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아를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간격을 없애는 관건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2월 29일】 내 신변의 몇몇 동수와 그 외 몇몇 동수 사이에 간격이 형성된 지 이미 여러 해 되었는데 주요 원인은 상대방이 천목이 열린 동수와 내왕이 빈번하고 밀접하며, 깨달은 것들이 법에 있지 않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일도 정진하지 않는데 있었다.(이는 다만 나의 견해일 뿐이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매 번 올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늘 일종의 경각심이 생기곤 했다. “동수여, 제발 잘못 깨닫지 말라.” 함께 교류할 때면 언제나 내가 먼저 말하면서 어떻게 진상과 3퇴를 했는가를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마치 나만 제일 바르게 한 것 같았다. 상대방이 다른 견해를 제출하기만 하면 나는 늘 참지 못하고 몇 마디 했다. “이것이 법에 있는 것인가? 이것이 법에 있는 것인가?” 심지어 어떤 때는 불쾌하게 헤어지곤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상대방이 점점 더 법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상태가 몇 년을 지속해 우리 전반 지역 대법제자 간의 소통과 합작(合作)에 영향을 주었다. 외지의 개별적 동수들도 우리 지역 대법제자 중에 부동한 인식과 상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누구를 설득하지 못해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간격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동수 간에 늘 의논한다는 것이 “모모모가 또 뭐라고 말했다.” “모모모가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다.” 는 것이어서 시종 하나의 정체를 이룰 수 없었다. 어떤 때 나는 생각했다. ‘오직 대법 속에서 수련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선 그들을 개변시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돌아설 날이 꼭 있을 것이다.’

몇 차례 연공할 때 사부님 법상을 마주하고 동수들이 정법노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괴로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이런 동수들은 끝장이 아닙니까, 정법이 끝날 때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 후, 나는 또 명혜망에 상황을 반영했다. 바로 이렇게 나는 줄곧 상대방을 개변시키려 했으나 결과는 갈수록 간격이 더욱 커졌다.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본 후 나에 대한 진동이 몹시 컸다. 나는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사부님의 설법과 대조해 보니 자신이 너무나도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마음과 이런 상태를 개변할 때가 되었다.’

이 때 나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자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몇 년 동안 동수에 대한 원망과 질책은 모두 상대방과 상대방의 수련을 가늠한 것으로 이런 상태 중에서 자신을 수련한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대법을 수호한다는 마음으로 덮어 감추었을 뿐이지 제고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번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또 왔고 그 자리에 2, 30명이 있었다. 나는 이 번이 여러 사람이 법에서 바르게 걸어 갈 수 있도록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했는가 하는 체험을 말했다. 의도는 여러 사람을 이끌어 정법노정을 따라가게 하려는데 있었다. 당시 몇십 명 되는 사람들이 나 혼자 하는 말을 듣고 있었는데 모두들 조용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들은 왜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당신들이 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일종의 누구보다 높다는 것과 유아독존(唯我独尊)의 환희심 및 과시하려는 상태가 있었다.

이런 상태를 하늘에 가지고 가서 불도신(佛道神)과 쟁투하려 하는가? 내가 냉정하게 자신을 찾았을 때 문제의 관건은 바로 나 자신임을 단숨에 보아냈다. 자신을 실증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강조하며, 자신을 과시했다. 이런 마음이 그래 작은 것인가? 이런 문제를 보아낸 후 나는 마치 단숨에 많은 문제를 알게 된 것 같았고 많은 제고를 가져온 것 같았다.

나는 발정념 할 때 강대한 일념을 가했다. ‘나와 동수들 간의 간격을 없애 버리며, 내심의 편안하지 못한 그런 요소들을 철저히 해체한다.’ 특히 설을 전후로 해서 나는 다시 한번 사부님께서 국외에서 하신 일부 설법들을 학습해 마음이 많이 밝아지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습관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고 여태껏 자신을 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는데 당신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이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가서 다른 사람을 보는가? 오히려 안을 향하여 닦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는가?”

“매개인은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므로 우리는 자신의 관념을 남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말하지 말고 문제가 나타나면 여러분은 서로 도와주고 방법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로스앤젤레스 시 설법』)

끊임없이 자신을 찾는 가운데 나의 경지는 아주 큰 돌파와 제고가 있었고, 이전에 상대방에 대해 중하게 보았던 그런 일들이 눈앞에서 점점 더 작아졌고, 무게도 점점 더 가벼워졌으며 원망이 날로 옅어졌다. 주변 동수들이 또 다시 상대방의 ‘부족’을 말하면 나는 즉시 강조해서 말했다. “자신을 닦으세요! 반드시 자신을 닦으세요! 상대방의 장점을 많이 보세요. 상대방이 속인일지라도 우리는 그에게 자비해야 하는데 하물며 그는 우리 소중한 수련생이 아닙니까?” 나의 개변은 주변 동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자아를 내려놓은 후 나는 그래도 여전히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을 찾아 면담해야 한다. 나는 진솔하고 선한 마음으로 주동적으로 그들을 찾아가 담화했다 (이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다) 나는 내가 반드시 이 일보를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서 나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표준에 부합되어야 하며 더이상 사부님께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갑(甲)과 을(乙)을 찾아갔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내가 말했다.
“전에 나는 줄곧 당신들이 잘못했고, 법에 있지 않으며. 줄곧 밖을 향해 구하고 있다고 여겨왔다. 가령 당신들이 정말로 틀렸다 해도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홍대한 자비로 당신들을 관용하고 이해할 수 있었는가? 이 몇 해 동안 늘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남의 장점을 많이 보고 결점을 적게 보라고 하신 것처럼 하지 못했다. 늘 당신들이 사람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고만한 것에 눈길을 주었다. 몇 년 동안 늘 이런 상태였으니….”

갑 수련생이 말했다. “이 몇 년 간 나는 당신이 늘 우리가 떨어질까 봐 근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어떤 일은 당신이 본 것처럼 그렇지 않다. 생명의 부동한 내원은 부동한 특점이 있고 인간에서의 표현도 틀림없이 같지 않다. 진상을 알리는 일을 놓고 말하더라도 당신은 끊임없이 오가면서 말하지만 나는 지혜롭게 알린다. 다만 기회와 장소가 있기만 하면 나는 몇마디 알린다. 나는 정법이 종결될 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갑 수련생을 안지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일종 말할 수 없는 감회를 느꼈다.

“그래요, 우리는 자신의 환경에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었고 바로 합격된 제자였어요. 누구나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때 을 수련생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 직원들은 모두 대법이 좋고 악당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기 시작했다. 동수에게 곤란이 있을 때 나는 언제나 묵묵히 도와주었다.” 아울러 몇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침 우리가 교류하고 있을 때 병(丙) 수련생이 왔다. (그는 내가 의견이 제일 많았던 사람이다) 내가 과거 그들에 대한 나의 일부 관념적인 인식과 지금 개변된 후의 인식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후 병 수련생은 아주 감격했다. “사실 이 몇 해 동안 우리는 세 가지 일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또 아주 충실하게 해 왔어요. 당신이 전에 생각하던 그런 견해와는 같지 않아요. 가령 당신이 나를 개변하려 하고 내가 또 당신을 개변하려 한다면 결국 누구도 누구를 개변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간격만 더 커질 겁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진상을 알리고 3퇴를 한 많은 예들을 들었다. 그가 하는 말을 듣는 사이에 나는 갑자기 그가 이 몇 해 동안 줄곧 나를 마음속에서 이해해 주고, 양해해 주며, 관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일부 문제의 인식에 있어서 나하고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았다. 그의 상화한 표정과 심리 상태는 내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장차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겠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체는 사부님의 안배가 있습니다. 제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잘 해야 합니다. 나는 작은 공장을 하나 설립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 생활을 개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활은 아주 간단하지만 보다 많은 세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그들을 구도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은 내 마음속의 많은 매듭을 풀어 주었다.

동수들이 기왕 이렇게 잘 했는데 그럼 무엇 때문에 나(내 주변 부분적 동수들도 포함)는 그들에 대해 그렇게 의견이 많았을까? 조용히 생각해보니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방면이 있었다.

1. 법공부가 착실하지 못했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찾지 않았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투철하게 말씀하셨다. 다만 우리가 법공부 할 때 자신과 대조하지 않고 법으로 남을 가늠했을 뿐이다. 이는 수련인의 제일 큰 금기이다.

2. 늘 자질구레한 작은 일을 확대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상들은 또 상대방의 실질이 아니다. 본 후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함으로써 수구하지 않아 영향을 점점 더 크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에 부닥치면 먼저 자신을 찾아보고 그런 다음 선심으로 남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동수에 대해 솔직하고 선량하며 관용이 부족했다(이는 일종의 경지이다)

3. 늘 사람의 관념을 고수하면서 개변하려 하지 않았다. 사실, 사부님게서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동수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못할 때면 늘 마음을 나누라고. 그런데 나는 늘 이 한 걸음을 내딪는 것을 어려워했다.

나는 동수들과 교류한 후 마음이 아주 홀가분한 것을 느꼈다. 경지가 승화된 투철한 깨달음을 느꼈다.

문장발표 : 2008년 2월 2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2/29/17329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