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북경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월 11일】 우리가 문제를 토론하거나 무슨 일을 설명할 때면 법을 인용하거나 사부님 말씀을 인용하는데 이는 우리 대법제자 가운데 늘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수련 중에 깨달은 이치를 합당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체험을 표현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고 계발시킨다. 어떤 사람은 집착으로 사부님 말씀을 방패로 삼아 다른 사람을 가로막으며 자신을 덮어 감추는데 이는 사람마음이다. 나 개인의 교훈을 말하자면 대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황이 있다.
교류할 때 자신을 덮어 감추고 다른 사람이 말로 자신의 표현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폭로하면 사부님의 한마디 말씀을 들고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상반되는 의견을 표현하거나 문제의 다른 한 측면을 들고 나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더 이상 계속해 나갈 수 없게 만들어 문제를 덮어버린다. 자신은 마음이 아주 착실하고 편안하며, 사람마음도 감춰져 폭로되지 않았다. 인식한 것도 없으니 물론 제고도 없으며, 두루뭉술하게 넘겨 버린다. 인용한 말이 모두 사부님의 말씀이라 “법에 있었으므로” 남들도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한 가지 일이나 혹은 남이 깨달은 하나의 이치를 말하면 자신도 반대하지 않는데 아마 옳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말한 체험과 깨달음을 듣는 습관이 없으면서도, 늘 말하려 하고 참견하며 기회만 있으면 끼어들어 다른 사람이 말하는 주제와 사로를 잘라버리고는 사부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인용해 자신도 이렇게 깨달았다고 과시한다. 심지어 그래도 이 문제 상에서 사부님의 원 말씀이 어떻다는 것조차 알고 있기에 자신이 잘 수련했다거나 적어도 남보다 못하지 않으며 심지어 남보다 더 낫다는 것을 과시한다. 하지만 남의 말을 채 듣지 않았기에 그 사람이 결국 무엇을 진정으로 표현하려 하는지 모른다. 수련인이 수련 중에서 자신의 실제 체험과 결합해, 더욱이 하나의 난속에서 걸어 나왔을 때의 법에 대한 그런 절실한 체험은, 법의 힘이 진실하고도 생생하게 체현된 것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모두 지극히 좋은 일깨움이자 촉진하고 돕는 작용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한 가지 일을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토론할 때도 비슷한 표현이며 또 다른 형식도 있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마치 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하며 인용을 잘한다. 하지만 늘 실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려 하거나 토론 주제가 결론을 맺지 못하게 하여 실제 작용은 모두 좋지 않다.
수련이란 오직 마음을 닦는 것만이 진실한 것이며 표면적인 현상은 아무리 많고 많아도 아무것도 아니다. 사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이런 것은 수련하는 제자로 놓고 말할 때 신성하면서도 늘 발생하는 일이다. 그 표면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며 심지어 여전히 수련인이 집착하는 표현일 수 있다. 안을 향해 찾는 외에도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데, 이외에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법은 그렇듯 크기에 우주의 그 무엇이든 다 말했다. 단지 모든 문제를 말했을 뿐더러 또 문제의 모든 방면을 말했다. 이렇듯 위대하고 신성한 법에 대해 우리는 완전히 신성하고도 순결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이용해 자신을 덮어 감추고 있으니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너무나 부끄럽고 또 너무나 두렵다!
이것을 써 내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이 더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 방면에서 자신의 인식과 경각성이 심화될 수 있기를 희망해서이다. 만약 동수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럼 아주 좋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1월 1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11/16990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