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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을 믿는 것은 일체를 이룰 수 있는 근본이다

【명혜망 2007년 10월4일】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자기를 잘 수련하고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려면 시시각각으로 사부님에 대한 믿음을 떠날 수 없으며, 정법이 최후의 단계에 도달한 지금은 특히 그러하다. 사부님에 대한 견정한 믿음이야말로 최대의 정념이고 일체를 잘할 수 있는 근본이다. 당년에 예수가 법을 전하던 시기에 말했다.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바로 하나의 믿는 문제이며 바로 이렇게 간단한 도리이다.

사부님을 믿는 것은 일종의 역량이고 정념정행하는 원천이며 무조건적인 것이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는 것은 사부님을 믿는 근본 보증이며, 사부님의 설법에 따라 시시각각 자신을 대조하는 것은 사부님을 믿는 구체적인 체현이다. 사부님을 믿는 것은 응당 생명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하며 응당 금강불동이어야 한다. 어떤 동수들은 말하기를, 대법진수제자는 사부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 그러나 어떤 때, 우리는 사부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동수들이 관을 넘을 때 표현되어나오는 불량한 상태는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잔혹한 박해속에서 엄마를 부를 때, 관건적인 그 시각에 믿는 것은 사부님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아주 많은 때 우리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중에서 언제나 일을 하는 일종 관념의 틀에 빠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믿는 것은 그래도 자신의 관념과 혹은 이른바 경험이지 사부님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수련원만하게 하시는 분은 사부님이시고, 새 우주의 무량한 대궁을 만들고 진정으로 무량한 중생을 구도하시는 분도 사부님이시며, 기타 어떠한 생명도 모두 무능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사부님에 대한 견정한 믿음을 해내지 못하면, 일체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불교중에서 “아미타불” 그 한 법문은, 오직 진심으로 염불을 읽기만 하면 장래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기실 가장 관건적인 한 점은 바로 믿음의 문제이다. 사부님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 단순하게 법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법속에서 자신의 집착에 부합되는 일면과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는 것만 찾는 것이며, 혹은 법을 빌어 자신의 관념과 체면만 보호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가짜 믿음이며 진수(眞修)가 아니다. 노동교양소의 그런 사오자들도 법에 대한 믿음을 말하면서 도리어 인간세상에서 사부님을 믿지 않으며, 따라서 단장취의하여 대법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은 사부님이 전하신 것이고, 법을 믿는 전제는 반드시 사부님을 존경하고 사부님을 견정하게 믿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사부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면 나도 어떻게 믿는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도 아주 많은 동수들이 반박해와 중생구도 중에서 침착하게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일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신기한 일들과 정념정행한 표현, 박해 속에서 “신통”을 자유로이 운용하는 그러한 동수들, 이런 것은 모두가 사부님에 대한 견정한 믿음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대법제자는 여러 해의 수련 중, 자신이 직접 겪은 경력과 동수들간의 교류를 통하여 자신과 동수들의 몸에서 발생한 많은 신기한 일들은 사부님을 믿은 법력의 표현임을 능히 증명할 수 있다. 정념정행하는 대법제자들을,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어떤 때, 마난이 올 때, 그래도 사부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능력이 있는 대법제자라는 것을 잊어버리며, 그리하여 사람의 방법과 경험, 사람의 이른바 “지혜”로 대하면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신의 지혜를 사용하여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을 믿는 것과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것 사이의 근본적인 구별이며 사람과 신의 구별이다.

대법제자는 응당 명백하게 알아야 하는 바, 우주대궁은 정법하고 있으며 사부님께서는 인간세상부터 최고층차에 이르는 일체 우주정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사부님의 자비와 위엄은 함께 있는 것으로, 수련은 표준이 있고 아주 엄숙한 것이다. 사부님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때면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고층차에서는 바로 “선택”이란 법을 말씀하셨으며, 누가 할 수 있으면 누구를 선택한다고 하셨다. 그럼 사부님께서는 어떠한 생명을 선택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누가 사부님을 견정히 믿으면 누가 사악의 박해를 타파할 수 있고, 누가 사부님이 말씀하신대로 걸어오면 바로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 미래의 수요이고, 미래 새 우주의 표준이며 사부님께서 새 우주 미래에 남겨놓은, 우주의 원용불파를 보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표현이다.

현 단계에서 개인의 인식으로서, 부족한 점은 지적하여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문장완성:2007년 10월2일
문장발표:2007년 10월4일
문장갱신:2007년 10월3일 23:07:04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0/4/16379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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