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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학습문제를 교류하고자 한다

글 / 산둥(山東)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22일] 14일 명혜망에서 발표한 문장, ‘동수와 아이의 학습문제를 토론하고자 한다’를 보고, 나는 약간의 체험이 있는데 동수들과 이야기하고자 한다.

* 우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서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한다

나는 아이가 둘이 있는데, 법을 들으면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그때 집은 법공부 장소가 되었으며 방 2개에 거실이 하나인 50여 평방미터 되는 공간이 있었다. 공간의 한계로 매일 저녁에 우리 10여 명 정도 되는 수련생들은 집안에서 법공부를 하고 아이는 한 쪽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법공부할 때 어떤 때는 돌아가면서 읽고 어떤 때는 같이 읽기도 했다. 두 아이는 숙제를 좀 하다가 또 법을 좀 듣기도 하는데 두 가지를 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았다.

당시 어떤 동수들은 두 아이의 학습에 영향을 줄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우리 법공부팀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마땅히 책만 보고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초기에 연공할 때 신체의 변화가 아주 컸기 때문이다. 원래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인해 많은 병원에서, 다시는 어떠한 체력적인 일을 할 수 없다고 결정했는데, 지금은 어떠한 체력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법공부, 연공을 견지한 단지 짧은 몇 개월 만에 신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 나로 하여금 확고하게 대법을 믿는 것은 신기하다고 생각하게 했다. 나는 법공부 장소는 정념의 마당이자 일체 바르지 않는 상태를 바로 잡기 때문에 오직 가족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다 줄뿐 어떠한 나쁜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동수들에게, “아이가 법공부를 들으면서 학습하는 것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오직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학습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상적으로 법공부를 해야하고 어떻게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는 과정에 두 아이는 법을 들으면서 숙제를 하게 되었고, 또 두 아이는 아주 재미가 있다고 느끼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법에 감화되어 법을 얻게 되었다.(두 아이는 연공을 하지는 않았다) 두 아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만약 한 학생이 오로지 공부를 잘한다면 자연히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 자체에만 집착하고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정진요지2》 )의 도리를 잘 이해하면서 학습성적은 끊임없이 올라갔고 수업도 점점 홀가분해졌다. 작은 아들은 원래 반에(50여 명)서 거꾸로 10등이었고 수학문제를 풀지 못해 늘 운 적도 있었는데, 10등 안에 들게 되었으며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월반하여 고등학교로 들어갔다.

고시시험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복습을 아주 긴장하게 안배한 정황에서 아이는 계속해서 《전법륜》 및 매 주기의 ‘명혜주간’ 및 여러 가지 진상자료를 보았다. 그때 나는 아이가 너무 힘들다는 사람 마음도 나왔었다. 나는 아이에게, “복습하는 동안에는 너무 긴장되니 복습만 하고 대법책은 잠시 보지 말거라.”라고 설득했다. 아이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대법책을 보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아요. 복습하다가 대법책을 보면 마치 휴식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의 속인의 바르지 않은 일념이 아이에게 지장을 줄 뻔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은 사심의 표현이고, 표면으로는 마치 아이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낡은 관념을 수호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큰 아들은 600점이 넘는 높은 점수로 국가 중점대학에 들어갔고, 작은 아들은 500점이 넘는 성적으로 성(省) 중점 본과대학에 들어갔다. 이것을 말한 것은 당신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 많은 문제는 바로 잡을 필요가 있는데, 대법이 있으면 무엇이든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글에서 말한 교육문제는 대륙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나 개인이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나의 자그마한 방법이니 실험해보기 바란다. 현재, 우선 아이를 이끌어 ‘9평’, ‘해체당문화’를 보게 하고 아이의 정력과 시간을 차지한다고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산둥에는 속담이 있는데, “낫을 가는 것은 보리를 베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磨镰不耽误割麦子)”이다. 학생들은 책을 아주 빨리 본다. 만약 ‘9평’만 본다면 반 나절이면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을 본 다음 무슨 변화가 있는가를 보아라.

다시 《전법륜》을 볼수 있는가를 보아라. 물론 우리는 극단으로 걸어가면 안 되고 우리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압력을 주지 말아야 한다. 학생의 정황에 따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하여 숙제를 할 때 속도를 높이고 기타 활동을 조금 줄이는 것은 거의 할 수 있다고 본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아이로 하여금 법을 얻게끔 인도한다. 마치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서 해야 한다. 과정만 중시하고 결과는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사태가 변화하면 글중의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법은 끝없다(佛法無變)’를 믿는다면 방법이 많을 것이다. 예컨데, 교과서에 사악의 그림이 있으면 연필로 그것을 긋거나 가위로 잘라내면 된다. 물론 반의 환경이 좋으면 잘라내서 태워버리면 가장 좋다. ‘사상품덕과목’, 어문, 역사 이 몇 과목은 학교를 가지 않을 수도 없고 배우지 않을 수도 없다. 우리는 동시에 아이에게 진상을 알려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를 알게끔 해야 한다. 그것은 아이에게 독을 주입할 수 없고 도리어 그것을 잘 폭로할 수 있다. 그것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시험을 볼 때 매 문제마다 모두 풀 필요는 없고 설령 대답을 해도 사당의 답안을 답하지 않는다. 또는 진정한 바른 답안을 답한다.

큰 아들은 우리 시 중점 고등학교에 다닐때, 그들 반에 60여 명이 있었는데, 30여 명의 학생은 사당을 반대하고 사당을 싫어했는데, 이 절반의 학생은 거의 전체 시에서도 우등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시험 점수를 중시하지 않았고 단지 ‘배워야 할 지식은 반드시 배워야 하고 사당의 이론은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들의 시험 점수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고시시험 직후, 모두 전국 중점 대학에 들어갔다. 사실 ‘성적이 만약 좋으려면 반드시 사당의 표준적인 답안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사당의 이론을 포기하고 그것의 답안에 따라 하지 말아야만 성적이 좋아질 수 있고 자연히 과목을 더욱 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가장하고 싶은 말은,

아이를 잘 교육시키려면 좋은 가장이 되어야 하며 이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미래의 희망이자 인류의 엘리트이다. 우리가 만약 교육을 심각하게 본다면, 그것은 또한 집착으로 될 수 있으며 구세력(舊势力)도 틈을 타 우리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을 교란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시를 일으키고 자신이 이 점에서 누락이 있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만약 교란이면 우리는 반드시 청리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발정념하여 철저히 구세력(舊势力)의 안배를 부정하고,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길을 바르게 걸어가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일체 마음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몸으로 길을 걸어가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일을 잘하자.

문장완성 : 2007년 12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7/12/22/1688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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