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3년 4월 24일】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경지』에서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 탓으로 사(私)를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으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나는 전에 질투심에 대한 인식이 아주 치우쳐 있어 단지 이 마음은 소위 말하는 ‘홍안병(紅眼病 남을 시샘하는 것)’이라고만 여겼고 사부님의 법에서부터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동수와의 모순을 통해 냉정하게 분석해보니 질투심이 포함하고 있는 내포가 아주 많으며 아울러 단독적인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한 생명의 악(惡)한 일면이 조합된 것이었다.
사람이 모순 중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함은 엄격하게 말해 그는 바로 한 악자(惡子)의 표현이다. 그가 한 것이 옳건 그르건, 그가 한 말에 도리가 있건 없건 상관 없이 말이다. 당신이 고집을 부리며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바로 지나치게 상대방의 무리함이나 잘못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해 당신이 자신에게 도리가 있다거나 혹은 옳다는 것에 집착한 것이 아닌가? 이는 바로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한 생명이 지나치게 ‘자아’에 집착한다면 모순 속에서 어떻게 이를 회피하고 서로 다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로 다투게 되면 필연적으로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스스로 불공평하다고 하면서 또 모순을 심화시키는데 이때 만약 당신이 이지적으로 자신을 가늠할 수 없다면 갈수록 화가 나고 또 이 화를 참지 못해 악으로 악을 제어하게 된다. 만약 이렇게 이 일 속에 있다면 당신은 악자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한 사람은 왜 상대방의 잘못, 단점이나 결점을 늘 주시하고 내려놓지 못하는가? 왜 상대방이 잘한 것, 장점, 우수한 점은 꽉 움켜잡고 흠모하지 않는가? 이는 아주 분명한바 한 생명의 경지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것이다. 한 생명의 뱃속에 가득 담은 것이 전부 남의 잘못이라면 어찌 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사람이란 하나의 용기(容器)와 같아서 무엇을 담으면 바로 무엇이 된다는 도리를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사상 중에 담은 것이 남의 잘못, 부족, 결점이거나 심지어 그의 사상 중에 아주 깊이 침적되어 있다면 그럼 그의 사상이 순수하고 깨끗해질 수 있겠는가? 만약 한 생명이 아주 빨리 상대방의 잘못을 내려놓고 대범하게 관용할 수 있으며 아울러 내심으로 진정하게 선의(善意)적으로 상대방의 우수한 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럼 이 생명은 아주 대단한 생명이다. 이는 우리가 한 대법 수련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심태가 아닌가!
질투심이란 이런 구체적인 마음을 언급하게 되어 나는 단순히 없앨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질투하는 심태로 사물을 가늠하고 대한다면 장차 일체 사물에 대한 자신의 보다 높은 인식을 심각하게 장애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런 악자(惡者)의 심태를 개변해야 한다. 하물며 남의 작은 잘못을 죽어라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하는 생명이라면 그의 선(善)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길 수 있겠는가!
“선(善)은 부동한 층차와 부동한 공간에서 우주 특성의 표현이며 또한 대각자들의 기본 본성이다.”(『정진요지 선을 알기 쉽게 해설』)
만약 한 생명이 선을 닦는다면 우선 반드시 사물의 그런 관용하고 대범한 심태를 닦아 내야하지 않겠는가!
한 생명의 칠정육욕이 갈수록 정화되는데 만약 그가 갈수록 선이 없다면 아마 갈수록 악해질 것이다. 대법제자는 단지 칠정육욕을 깨끗하게 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선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비이다. 사부님께서는 특히 나중에 하신 많은 설법 중에서 문제를 ‘선해(善解)’하는 것을 언급하셨고 “강철을 녹일 수 있는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이것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들이 현재 모순 속에서 마땅히 구비해야 할 심태와 경지에 대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으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나는 원망과 증오 역시 질투심에서 생긴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만약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원망과 증오가 있다면 또 어떻게 ‘고생을 낙을 삼는’ 수련심태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정법시기에 처해 있고 특히 동수 사이의 모순을 대하는데 만약 개인적으로 마음을 찾고 집착을 제거하는 데만 국한된다면 이는 아주 부족하다고 본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선자(善者)의 심태로 모순을 대하고 각자(覺者)의 지혜로 모순을 분명히 가려내며 모순을 타파하는 것이다. 이 역시 경지가 승화된 동시에 또 구세력의 안배를 타파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견해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경문을 다시 한 번 새겨보자.
“악자(惡者)는 질투심 탓으로 사(私)를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으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문장발표 : 2003년 4월 2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3/5/5/35274p.html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3/4/24/4901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