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2월 18일】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동수간의 교류는 자신이 법리(法理)에서 승화한 후의 심득이며 단지 이런 교류만이 비로소 진정한 교류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마치 법회를 열 때 동수의 심득이 모두 다른 동수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발표할 수 있거나, 명혜망에 발표하는 문장 역시 모두 명혜 편집부 동수들의 원고 심사를 거친 후에 발표되는 것과 같다. 단지 이런 심득만이 비로소 정면적인 교류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아주 큰 개인의 요소를 이끌어 들여 정면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부분이 있게 되며 동수에 대해서도 일종의 교란이 될 수 있다. 지금 일부 동수들이 많은 교류를 할 때 종종 아주 싶게 당신이 옳고 나는 틀렸다는 틀속으로 빠지기 쉽다.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진정으로 부동한 층차에서 대법의 표준과 요구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교류할 때 늘 “내게 어떤 옳지 못한 곳이 있으면 당신이 내게 지적해 달라.”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수에게 자신의 수련에서 부족한 곳을 지적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깊은 층에서 말하자면 외부의 힘에 의탁하려는 것이다. 수련은 마땅히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으로 변화가 발생해야 하며 자신의 집착을 닦아 없애야만 비로소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법리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설사 상대방이 지적해주어 고친다 해도 역시 표면적인 것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나는 개인적으로 교류는 마땅히 어떻게 하면 보다 진상을 잘 알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동수의 교류내용은 단지 그 개인의 견해를 대표할 뿐이며 또한 수련생이 수련한 층차의 표현이다. 매 사람의 수련 층차가 다르고 수련상태가 다르기에 매번 교류할 때마다 공통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늘 동수의 개인수련 상태에 눈길을 주지 말아야 한다. 만약 모두들 정체라고 여기고 상대방의 부족을 보면 마땅히 정념으로 가지하거나 혹은 발정념을 많이 해 도와주어야 한다.
관념으로 수련생을 대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본 것으로 수련생을 가늠하지 말아야 하는데 매 수련생이 처한 환경과 심태는 다른 사람이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중생구도에 생각을 두어야 한다. 동수 역시 모두 대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고하고 있고 또한 정체적으로 제고하고 있다.
지나치게 자주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것 역시 자신을 실증하는 표현이며 또한 수구하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해가 어떤 때는 법리에 청성하지 못한 동수들에게는 일종의 교란이 될 수 있다.
문장발표 : 2008년 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2/18/17258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