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7년 11월 6일】 오늘 우연히 고인(古人)들이 독서할 때 어떤 상태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 意自見 책을 백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과 ‘책 읽기를 좋아하되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好讀書, 不求甚解)’는 것 등을 중시했다. 평상시 나의 법공부를 생각해보니 마치 이런 상태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다. 바로 우리가 지금 이런 방법을 채용해 법을 공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아주 쉽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상업과 후천관념 및 잡념 등을 방임하게 된다.
고대 사회는 지금 사회보다 전반적으로 도덕수준이 높았다. 고인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사상이 단순하고 마음이 조용했으며 책을 읽을 때도 정결하고 단정하며 엄숙한 의용(儀容)을 갖추는데 주의했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해 말하자면 독서할 때 ‘독서백편의자현’과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달하는 효과는 우리 지금의 대법제자들이 법공부를 할 때 구하지 않고 저절로 얻는 독서효과와 마찬가지이다(여기서 말하는 것은 독서가 들어가는 효과는 말한 것이지 대법서적이 고서와 내포가 같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 속세에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고인들이 독서할 때의 사상상태에 비하면 틀림없이 사상업, 후천관념, 잡념의 교란이 더욱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법을 공부할 때 고인들의 독서에 비해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한데, 바로 사상업, 후천관념, 잡념 등의 교란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런 교란을 배제하려면 반드시 법을 공부할 때 주의력을 강화해서 배우고 진정하게 자신이 배워야한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법을 학습하고 법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또한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이 법을 외우는 과정 중에서 제고가 아주 빠르게 느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법을 공부할 때 주의력을 강화하는 이것은 우리 대법제자들이 법공부를 할 때 사상교란을 배제하는 기본적인 방법인 동시에 우리가 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다른 측면에서 법을 공부할 때 우리를 교란하는 일부 관념을 집착하는 표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어떤 때는 그것을 똑똑히 구분하지 못하며 쉽사리 전면적으로 누락 없게 교란을 배제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며 진정으로 자신이 수련하는데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의 법학습을 교란하는 관념표현의 하나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독서백편의자현’과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념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주의력을 강화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런 관념만을 지니고 법을 학습한다면 쉽사리 형식에 흐르면서도 쉽게 관찰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4년 전의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내가 모(某) 설법을 보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몇 단락 설법을 본 후 우연히 책을 덮고 방금 읽은 설법의 표면 문자 내용을 회상해보니 마치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놀라서 다시 처음부터 책을 보았으며 매 한 단락을 보고 나서는 다시 책을 덮고 방금 읽은 단락을 회상해 기억하지 못하면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한 단락 설법을 읽고 나서 이렇게 자신을 검사해보니 의외로 방금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생각해보았지만 여전히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에 또 연속으로 한번 보고나서 다시 회상해보니 조금 기억이 났지만 애써 기억속의 인상을 찾으려 해야 했고 그나마도 그리 분명하지 않았다. 이에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그중 한 구절의 표면문자만 기억할 수 없었다. 책을 펼쳐보니 종교의 두 가지 목적을 설법하신 부분이었다. 이에 나는 이 구절에 중점을 두고 외운 다음 다시 보고는 책을 덮고 떠올려보았다. ‘종교에는 어떤 두 가지 목적이 있는가?’ 그런데 여전히 기억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소단락을 하나 읽는데 여러 시간이 걸려서야 기억에 아주 깊이 남았고 법학습 효과가 아주 좋음을 발견했다. 이에 다음 단락도 이렇게 학습했다. 이렇게 하자 몇 시간 동안 겨우 한 페이지 좀 넘게 읽었는데 이는 평상시에 비하면 아주 적은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 몇 시간 동안 학습한 법의 인상이 아주 깊어 한두 달 후에도 비교적 뚜렷하게 당시 보았던 설법을 기억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때부터 지금까지 종교의 목적을 생각하기만 하면 곧 그 두 가지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이 구절 법의 문자내포가 기억에 남았다.
[편집자 주: 이곳은 작자 개인의 심득이다. 동수들이 법을 학습할 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에 따라 하면 되며 억지로 모방해선 안 된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바로 당시 내가 평상시 법을 공부할 때 일종 ‘독서백편의자현’과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는 관념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동시에 또 법공부는 마땅히 구하지 않고 저절로 얻어야 한다는 도리를 기억하면서도 법학습 과정 중에 아주 많은 경우 분명한 의식으로 주의력을 강화해야 함을 망각했다. 때문에 자신이 당시 법을 학습할 때 종종 형식에 치우쳐 효과가 좋지 않았고 또 시간을 낭비했다.
한번은 『구평』 전자서적을 읽을 때 어떤 부분에서 작자에게 아주 강한 쟁투심과 평화롭지 못한 것이 있음을 느끼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발견해보니 이것은 바로 나의 쟁투심과 증오심 등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평화로운 심태와 어투로 그 부분을 읽어보니 문장이 차분하며 조리가 있고 침착한 심태였음을 발견했다. 이 부분 문장에는 애초 내가 생각했던 그런 문자적인 내포가 전혀 없었다. 그때 나는 『구평』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당문화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다. 『구평』 중에는 사악한 당이 예전에 사용했던 일부 당문화 용어를 인용하고 있고, 수련하기 전에 내가 그런 사당 요소들을 이용해 대화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문화 중의 심태를 사용했음을 보았다. 가령 당문화에 포장된 일부 소설책 중에서 사악한 당이 선전하는 증오, 투쟁철학 등의 요소를 지닌 단어를 보면 자신의 심태도 따라서 사나워졌다. 또 나도 모르게 이런 당문화 중의 심태를 수련 이후에도 끌고 들어왔고, 이것과 표면문자가 비슷한 단어를 보기만 하면 사악한 당이 말한 것과 같은 어투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평상시 법공부를 하면서 어떤 때 심태가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나게 했다. 어떤 때 자신의 심태에 사람 마음, 정서를 지닌 채 사부님의 설법을 보게 되면 바로 그런 어투와 심태 등을 띠게 된다. 이는 실질상 완전히 자신의 사람마음의 왜곡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법공부 과정 중에 주의력을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일종 평화로운 심태를 지니고 법을 공부해야만 비로소 옳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종 온화한 심태로 법을 배워야만 비로소 옳은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법의 내포에 대한 이해가 바로 왜곡될 것이다.
전에 어떤 수련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모(某) 수련생이 단체 법학습에서 책을 읽을 때면 아주 빨리 읽는데 어투가 조급하며 목소리도 커서 옆에 있는 다른 동수들이 그녀가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아주 괴로워했고 그녀와 함께 법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그녀가 책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수련할 요소가 있다. 그러나 법을 읽을 때 듣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도 법공부 과정 중의 심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 이런 말을 들은 내게도 수련할 요소가 있다. 마치 방금 예를 든 큰 소리로 책을 읽는 동수처럼 나도 평상시 성격이 급하고 쟁투심과 일을 하려는 마음이 비교적 강하다는 말을 듣는다.
또 다른 한 수련생이 한 말이 기억난다. “몇 년 전에 내가 모 지역에서 함께 일을 한 노년 여자 수련생이 있었어요. 나는 일찍이 그녀가 법을 읽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그녀가 책을 읽는 것이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자신의 심태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따라서 평화롭고 여유가 생긴 것 같았어요. 그녀는 법을 학습할 때 일반적으로 가부좌를 풀고 앉아서 책을 받쳐 들고 읽었는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작은 소리로 책을 읽었지만,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서도 아주 분명하고 어투가 줄곧 온화했어요. 그녀가 법을 읽는 것을 들을 때면 쟁투심이 생각나지 않아요. 또 아주 오랜 시간 읽은 후에도 책을 읽는 속도가 처음과 마찬가지로 일정해 사람들에게 그녀의 심태가 아주 평온함을 느끼게 했어요. 사실 이 동수의 평상시 심태는 법을 읽을 때 다른 사람에게 주는 느낌과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무슨 쟁투심이나 일을 하려는 마음 등이 없어요.”
물론 법을 학습하는 과정 중에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자세를 단정히 하며 몸가짐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측면이다. 내게도 이런 체험이 있다. 앉은 자세가 바를 때는 법을 공부할 때 갈수록 청성해졌지만 제멋대로 앉거나 비뚤게 앉을 때면 법공부가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고 좀 졸리는 느낌이 있어도 제거하지 못했다. 나는 전에 결가부좌를 틀고 비교적 장시간 진지하게 법학습을 해본 적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 중에서 혹은 이후에 나는 내 몸에서 아주 강대한 에너지가 있어 일부 남아 있던 음성(陰性)물질을 소탕해 버리고 주의식도 아주 청성해짐을 느꼈다.
우리는 지금 갈수록 많은 지역에서 법학습 소조를 만들거나 단체 법학습 환경을 회복하고 있다. 이 환경 속에서 단체법학습을 할 때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진정하게 사람마다 모두 단체로 법을 학습하는 과정 중에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진정하게 자신이 법을 공부한다면 제고가 아주 빠를 것이다. 반면 단체 법학습 때 각 사람이 속인의 요소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곧 서로 교란하는 복잡한 요소와 국면을 초래할 것이며 단체법학습의 효과도 좋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떤 때 개인 법공부가 도리어 단체 법공부보다 효과가 좋게 여겨져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고 싶지 않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문장발표 : 2007년 11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1/6/16599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