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요녕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14일】 며칠 전 사이트에서 신운(神韻)예술단 공연의 매표가 정체 상태라는 소식을 보고 나는 이것이 다른 공간에서 사악의 교란으로 온 것이라는 인식이 들어 발정념으로 제거하고 교란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정사대전(正邪大戰)은 ‘신운’의 막이 아직 열리기도 전에 이미 다른 공간에서는 신속하고 맹렬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안다.
어제 저녁 전 세계 통일 발정념을 한 후 나는 특별히 ‘신운’ 공연을 위한 발정념을 시작해 일체 사악의 교란을 제거했다. 손의 에너지가 아주 강대함을 느꼈는데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주시는 것을 알았다. 나는 본래 줄곧 앉아서 발정념을 하려고 했으며 아주 청성(淸醒)했기 때문에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손의 에너지도 아주 강했다. 그러나 30분 정도 지나자 내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왜일까?’ 왜 사악은 감히 사존께서 친히 이끌어 중생을 구도하는 ‘신운예술단’의 구도공연을 교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의 어떤 마음과 집착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이에 나는 두 손을 제인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이전에 내가 ‘신운예술단’과 그 공연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정말이지 찾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찾아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2006년과 2007년 이후 다채로운 전 세계 순회공연으로 성대한 휘황을 창조하고, 지극히 진실하고 순수하며 선량하고 아름다운 중화(中華) 신전문화를 펼쳐 보인 ‘신운’ 프로그램을 에워싸고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운’에 대해 아주 많은 사람마음이 생겨났다. 아래는 이중 일부이다.
◇ 매혹된 마음: ‘신운’의 모든 참여자와 연출자, 무대 앞뒤의 동수들에게 모두 탄복했고, 대법제자들이 공연한 모든 프로를 아주 좋아해 늘 컴퓨터를 끄기 전에 한 단락씩 보곤 했다.
◇ 환희심: ‘신운’을 찬미하는 보도나 ‘신운’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 자부심, 과시심: ‘신운’이 창조해낸 휘황한 성과에 대해 자부하고 오만한 마음이 들어 속인의 문예 공연은 모두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심태였다. 심태가 이미 옳지 않으니 ‘신운’은 자비롭게 중생들을 구도해 바른 길로 되돌아가도록 이끄는 것이지 각 방면에서 바르지 않고 저속한 중생들을 오만하게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망각했다.
◇ 구하고자 하는 마음,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좋지 않은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 올해 순회공연이 보다 훌륭하고 대단하며 보다 휘황한 성과를 거두길 희망하면서 어떤 사람이 ‘신운’에 대해 못마땅한 말을 하면 아주 기뻐하지 않았다. 설사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속으로는 그가 정말로 감상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그를 백안시한다.
◇ 득실(得失)을 고려하는 마음: 공연 매표에 정체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곧 아주 중시했지만 우선 생각한 것은 얼마나 많은 중생이 구도될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신운’의 성공, 성망이 영향을 받진 않을까, 사악이 파괴하는 문장을 써서 우리에게 손실을 끼치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외에도 다른 각종 마음들이 있었다.
이는 도대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만약 안을 향해 찾아보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찾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정체에 마음을 두고 줄곧 정념으로 ‘신운’ 공연을 지지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생겨난 사람마음과 사념(私念)은 이미 순정(純淨)한 마음으로 정념으로 ‘신운’의 구도여행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자비로운 구도여행을 제 1위에 놓지 않고 자신의 성망, 휘황, 찬양을 앞에 놓는다면 그럼 우리는 정말로 ‘예술단(藝術團)’이 된 것이지 ‘신운(神韻)’은 아니다.
자비와 구도를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해에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스웨덴에서 공(功)을 전하고 법(法)을 알리실 때의 일이다. 사부님을 초청한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걱정했었던 수련생의 이야기이다(원말은 아니고 대략적인 의미). “걱정하지 말고 잘 휴식하자. 설사 한 사람이 와서 배울지라도 사부님께서는 오실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고 갑자기 설사 단 한 사람이 와서 공연을 볼지라도 구도한 것이며 ‘신운’의 일은 헛수고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 한 생명으로 하여금 무한히 아름다운 미래로 가게 할 것이다. 물론 절대 한 사람만이 공연을 보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해 자신의 최선을 다하면 되며, 속인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전혀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담은 것은 자비와 구도이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붉은 눈의 돌사자』에 나오는 보살이 거지로 분장해 탁발하다 악인들에게 모욕을 당하지만 사람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고 있었고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오직 자비뿐이었기 때문이다.
번잡한 속세의 망망한 사람들, 지금의 인간세상은 사람과 신이 함께 존재하지만 미혹속의 중생은 몇이나 알 것인가? 대법이 난(難)을 당해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받은 지 8년 구도의 길은 늘 시련과 함께 했다. 사실 우리 눈앞에 마주한 수많은 중생들은 그들이 우리를 찬미하건 반대하건 간에 그들은 우리에 대해 모두 “어디에서 신선을 찾을소냐 마주하고도 신선인 줄 모르누나.”(『홍음(2)』「행중(行中)」)와 같다.
‘신운’ 매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운을 알거나, 입장권을 사거나 사지 않거나, 그들은 여전히 모두 우리의 관중이다. 이 우주 정법의 인간세계란 큰 무대에서 중생은 모두 우리의 관중이며 모두 우리 무대 아래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일체를 가져다주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아울러 그들의 바람은 아주 오래되고 아주 오래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정적(靜寂)과 암흑 속에서 다시 한 번 입장(立掌)하고 발정념을 할 때 나는 갑자기 한 가닥 아주 두려운 것이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느꼈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놀라고 두려운 가운데 마치 온몸의 땀구멍이 모두 일어서는 것 같았다. 나는 한편으로는 발정념 구결을 외우면서 즉각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시니 두렵지 않다!”라고 크게 외쳤다. 이 말을 하자마자 나는 나를 향해 오던 그것이 갑자기 멈춰선 후 뒤로 물러나더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비롭게 제자를 보호해주시는 사부님께서 그것을 해체시켜 주신 것이다. 나는 이 물건이 바로 나의 집착 배후에 숨어 있던 사악이며, 그 두려움은 그것이 해체되기 전의 공포와 죽기 직전의 최후의 발악이라고 본다.
‘7.20’ 이후 나는 일찍이 몇 차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경험 역시 나로 하여금 안을 향해 찾는 위력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여기서 나는 국내외 모든 동수들이 ‘신운’ 전 세계 순회공연을 앞에 두고 공동으로 강대한 정념을 발하면서 순정(純淨)한 마음으로 신운예술단의 휘황한 구도 공연을 정념으로 지지해 줄 것을 희망한다.
개인의 수련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2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2/14/16841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