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7년 12월 16일] 현재 대법제자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중생구도이다. 진상을 알리는 이 일은 전체 정법수련 중에서 보았을 때, 세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았다. 이렇게 이 일의 어려움이 크다고 여긴 것은 우리가 낮은 층차의 생명이 생각하는 각도에서 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중에서 속인이 일하는 것과 신불(神佛)이 일하는 것의 구별을 말씀하셨다. 속인은 의념으로 사지와 감각기관을 지휘하여 일을 하고, 수련인은 의념(정념)으로 공능을 지휘하여 일을 한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 중에서 공능이 작용을 일으키고 신불은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직접 생각으로(신통을 운용한다) 하게 되며 가장 빠른 공간의 시간으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일을 한순간에(사람 공간의 시간에서 보았을 때) 마치게 된다. 사실 우리 대법제자가 정념이 아주 강할 때 생각대로 공능을 운용하였을 경우, 많은 때는 손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그 일은 확실히 이미 성사되었다. (이러한 예는 명혜망에서 많은 정념으로 신적(神跡)을 나타낸 문장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시의 심태가 신불의 표준, 당시의 상태가 신불이 일을 하는 상태의 체현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라고 알려주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대법제자는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 줄곧 여러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미 풍부하고 다채로운 진상하는 방식을 펼쳐놓았고 또한 풍부하게 진상을 알리는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방식과 경험의 풍부함이 정념과 공능의 작용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년 상간에 세간의 각 지역에서 박해가 격화되는 가상이 발생한 것은 아마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풍부하게 진상을 알리는 방식과 경험을 쌓는 동시에 무의식 중에서 점점 정념과 공능의 작용을 홀시한 것 같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끝내 성냥개비에서 서양의학의 정밀계기로 발전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도리어 점차적으로 훌륭한 물건이 많은 서양의학의 설비를 점점 중시하게 되어 점점 한 가지 관념이 형성되었다. 의료의 효과는 주로 설비가 훌륭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아울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무형의 “황색 약물의 기”를 점점 홀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대법일을 하면서 되도록 빨리 “신의 길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으로 승화할 것인가? 이것이 박해를 빨리 결속짓고 최대한도로 중생을 구도하는 관건이다.
99년 7.20 박해가 시작된 직후가 생각난다. 자신의 법공부 시간이 길지 않았으며 수련생들을 아주 적게 접촉하여 일시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표면 행동상에서) 그리하여 반드시 다그쳐 법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매 일사일념에서부터 모두 자신을 바꾸고 일종 가장 순정한 심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정념의 작용을 일으키기를 희망했다. 동시에 대법을 믿는 것은 만능이고 못할 것이 없으며, 자신이 순정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대법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도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모두 거의 1분도 낭비하지 않았다. 설령 집안일을 할 때에도 시간을 다그쳐 되도록 책을 많이 읽고 연공을 많이 했다. 동시에 언제든지 (잠자는 시간 이외에, 책을 보고 연공을 할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외에) 모두 일사일념을 찾고 무릇 나쁜 심태(일체 상서롭지 못한 심태), 잡념, 망념(妄念), 악념, 사념, 위아, 위정, 위사 등등의 나쁜 염두를 모두 배척하면서 멈추지 않고 일사일념을 닦았다. 그때는 염두가 거의 스쳐지나가지 않았고 거의 매분 매초는 모두 일사일념을 거르면서 마치 하나의 기제가 형성된 것 같았다. 이렇게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니 변화가 아주 빨랐다. 표면공간에서 표현된 것은 바로 사상이 아주 빨리 조용해지고 심태가 점점 안정되고 염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었다. 아무때나 다른 공간의 사악이 가까이 다가와도 순간에 느낄 수 있었으며 바로 그 한 순간에 주의력을 집중하면 그 물건은 바로 해체되었다. 다른 공간에서 표현된 것은 바로 매일 모두 왠선(元神)이 몸을 떠나 다른 공간에서 의지와 염력으로 사악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아직 우리에게 발정념과 공능의 운용, 악을 제거하는 일 등을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그때는 확실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공력을 운용하여 악을 제거하고 있었고 매번 다른 공간에서 되돌아 올때에는 마치 밀집도가 아주 크고 반사하는 에너지 공이 있는 것 같았다. 미시적인 신체 일면은 도처에서 끓어 오르고 있었는데 거의 형체를 느낄 수 없었으며(한참 지나서야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에너지가 뚫고 지나간 몸 주위의 물체는 모두 에너지이고 눈빛도 에너지였다. 에너지가 벽에 떨어지면 벽에는 투명하고 칠색(七色) 잔잔한 물결이 펼쳐졌고 전등에 떨어지면 전등의 끈이 흔들렸고 천장에 떨어지면 천장에서는 한 무더기 한 무더기 금빛으로 변하면서 투명한 法輪(파룬)은 때로는 모습을 감추었다가 때로는 또 나타나기도했다……
이러한 상태는 반 년 넘게 지속되었다.(표면공간에서는 어떠한 사악의 교란이나 박해를 만날 수 없었고 또한 어떠한 개인수련의 고비나 난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서 북경에 가서 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법을 위해 지불하고 감옥에 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바르지 않은 일념 때문에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고 배척하지 않은 탓으로 1개월 동안 감금당했다. 감금당한 동안, 구치소 감옥에서 많은 복잡한 죄인들을 만났는데, 그녀들에게 대법은 좋고 박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그때는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몰라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녀들에게 이 몇 마디만 알려주었다.) 개별적인 먀약흡입자 이외에 기타 사람들은 듣자마자 믿었고 나중에 그녀들은 아주 빨리 복을 얻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간 후, 어느날 거리에서 당시 감옥에 있었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녀는 나에게(그녀는 당시 대법에 대한 태도가 가장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과실로 살인을 하게된 죄로 몇 년 판결을 받았었는데 얼마후 무죄로 석방되었다.) 모모는 형벌이 얼마나 감소되었고 모모는 감외집행(监外执行, 교정주-법원에서 법적 규정에 의해 범인을 잠시 감금하지 않고 일정한 기구에 맡겨 감시·관리하게 하는 것)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의 형벌이 감소된 것은, 그녀들의 당시 대법에 대한 태도와 정비례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상 이 단락의 심득으로 단지 이 한 가지를 표현하고 싶다. 바로 수련인의 가장 큰 힘은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는 것과 진상을 알리는 효과를 포함)사람 중에서의 기능과 일을 하는 방식(이것들은 보조적인 작용을 한다)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서 생기고 믿음에서 오며 일사일념을 뚫은 실수(實修) 중에서 쌓인 것이며 어떠한 속인도 모두 도달할 수 없고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염력(정념)이라는 사실이다. 염력(정념)이 얼마나 강하면 사악을 제거하는 시간이 얼마나 짧으며, 그것은 반비례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사악을 해체하는 시간이 아주 길면 그것은 단지 우리의 염력(정념)이 강하지 못했고, 사람이 대법일을 하는 상태가 많았으며 정법수련 중에서 낮은 층차에서 생각하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의 그 경력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이 법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깊었을 때가 아니고 또한 대법일을 하는 기능과 경험이 얼마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확고하게 일사일념을 닦는 것을 결심하고 가장 순정한 심태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은 만능이며 못할 것이 없다고 믿고 결심하였을 때, 오직 이 마음으로 인해, 이때 대법은 바로 끊임없는 힘을 체현해낼 수 있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다. 우리는 아마 많은 시간은 아직 대법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힘이 있는가를 체험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법의 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실수(實修) 중에서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라고 확정하여 말할 수 있다. 수련인이 인간에서 일을 하고 오래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 고정된 사유 방식이 형성되어 개변이 필요한지 생각하기 아주 어렵다. 그러나 정법수련은 우리가 끊임없이 승화하길 바라며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방면에서 최종적으로 신불(神佛)이 일하는 상태에 도달하길 요구한다.(정념, 공능을 이용하여 가장 짧은 시간에 일을 한다) 우리가 현재 되도록 신불이 일하는 상태로 승화하고자 하는 과정은, 우리가 더욱 효율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이고 또한 우리가 정체적으로 대원만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장완성 : 2007년 12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7/12/16/1684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