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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혼인을 희생시켜 진상을 알게 하는 것은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2월 3일] “자신의 혼인으로 남이 법을 얻게 하다”와 “노제자는 마땅히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제에 관하여, 사부님께서는 이전에 이 방면에 대한 법을 모두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일부 노수련생들에 있어서,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이성적이 되지 못하고 관념속에 바르지 못한 것이 존재하도록 종용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우리 대법제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손해를 받고 고생을 하더라도 편리를 남에게 주어야 한다. 이는 심성과 경지가 제고된 표현이며 자비하고 너그러운 표현으로써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데 있어서 양호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바 이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어떤 수련생은 이 문제상에서 좀 극단적이며 늘 일부 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끌려 가거나 심지어 자신의 혼인 혹은 개인 감정을 중생이 진상을 알게 하는 “교환조건”으로 삼거나 이를 구실로 자신의 집착심을 덮어 감춘다.

그런데 괴상한 것은 이런 작법이 일부 노수련생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 편의 교류 문장에서 나는 이런 심득 체험을 본적이 있다. 유리실소한 한 수련생은 이혼한 후 한 남자의 눈에 들게 되어 그녀와 결혼하자고 하였다. 시집을 가느냐 안 가느냐는 원래 자신이 어떠한 길을 선택하며 혹은 어떠한 집착심을 버리겠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혼했는지 마땅히 안으로 잘 찾아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동수와 상의한 후 뜻밖에도 이러한 결론을 듣게 되었다. “만일 네가 그에게 시집가지 않으면 그가 법을 얻는 것을 지체시킬 수 있는데 그것은 곧 너의 최대의 범죄로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튿날로 결혼수속을 밟았다. 비록 그녀 남편이 느릿느릿 대법에 접근하긴 했으나 여전히 그녀의 수련과 법실증에 일부 교란을 조성하였다.

또 한 노수련생은 남편이 박해받는 동안에 한 남자가 “법공부 하고 진상을 요해한다”는 것을 미끼로 그녀를 유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강간하여 임신하고 애를 낳았으며 동거하였다. 처음에는 그 수련생의 진상알리는 것을 제한하더니 나중에는 바깥에 나가 요언을 살포하고 대법과 사부님을 모욕하였다. 후에 그 수련생은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자신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끝내는 간부(奸夫)를 떠날 결심을 내렸으며, 어둠속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나날을 결속짓고 모 큰 도시에 가서 유리실소하였다. 그런데 생각 밖에도 한 노수련생이 그녀에게 그 간부에게로 돌아가 계속하여 부정당한 관계인 더러운 생활을 하라고 권유한 것이다. 이유란 그녀가 나간 것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대법에 저촉되게 할 수 없으며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또 이런 여자 수련생을 알고 있다. 좋지 못한 심보를 품은 남자가 진상을 요해하고 대법을 배우고 싶다는 구실로 늘 치근덕 거리면서 관계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면서 그녀에게 정신적 압력을 주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상대방은 대법이 나쁘다고 여길 것이고 만약 그의 요구를 접수한다면 곧바로 남녀관계를 혼란하게 할 것이다. 바로 이런 모순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역시 일부 노동수의 “법에 영향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의 용인을 받았다. 반 년 후 여 수련생은 사악에게 납치를 당해 3년 형을 판결 받고 지금까지도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의 작은 진에 갇혀있으며 진상 알리는 사업은 여전히 마비상태에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실 사례는 모두 법리상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표현이다. 바르지 못한 것으로 어찌 법을 실증하랴? 당신에겐 오직 육신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런 방식으로 또 몇 사람이나 구할 수 있겠는가? 사실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하는 것은 대법 자체의 위력과 대법제자의 정념정행이다. 자신의 몸을 대가로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하거나 법을 배우게 한다면 이것은 돈으로 사람을 사서 진상을 듣게 하고 돈으로 사서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모두 더러운 심리 상태와 행위인 것이다.

만약 신수련생이라면 그건 대법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노수련생이라면 그건 바로 대법에 대한 모독으로서 대법제자 칭호에 대한 손상이다. 이런 심리상태의 배후에는 반드시 무슨 집착심이 숨어있을 것인데, 대법으로 구실을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명, 리, 색, 기, 정, 안일을 구하는 마음 등이다.

사람이 구도받지 못할까바 두려워하는 동수들이여! 무엇 때문에 집착심을 버리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정념을 제고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가? 남을 이렇게 하도록 권유하는 그런 동수들은 실제로 사실에 대한 요해가 적거나 편견이 존재하고 협애한 인식 관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여기에서 다만 개인적인 견해를 제출했을 뿐이므로 만일 말이 너무 중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양해를 바라는 바이다.

문장발표 : 2008년 2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2/3/1716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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