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흑룡강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1월 4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일체 마음은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하나의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 과거에 여러분은 들었을 수도 있는데,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대업왕생(帶業往生)을 말하면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방면에서는 좀 차이가 나도 조그마한 것의 대업왕생은 다시 수련하면 그것은 될 수 있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전법륜』)
한 수련인으로서 질투심을 닦아 버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이곳에서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최근에 사부님께서는 또 『역시 방할하노라』를 발표하셨는데 나는 이 문장이 단지 아직까지 걸어나오지 못한 그런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아주 진감이 컸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걸은 길, 이런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며 또한 우주의 정법 요구에 배합하고, 정법에 부면(負面)작용을 일으키고 대법제자들에게 악을 행하는 흑수와 썩어빠진 귀신들과 각종 낡은 세력이 배치한 교란과 박해의 요소를 해체시키고 깨끗이 제거하는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大法徒]가 걸은 완정(完整)한 수련, 원만, 위대한 신으로 성취하는 길이다.”
나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참여하는 것과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본다. 오직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참여해야만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고 역으로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떠했는가? 대답은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마음이 제거되지 않았는데 그 속에는 질투심과 같은 이런 좋지 못한 마음이 아직도 때때로 올라와 각종 방면에서 체현된다. 어떤 때는 발견하고 어떤 때는 당시에 발견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서 법학습 중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여기서는 나의 질투심이 표현되는 각종 모습들을 열거해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진상을 알리는 중에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자료를 적게 주면 마음속으로 ‘왜 그는 저렇게 많이 주고 나는 이렇게 조금 주는가?’하고 불평하고 반대로 진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자료를 많이 주면 ‘어째서 나는 이렇게 많이 주는가?’하고 불평한다. 어떤 때 내가 어느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른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면 ‘이것은 내가 구도할 중생인데 당신이 어째서 빼앗아 가는가?’라고 불평한다. 동수와 어떻게 진상을 알릴 것인가 교류할 때 그가 아무리 많은 진상을 알려도 표면상 아주 듣기 좋고 말을 잘하면 ‘무슨 과시할 것이 있는가? 누가 진상을 안 해본 것처럼. 나는 다른 방면에서 당신보다 훨씬 더 낫다.’라고 불평한다. 어떤 수련생이 아주 수련을 잘해 마난이 없어도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며 ‘그는 참 좋겠다, 나처럼 이런 마난이 없으니.’라고 불평한다. 어떤 수련생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는 어째서 이렇게 무사태평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불평한다.
자신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어 감히 진상을 알리고 싶지 않을 때 다른 수련생이 해내면 ‘본래 요즘은 형세가 아주 좋았는데 당신이 이렇게 하니 형세가 긴장되었다.’라고 불평한다. 겉으로는 받아들여도 속으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면서 ‘누가 그렇게 잘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방면에서 당신보다 낫다.’라고 불평한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서 동수와 협력하고 싶지 않을 때면 “당신이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라”라고 한다. 다른 수련생이 명혜망에 여러 번 문장을 투고해 원고가 채택되면 ‘명혜주간에 올라간 문장도 내가 쓴 것보다 못한 것이 있는데 왜 내 글은 실어주지 않고 그의 글만 실어주는가?’라고 불평하는 등등이다.
이런 질투심은 수련인 답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런 질투심을 나는 이미 대부분 버렸지만 이후 수련 중에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발견해 제거할 것이다. 특히 어떤 질투심은 아주 깊이 감춰져 있다.
你看我这些妒嫉心,还像个修炼人吗?好在这些妒嫉心我已去掉大部分了,在今后修炼中继续发现并去掉它,特别是一些潜在的妒嫉心。
사부님께서는 『경지』에서 “악자(惡者)는 질투심 탓으로 사(私)를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한다.”라고 하셨고 『전법륜』에서는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연속 몇 편의 경문을 발표하시어 대법제자들더러 사람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고 하셨다. 질투심은 사람마음 중에서 가장 좋지 못한 마음으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나는 진심으로 아직까지 걸어 나오지 못하는 동수들을 일깨워주고 싶다. 당신들은 질투심 때문에 걸어 나온 대법제자들에 대해 이상한 말을 하고, 자신은 감히 하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동수의 흠을 잡으며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동수의 잘못을 말한다. 무슨 정치에 참여하고 국가와 대립하며 노교소에 잡혀간다는 등이다. 진상을 알리는 동수들을 원망하면서 “본래 이곳은 형세가 아주 좋았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하여 형세가 아주 긴장하게 변했다.”라고 한다. 자신이 연루될까 두려워하는데 당신들은 이것이 바로 사악을 대신해 말하는 것으로 사악을 도와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훼방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동수로서 진실로 당신들이 사부님의 ‘방할’ 아래 각성하여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또 중생들을 위해 책임져야 하며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3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4년 11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4/8825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