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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 사이의 모순을 말함

글/ 캐나다 캘거리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2월 5일】 대법의 복음이 천하에 널리 전해지고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도와 홍법(洪法)하는 동시에 법을 얻은 뭇 제자들은 이 한 시대의 증인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법을 배우고, 법을 전하며, 법을 실증하는 것은 현재 대법제자의 사명이다. 각종 세상사의 고험을 겪고, 구세력의 첩첩한 저애를 물리치면서 대법제자는 오늘까지 걸어왔고 갈수록 성숙되고 갈수록 청성하며 이지적으로 각종 모순 충돌과 씬씽(心性) 연마를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대법제자들은 속인의 모순과 억울함에 직면할 때는 웃으면서 지나쳐 버리고, 은혜와 원한을 풀 수 있으며, 과거의 감정을 따지지 않을 수 있지만, 함께 대법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를 대할 때는 도리어 일부 자질구레한 불화를 마음에 담아두고 심지어 크게 화를 내거나, 심한 말을 하고, 각종 정서가 가득 담긴 어휘와 민첩한 말을 죄다 동원해 자신의 방법이 대법에 부합한다는 것을 나타내려 애쓴다. 아울러 자신이 여러 가지 억울함과 공헌을 자세히 진술해 직접적으로 혹은 완곡하게 상대방이 여러 가지로 옳지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관을 넘는 고험과 씬씽 마난에 처해 있을 때는 그 중의 실마리를 완전히 이해하긴 아주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관을 넘는다는 말도 없을 것이다. 방관하는 제 3자도 이 일을 왜 보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일을 목격한 우리 매 사람에게 누락이 있는 곳을 발견하도록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천 년 윤회 중에서 우리가 여전히 삼계에서 맴도는 것은 우리가 이 시공의 힘에 통제되고 억제되어 우리가 이 시공과 일치한 씬씽 특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전하신 대법은 우리더러 이 시공의 억제 요소를 극복하고 그 틈에서 우리를 제한하는 힘을 타파하며, 우리를 견인하는 슬픔과 기쁨 이합집산, 희로애락의 근본원인을 극복해 이로부터 우리를 큰 지혜를 가진 정각(正覺)의 생명으로 정화시켜 우리를 꽁꽁 묶은 육도(六道)의 각종 속박을 절단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대법을 주셨고, 또 일체 시공과 천지 뭇 신들을 동원해 정법(正法)이란 이런 홍대한 시공무대를 창조하여 대법제자가 자신을 제고하고, 자신을 순수하게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대법제자 사이에 나타난 어떠한 모순이든 모두 대법을 운용하여 대법을 실증하고 자신을 수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시시각각 대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지도하고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법이란 이 무형의 예리한 검으로 각종 인심(人心), 인정(人情)을 절단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곤혹스러워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왜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 감정이 있는 동수 간의 말다툼이, 보기에는 간단한 문제 같은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고비를 넘지 못하는가? 아울러 어떤 사람이 말리려 하면 문제가 더 커지고 갈수록 더 복잡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시비관계 속에 휘말려 들어가 상황을 더욱 어이없이 변하게 하는가.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러고도 수련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속인만도 못하다.”고 평론한다. 그러나 이런 평론은 거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대법제자 간에 모순을 야기 시키는 원인을 분석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자아에 대해 너무 집착하며, 수련되지 못한 일면이 정에 따라 움직인 표현이다.

2. 구세력에게 이용당했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표현이 나쁠 때를 이용해 저애력을 만들고 대법제자를 끌어내리려 한다.

3. 선해(善解)가 필요한 대법제자가 생생세세 맺은 원한. 만약 대법제자 서로 간에 연분이 아주 큰 생명이라면 생전 생생세세에 많고 많은 끝없는 연분을 맺었을 것이며, 그 사이엔 적지 않은 서로간의 은원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번 세(世)에 우리가 수련할 때 표현된 것이며, 아울러 대법의 도움 하에 미혹을 타파하고 원한을 풀어갈 것이다. 만약 자신이 동수에게 빚을 졌다면 아마 이 일세의 동수에게 ‘상해’를 당할 것이며, 만약 다른 사람이 전세(前世)에 자신을 상해했다면 아마 이 일세에 무의식중에 수련생을 상해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물론하고 이를 억제하고, 솔직하고, 선량하게 ,너그럽게 타인의 각도에 서서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것은 늘 유쾌하지 못한 것을 해결하는 기본 방법이다 .

4.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에서 넘어가야 할 고비. 어쩌면 그 일치하지 못한 의견, 부동한 견해가 바로 사부님께서 수련의 길에 우리에게 배치하여 우리를 도와 제고하게 하신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 우리의 일사일념을 사부님께서는 조금도 빠짐없이 보고 계시며, 아울러 우리의 수련궤적마저 다 기록하고 계신다. 매 하나의 기회는 두 번 다신 없으며, 이런 유쾌하지 못한 것을 신중하게 대함은 우리에 대한 사부님의 기대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대법제자간의 모순은 누가 제일 기뻐하겠는가, 당연히 대법제자가 수련 성취하여 정과를 얻는 것을 바라지 않는 구세력이다. 대법제자가 인심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대법제자가 서로 질책할 때 본인의 씬씽이 떨어지고 공도 떨어질 것인즉, 대법 군체에 대해서도 파동이 생길 것이고, 정체적 협조에 영향을 주며, 그 지역 대법제자가 하는 일의 법력(法力)이 대폭 꺾일 것이다. 물론 사악한 당도 아주 기뻐하는데 그것들이 특무를 파견해 교란하려면 큰 돈이 필요하지만 효과는 별로인데 대법제자들이 서로 내부적으로 소모 한다면 이는 바로 그것들의 염원에 들어맞는 것이다. 대법제자 간의 모순은 진정으로 원수가 기뻐하고 친한 사람이 괴로워할 일임을 볼 수 있다.

모두들 한곳을 생각하고 힘을 한곳에 집중한다면 일은 상상하지도 못한 결과를 발생할 것이다. 억울함을 당했는지 당하지 않았는지는 사부님께서 아주 똑똑히 보고 계신다. 만약 법으로 본다면 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대법 앞에서 매 한 생명의 사고와 은원(恩怨) 그것은 얼마나 작디작은 일인가, 또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대법에 해결할 능력이 없겠는가? 수련인 중의 일은 사람의 변명과 항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 귀가에 속인에게 들려주던 노래 가사가 들려온다.

생명은 본래 천상의 신선
인생의 성패는 흩어지는 눈앞의 연기.
시비(是非)는 본래 전생의 원한
법을 얻고 미혹 깨쳐 푸른 하늘에 오르세.

문장발표 : 2008년 2월 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2/5/1717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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