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월 9일】 최근 전화로 박해단위에 전화를 걸다가, 하북성 탁주시(涿州市) 공안국 국보대대 부(副)대장(隊長) 양옥강(杨玉刚) 무리가 또 파룬궁 수련생의 집에 침입해 불법으로 사람을 체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탁주시 공안국은 지난 2005년 대법제자 유계지(刘季芝)를 박해한 주요 단위 중 하나이다. 나는 최근 2년 동안 박해사건 가해자인 양옥강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고 그의 태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줄곧 그에게 기회를 주고자 생각했다. 그러나 소위 이 기회는 사실 관용(寬容)을 포함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심태는 사실상 구세력이 틈탈 구멍이 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양옥강은 줄곧 대법에 대해 죄를 저질렀지만 나는 도리어 정(情)의 일면(나 자신은 善이라고 여겼다)을 이용해 자신도 모르게 그를 관용했고 그의 본성은 악하지 않으며 단지 당문화(黨文化)의 환경 때문에 심지어 직업상 그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 그의 언어표현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은 나쁜 말을 듣기 싫어하는 나의 심태에 부합되었다. 나는 갑자기 나의 이런 심태가 줄곧 존재해 왔으며 단지 이것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욕을 한 박해자에 대해서도 나는 줄곧 그들에게 관용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아울러 이것이 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구세력이 정법을 교란한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낡은 세력은 바로 나의 홍대(洪大)한 자비를 희롱하고 있다. 법은 중생에게 자비로운 것이지만 위엄(威嚴)이 함께 존재한다. 법은 또한 표준이 있으며 중생에게 불변불파(不變不破)한 것으로서, 이는 함부로 좌우지할 수 없다. 나는 중생에게 자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생명이 정말로 그 일보를 범하였을 때는 법으로 가늠하는 것이며 더 자비롭다면 바로 무절제한 것으로, 스스로 훼멸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런 생명은 도태하기로 정해질 것이다.”
정의 요소 외에도 사실 나는 개인수련 상태에 빠져 있었고 정법(正法)의 각도에서 정념(正念)으로 대하지 못했다. 개인수련의 선(善)을 대법의 위엄(威嚴)보다 위에 놓았고 나의 이 일념이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몰랐다. 또 이런 심태는 일부 대법제자들 가운데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대법제자의 선은 수련자의 일종 상태이며 관용은 선의 일종표현이다. 관용이 비록 받아들이는 것을 대표하진 않지만 받아들이는 성분이 있는데 그럼 바로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원한을 따지진 않지만 그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대법에 대한 범죄는 결코 그 어떤 구실로도 관용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속인 중의 살인자가 생명을 갚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물며 대법에 대한 죄가 아닌가? 물론 살인에도 과실로 인한 살인과 고의적인 살인의 구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원한을 따지지 않기에 그 잘못도 고려하지 않는다(이는 아주 모호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대법에 대한 범죄인데 어찌 그 잘못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해 단위에 전화를 거는 동수들은 늘 서로 격려하며 박해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속에 관용의 심태가 있긴 하지만 박해자는 이미 그들이 대법에 대해 저지른 죄에 대해 침통한 대가를 치르기로 정해져 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은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다』는 경문에서 말씀하셨다.
“현재 대법에 대하여 죄를 범한 모든 악인(惡人), 대법제자에 대한 소위 사악한 고험(考驗) 중에서 이용가치가 없는 자들은 이미 악보(惡報)를 받기 시작한바, 지금으로부터 시작하여 대량으로 나타날 것이다.”
바로 한 대륙 수련생이 쓴 『대량의 현세현보(現世現報)는 박해를 결속하는 중요한 길』이라는 문장에서 쓴 “사부님께서는 이 구절로 이미 악보를 받을 범위를 정해 놓으셨으며 여기에는 무슨 논쟁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구술을 기록하거나 문장으로 기록하거나 감시하거나 불법심판, 판결 등에 이르기까지 (박해에) 동참한 자들은 모두 다 악보를 받을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박해자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기회는 대법에 대해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는 속인이 단지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사상을 없애고 사당(邪黨) 조직을 탈퇴해 짐승의 인기(印記)를 지워버리면 이번 인류의 대도태를 피할 수 있는 그런 것과는 같지 않다. 박해자는 위에 서술한 사상의 변화 외에도 공을 세워 죄를 줄일 기회만 있을 뿐인데 다시 말해 속인이 말하는 감형(減刑)이다. 그들이 악행을 중단할 수 있다면 기껏해야 더 이상 죄를 짓는 것을 피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훼멸되거나 가족이나 자손들에게 재앙이 미치거나 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뿐이며 악행을 중단했다고 하여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련생은 모(某) 악인이 악보를 받아 장기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전화를 거는 동수에게 알려 이 악인에게 늘 “파룬따파하오”를 묵념하도록 격려하라고 한다. 개인적인 인식으로 이는 대법의 엄숙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악인이 악보를 받는 것은 법의 작용인데 악인이 어찌 대법에 대한 죄를 지은 후 대법을 이용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물론 진심으로 참회하고 잘못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정상참작을 해서 죄를 감량해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죄는 아니다. 기왕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보완할 수 없다면 어찌 병이 호전되거나 혹은 치유될 수 있겠는가. 대법에 대해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대법에 대해 아무 죄도 범하지 않은 속인도 단지 머릿속에 대법에 대한 좋지 않은 사상만 있어도 도태되는데 하물며 온몸에 피의 부채를 지닌 악인임에랴?
양옥강 등 탁주 악인은 감히 줄곧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중 한 가지 원인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자신이 악보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외에 사당(邪黨) 독소의 주입 하에 대법 박해 진상에 대해 그들은 이미 판단능력이 없거나 혹은 습관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박해자로 하여금 현세현보하게 하는 것은 제때에 그들로 하여금 추가적인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최근 어떤 수련생은 『악을 행한 자는 반드시 자신이 저지른 일체 범죄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문장에서 한 가지 꿈을 이야기했다.
꿈속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한 한 경찰이 기름 가마 옆에서 크게 울부짖으며 말했다. “방금 톱으로 몸을 절단했는데 이번에 또 기름 가마에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저는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않았고 단지 명령을 집행했을 뿐입니다. 저희도 피해자란 말입니다!” 그 기름 가마 속의 기름은 사람을 태우는 열기로 가득했고 경찰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 꽁꽁 묶여 있었으며 온몸에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런 참상은 우리도 차마 볼 수 없었다. 만약 박해자가 악을 행할 때 제때에 현세현보 했더라면 죄가 여기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큰 면적으로 현세현보라는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누가 감히 대법에 대해 죄를 짓겠는가? 누가 감히 국보대대와 610에 출근하겠는가? 누가 사당을 위해 목숨을 팔겠는가? 물론 악보를 받는 형식과 경중은 법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2년 전 설 무렵 나는 일찍이 모 박해 두목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린 적이 있다. 진상을 알릴 때 그에게 더 이상 파룬궁을 관할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중풍에 걸려 출근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고 심각하게 말해주었고 그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기회는 바로 공을 세워 죄를 감하는 것이며 바로 동료와 부하들에게 더 이상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지 말라고 알리고 아울러 기회가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리며 진심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면서 거부하진 않았지만 결국은 힘없는 소리로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에게 해보라고 권했고 그는 아주 곤란해 하며 어쩔 수 없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분명 그 자신도 이미 이것이 응보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고통스럽게 빚을 갚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또 사람 표면의 악보에 불과하며 내 생각에 적어도 그의 가족들은 감히 대법에 대해 죄를 짓지 못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에서 명확히 알려주셨다.
“어떤 대법 제자는 사악한 생명을 보았을 때 法輪(파룬) 및 대법신통을 내보내어 사악을 제거하고 있고, 또 어떤 수련생은 세간의 사람을 구타하는 흉수, 살인범에 대하여 그가 한정된 시간 내에 보응을 받도록, 수일 내의 어느 시간에서든지 보응을 받게끔 정하여 사악한 요소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였고 나쁜 사람을 억제시켰다.”
이 경문이 나온 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정말로 각지에서 단체적으로 계획적으로 현지 악인 및 감금하는 단위의 악인이 현세현보 하라는 이 중요한 일을 매일의 발정념 중에서 정말로 했는가? 우리는 무슨 상황이 발생해야만 비로소 발정념을 하고 환경이 좀 느슨해지면 또 나태해져선 안 된다. 줄곧 강대한 염력으로 박해가 끝날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물론 정념을 할 때 심태는 순정해야 하며 기점을 바르게 놓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대법이 박해받은 지 이미 9년에 접어든다. 최근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박해 단위, 박해자는 아주 많고 어떤 악인들은 다년간 심지어 9년 내내 줄곧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의 정법에 대한 엄숙성 부족으로 인위적으로 자양한 얼마나 사악이 얼마나 많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악인들에게 대량의 응보가 나타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주 많은 동수들은 이전의 나처럼 사부님께서 손을 흔들어 해결하시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엄을 남겨주셨고 일찍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셨다. 대량의 현세현보는 단지 박해를 결속 짓는 중요한 길일뿐만 아니라 중생을 구도하는 또 다른 일종의 형식이다.
개인의 인식으로 한계가 있으니 동수들의 자비한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1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9/16988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