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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승은 다만 각종 상태중의 일종일 뿐이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2월 29일] 이 며칠 동안 동수들이 올린, 마땅히 경제상으로 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에 관한 교류 문장을 읽고서 동수의 인식에 아주 찬동된다. 대륙의 장시기적인 사악의 박해 환경하에서 많은 대법제자들은 혹은 많게 혹은 적게 모두 인식하기를, 세 가지 일을 잘한 수련생은 경제상에서 응당 아주 절약하며, 개인 물질 방면에서 응당 아주 단조로울 것이다 라는 것이다. 비록 돈에 많은 여유가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을 것이다. 수련생이 옷을 사입거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 하면 언제나 수련생이 비뚤게 나갈 것 같아 “근심”한다.

어떤 수련생은 유리실소한 수련생을 경제적으로 도와준 후 한 때 자신의 생활이 검소해지게 되었다. 이럴 때 신변의 수련생은 이것이 바로 옳다고 여겼다. 장시기 동안 수련인 자신이 자신에게 하나의 격식을 만들어 주었다. 이전의 수련 방식으로 오늘의 대법수련을 가늠하면서 늘 사람들에게 “청빈”한 인상을 주려 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관건은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닦는 것은 “마음”이고 대법수련은 직지인심이지 물질 이익에서 당신더러 꼭 무엇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동수들은 돈에 연루되기만 하면 곧 “두려워”하면서 이 방면에서 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 이는 극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는 기타 어떠한 자원과 모두 마찬가지로서 모두 우리에게 마음대로 사용되고 있다. 돈을 너무 특수하게 보게 되면 곧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수련인 자신이 경제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것은, 어떤 것은 당문화와 질투심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또한 사악이 경제를 이용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한 구실을 가중시킨 것이다. 내 신변의 수련생은 박해가 막 시작되었을 때 박해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어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다. 그러나 종래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한 돈을 그 무슨 특수한 것으로 보지도 않으면서 줄곧 돈을 물품으로만 보아 왔다. 물건을 살 때에도 다만 이런 물건(돈)으로 저런 물건을 바꿔왔을 뿐이라고 여겼으며 사상가운데 “고행승”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나머지 돈이 별로 없을 때에도 그는 이 특수한 시기에 대법제자에게 차가 있었으면 더욱 편리할텐데 하고 생각하였다. 결국 지금은 가정생활이 보장되었을 뿐더러 또 자신의 차도 있게 되었다. (돈은 모두 자신과 가족이 정당한 경로로 얻은 것이고 선사받았거나 보조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사악은 대법제자를 박해하여 일자리가 없게 하였지만 지금의 대법제자들은 사업을 못하는 상황에서도 생활 수준은 도리어 중류층 이상에 달한다. 이것이 그래 대법의 신비로움이 아닌가? 그래 대법제자가 사악의 경제상 박해를 승인하지 않은 표현이 아니겠는가?

방금 예를 든 유리실소한 동수의 일을 계속하여 말해 보도록 하자. 많은 동수들이 이 일을 알고 있다. 그 중 한 노인 대법제자가 주동적으로 생활비를 내자고 제출하였는데 얼마 안 되어 즉시 상당한 수량의 보조를 얻었다. 얼마 후 유리실소한 동수에게 더욱 훌륭하게 법을 실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동수들의 생활비 보조가 필요 없게 되었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제출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2월 2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2/29/1732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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