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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대한 나의 인식

글/성도(成都)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4일】 명헤에 보면 늘 자비를 화제로 한 동수의 문장을 볼 수 있다. 오늘은 나도 동수들과 자비에 대한 나의 재인식을 교류하고자 한다.

나는 1998년 법을 얻었다. 나는 줄곧 자신이 동수들과 마찰이 발생할 때 관용하지 못하고 동수에게 자비하지 못한 것을 고민해왔다. 속인과 모순이 발생할 때면 따지지 않고 관용할 수 있었지만 일단 동수와 모순이 발생할 때면 자비를 찾아볼 수 없거나 혹은 자비심이 아예 생기지 않았고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다. 법리상에서 나 역시 자신이 옳지 못함을 알고 또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며 줄곧 그것을 극복하고 억제하려 했다.

그러나 모순이 오거나 혹은 나의 후천관념을 충격하기만 하면 또 참지 못하고 지나간 후에는 몹시 후회했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제고의 기회를 파악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사존의 제자(미래의 각자)에 대해 선(善)하게 대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바로 이런 상태 하에서 나는 수련이 아주 힘들고 피곤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뿌리를 찾지도 못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서 약 1년 동안 지속되었다.

금년 10월 8일, 나는 갑자기 심한 감기 증상이 나타났다. 온몸의 관절이 모두 아팠고 매 하나의 세포, 매 하나의 피부가 극심하게 아파왔다. 또 고열에 설사까지 동반하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열이 올랐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이는 사악이 나를 박해하는 것으로 반드시 구세력이 내 씬씽의 틈을 탄 것이다.’ 나는 곧 발정념을 하면서 안을 향해 찾았다. 나는 자신이 최근에 나태해진 것을 발견했고 매일 하는 3가지 일을 임무를 완성하는 식으로 했으며 사존께서 말씀하신 중생구도를 비할 바 없이 신성한 사명이자 각자(覺者)의 위덕을 건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내가 이런 원인들을 찾았을 때 내 증상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뿌리를 찾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다음날 법학습 중에 나를 점화해주셨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읽을 때 “그 명리심(名利心)을 전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아예 생길 수 없다.”를 보고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다.

내가 동수에 대해 자비심을 내지 못한 것은 내가 동수에 대한 명리심을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자신을 대조해보니 동수간의 모순에 대해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질책하며 자신이 잘한 것을 이용해 동수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며 수련생이 나의 요구에 따라하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동수의 잘못을 열거하며 질책하거나 심지어 화를 냈다. 수련생이 위생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꺼리고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면서 수련생을 원망했다. 수련생을 도울 때조차 명(名)을 구하는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이 내게 감격하는 마음을 구했다.

한번은 또 다른 동수에게 “이 동수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원망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수련생은 내게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이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데.”라고 대답했다.

명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한가. 한 사람이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또 보다 많은 동수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데 이렇게 남에게 자신의 재주를 보이려는 것은 바로 당문화의 독근(毒根)이다. 다시 안을 향해 찾아보니 나는 자신에게 이익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발견했다. 단지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고만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은 개변하려 하지 않았으며 질투심이 있었고 자아의식이 강하며 또 나보다 못한 동수들을 얕잡아보는 마음이 있었다. 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마음을 지니고 닦아버리지 않는다면 수련하려고 해도 힘들고 또 고생스럽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바로 고생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한손에는 속인의 집착을 잡고 내려놓지 않으며 다른 손에는 신(神)을 잡고 내려놓지 않았다. 때문에 나에 대한 부동한 층차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다행히 위대하고 자비하신 사존께서는 나를 점화해 주셨고 내가 제때 항로를 수정해 사존께서 배치하신 정법의 길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점화해주셨다.

여기까지 쓰자 나는 갑자기 몇 년 전에 꾼 꿈이 하나 생각난다. 당시 꿈속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올라갔는데 위로 갈수록 사람이 적어졌다. 약 4분의 3을 올라가자 갑자기 갈림길이 나타났다. 산을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지만 옆에 난 길은 비교적 평탄해보였다. 그래서 나는 옆길을 따라 걸어가려했지만 이 길을 걸어가자면 작은 계곡을 건너야 했다. 건너간다면 신발이 물에 젖었다. 이때 동행한 사람이 나더러 그 길로 가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 길로 가지 마세요. 그 갈림길로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의 신발을 보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나의 수련의 길과 대조해보니 사존께서는 일찍이 꿈속에서 나를 점화해주셨다. 수련은 안일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고 수련이란 바로 고생을 겪는 것이다. 고생을 겪어야 소업할 수 있고 빨리 업을 갚고 되돌아 올라갈 수 있으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정말로 사부님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경의(敬意)를 드린다. 사존께서는 우리의 수련을 위해 온갖 마음을 다 쓰셨다. 자신의 수련 중에서 아직도 그렇게 많은 부족점이 있는 것을 보니 정말로 마음이 조급하다.

이때 사존의 법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넘어져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그렇다. 잘하지 못했으면 빨리 잘하면 된다. 나와 유사한 문제가 있는 동수들이 나와 함께 빨리 잘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2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2/4/16769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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