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0월28일] 대법제자는 반박해, 정법수련 중에서 이미 8년 남짓한 노정을 걸어 왔다.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데로부터 지금은 이미 점차 성숙되었으며, 또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온갖 마음 고생을 다 하시었다. 대법제자가 완전히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신사신법(信师信法)을 절대적으로 할 수 없었던 탓으로 사악한 생명과 요소에게 틈탈 기회를 가지게 하였고 그리하여 박해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개인의 인식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전면 부정하며, 구세력이 존재하는 자체마저 우리는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재삼 알려 주셨다. 우리도 늘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전면 부정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에 부딪치기만 하면 마음이 곧 움직이고 신사신법의 정도가 깎이어 전면 부정을 할 수 없게 되고 사람마음으로 대하게 되며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또다시 구세력이 안배한 길로 걷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박해가 오늘날까지 끝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 절대적인 신사신법을 할 수 없는 근본 원인은 여전히 “사(私)”에서 온다
우리가 오늘 파룬따파 수련을 선택한 것은 구우주의 사를 위한 본성을 닦아 버리고 신우주의 남을 위하는 본성에 동화하기 위해서이다. 즉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법정각으로 수련성취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중, 사부님이 전하신 파룬따파를 배워 파룬따파에 동화되며, 사부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그 어떤 동요도 없을 때가,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우리가 곧 어떻게 할 수 있을 때가, 바로 진정으로 구우주에서 탈태하여 나올수 있고, 바로 신우주의 생명에 동화될 수 있는 때이다. 생각해 보라. 그러면 누가 감히 아직도 당신을 박해하겠는가? 누가 아직도 당신을 감히 박해할 수 있단 말인가?
두려움의 근원은 바로 사(私)이다. 왜 두려워 하겠는가? 바로 사(私)가 궤변을 부린 것이다. 박해 받을까봐 두렵고, 아내(남편), 자식을 잃을까봐 두려우며, 부모 형제 자매를 잃을까봐 두렵고, 사업을 잃을까봐, 물질적 이익을 잃을까봐, 식구들에게 훌륭한 생활 조건이 없을까봐, 생명을 잃을까봐 두려운 것 등등이다. 총적으로 바로 하나의 사(私)를 둘러싸고 “내”가 어떠어떠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인데,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를 잊었고, 자신의 사전 대원을 잊었다. 인간세상의 가상을 정말로 여기고, 연극 중의 배역을 진짜로 여기며, 간절히 추구하면서 조금만 잃어도 그지없이 고통스러워 한다.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과 “지켜낼 수 있다”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속인은 모두 죽기를 겁나하지만 어느 속인인들 죽지않은 사람이 있는가? 단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진정으로 생명의 영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 주셨고, 지옥에서 이름을 지워 주셨으며, 하늘에서의 과위(果位)를 안배해 주셨다. 우리에게 대법을 전해 주셨고, 우리를 위해 업을 없애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일체를 감당하셨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어떤 보답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라면 바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어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라는 것인데, 즉 조사정법, 중생구도하는 것이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이미 자신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무엇때문에 아직도 인간의 이런 가상에 집착하는가? 자아(自我), 자사(自私), 이것은 강대한 집착이 아닌가? 무엇을 두려워 하면 무엇을 구해오기 마련이다. 이 방면의 법리를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왜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법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체는 모두 대법제자의 마음에서 촉성된 것이라고.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늘 병이 있다고 여길 때면 당신 자신이 병을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이미 속인 그 기초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속인은 당연히 병을 얻게 마련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연공인으로써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 당신이 구하여 병을 얻었다면, 그 병은 눌려 들어갈 수 있다. 한 연공인으로서 心性(씬씽)은 마땅히 높아야 한다. 당신은 늘 병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병이라고 두려워하는 것도 집착심이기에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자사적인 기점에서 박해를 두려워하고, 사람 마음과 사람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때, 그때의 心性(씬씽)표준은 속인 그 곳으로 간 것이 아닌가?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가 속인을 박해하려는 것은 손쉬운 일이 아닌가”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미래 우주의 주와 왕이며, 우주의 보호자로서 우리가 사악을 제거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사악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사악이 어찌 신을 박해할 수 있는가? 사악이 어찌 감히 신을 박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들은 숨을래야 숨을 틈조차 없다! 여기에서 관건은 우리의 신사신법의 정도를 보는 것인데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은 정천독존(顶天独尊)한 하나의 위대한 신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박해문제는 곧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2》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두려워 하면 그놈은 와서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거늘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지리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노라”
사부님께서는 또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보호하는가?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轮(파룬)은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법 가운데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지금 대법제자들이 발정념 할때 모두 도처에 가서 사악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생각해 보자. 당신이 두려워할 때 사악은 바로 당신의 공간장 내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주 보호자의 신분으로 그를 제거하지 않는가? 무엇때문에 그를 두려워하는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구세력의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체포하고 감금하는 이런 일종 형식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병업 형식의 박해, 색마 형식의 박해도 있는데, 당신을 소침하게 하고 안일을 구하게 하며, 법을 실증하지 못하게 하여 나중에는 대법에서 도태되게 하려는 것이다. 두려움은 대법제자가 조사정법하고 중생구도 하는데 있어서의 최대 장애이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대법제자가 참으로 정념정행하고 절대적으로 신사신법하며, 사부님의 요구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한다면 사악은 감히 박해하지 못할 것인즉, 모두 우리에게 집착이 있을때 사악은 비로소 기회를 엿보아 틈을 타고 들어와 박해하는 것이다. 박해를 두려워할수록 나중에는 박해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싱)이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사부님과 정신(正神)들은 조급하기만 할 뿐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보호를 잃으면 사악이 당신을 박해하려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박해를 종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매 대법제자 자신에게 달렸다. 대법제자가 절대적으로 신사신법을 할 수 있고, 일체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사부님의 요구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면 박해는 곧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가 해낼 수 있다면 박해는 즉각 종결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박해받을 뿐만 아니라 또 중생에게 연루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사람은 대법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마 도태될 것이고, 아울러 당신의 친척, 친우, 이웃, 동료들은 당신이 박해당하기 때문에 대법진상을 감히 접수하지 못하여 구도될 기회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많은 동수들의 체험문장을 읽어 보았는데, 모두 사악에게 박해 받은 후에야 집착을 찾은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먼저 집착을 버리지 못했는가? 무엇 때문에 항상 대법으로 자신을 대조해 보고, 자신의 집착을 닦아 버리며, 주동적으로 사악을 제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박해가 발생할 때를 기다려서야 겨우 집착을 찾아보는가? 무엇때문에 늘 피동상태에 처해 있는가?
교훈과 좌절은 마땅히 우리를 청성하게 해야 하며 더이상 얼떨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간의 일체에 그 무슨 집착할만한 것이 있는가. 그 어느 날 사부님께서 우리를 거느리고 떠나실 때 당신이, “나의 아내(남편), 자식, 부모형제는 어찌하겠는가? 나의 집, 나의 재산은 어찌하겠는가? 나의 식구들은 누가 상관하겠는가?”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큰 한 무더기 집착을 놓지 못한다면 당신이 떠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대법제자의 원만은 하나의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아는가? 당신 앞뒤의 모든 일을 모두 사부가 당신에게 책임져 주고 있는데 당신이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동수들이여, 사람 세간의 일체 집착을 내려 놓자! 우리는 그 어떤 하나의 집착이라도 지니고 원만할 수 없다! 어떤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병업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색욕지심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친인정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물질 이익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동수지간의 질투심을 버리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협조인 사업을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등등… 매 하나의 마음은 모두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당신을 훼멸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세력은 바로 대법제자를 훼멸해버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집착심을 지니고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말라. 진정으로 우리를 낳은 부모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우리 세계의 중생들은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제고를 초조히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에게 원래부터 있지 말아야 했을 집착을 놓아버리고 전력을 다해 우리가 마땅히 구도해야 할 중생을 구도하고 즉각 박해를 종결함으로써 사부님께 만족한 답안을 바치자.
문장발표 : 2007년 10월2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7/10/28/1654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