떤 수련생은 아직까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오해하고 잘못 쓰면서 법리를 바르게 깨닫는데 대해 장애를 조성하고 수련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원용’의 함의를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수련생은 깊이 파고들어 투철히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남용하여 ‘원용’의 의의를 속인들의 “융통성이 있다”로 혼동하거나 심지어 “원활(圓滑)하다”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법이 박해를 받을 때 사악한 당의 직장 상사가 수련생을 찾아와 담화할 때 “파룬궁이 좋으면 집에서 수련하고 밖에 나가 연공해 직장이나 사회를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당장 수긍하거나 묵인한다. 그 이유는 수련도 해야 하지만 직장이나 속인사회도 ‘원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수련생 가족들은 수련을 교란해 수련생이 문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동수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대법을 실증하는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자질구레한 일에 지쳐있고 자손들의 일을 첫자리에 놓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자신도 세 가지 일을 하고자 하나 매일 법공부, 연공하고 발정념할 시간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바삐 보내고 있다. 동수들이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자신의 수련환경을 개척하라고 일깨워줘도 오히려 가족들도 ‘원용’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
보아하니 이런 사람들은 대법 중에서 ‘원용’의 뜻을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융통성 있게” 속인 사회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원용’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양보하고 가족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느라 수련을 지체하는 데도 이를 ‘원용’시킨다고 한다. 이런 ‘원용’의 결과는 어떤가? 내가 알기로는 양보할수록 교란은 더 크게 오며 가족들을 만족시켜 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만족시키지 못한다. 두서가 없이 긴장하고 바삐 지내다 보면 씬씽이 오랫동안 제고되지 못하고 완전히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 법과는 점점 멀어진다. 어떤 사람은 병업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렇게 엄중한 후과를 빚어내는 원인은 법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해한 ‘원용’으로 자신의 사람마음과 내려놓지 못한 집착을 덮어 감추기 때문이다.
자고이래 우주의 대법은 불변하는 것이다. 변화한 것은 그에서 파생되어 나온 물질과 생명이다. 우주대법은 모든 것을 만들고 연화시키며 일체를 소훼시키고 일체를 갱신하는 여의하고 원용불파(圓容不破)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모든 생명과 지혜의 원천이다. 우리는 정법수련 중에서 대법에 동화하고 있고 대법 역시 오랜 세월 중에서 점차 법을 떠난 우리와 같은 이런 생명들을 수정해주고 있다. 십 몇 년의 수련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법공부를 하라, 법공부를 하라, 법공부를 하라고 천만번 당부하셨다! 우리는 대법 중의 단어를 대충 이해하고 마음대로 남용해서는 절대 안된다.
동수들이여, 정법수련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심혈을 기울여 법리를 깨닫고 수련을 지도하여 앞으로 수련의 길을 잘 걸어 나가야 한다.
문장발표 : 2008년 3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3/26/1751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