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 28일】최근 1,2년 동안 나는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할 때 항목에 참여한 동수들이나 혹은 보도원들과 끊임없이 모순이 발생했는데 일부 문제 때문에 동수 혹은 보도원들과 가끔 끝없이 쟁론했다. 어떤 때는 또 아주 격렬했다. 자신도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지만 충돌은 줄곧 끊이지 않았고 무슨 집착심에 의해 조성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두 차례 점화해주신 후에야 나는 비로소 이 속에 아주 강한 질투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일찍이 내가 일부 항목을 할 때 항목의 협조인 혹은 보도원과 의견이 달라 모순이 발생했다. 원인은 일반적으로 어느 일에서 나는 마땅히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가장 빠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즉 ‘답안은 뻔하지 않은가, 당신은 왜 이렇게 하는가, 또 많은 시간을 들여 토론하거나 왜 그렇게 하는가? 혹은 마음속으로 협조인 혹은 보도원의 능력이 모자라 이 항목을 감당할 능력이 못 되어 여러 사람들의 일을 더 힘들게 하고 시간과 정력 등을 낭비시킨다.’라고 여겼다. 결국 나는 소극적으로 수동에 처해 일을 하거나 혹은 ‘수련생이 자기 생각대로 하게 하자. 나도 지치도록 말하고 지치도록 도왔으니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지적해주면 그만이니 당신들을 도와줄 수 없다.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라.’라고 하면서 동수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이런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어 돌파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전법륜』 제7강 ‘질투심’을 읽을 때 사부님께서는 ‘신공표’가 되지 말라고 점화해주셨다.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나는 자신이 ‘신공표’와 같았음을 알지 못했는데 제 딴에 어느 수련생은 “나이가 많고 재간이 없는데”(언어에 문제가 있고 일 처리가 느리며 연세가 많고 학력이 낮으며 잔소리가 많고 성격이 강하다는 등등) 또 능력 있는 동수(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더러 ‘봉신하지 않게 했다’며 ‘질투가 심하고 늘 강자아를 교란했다.’ 사부님께서 내게 이 한 점을 점화해주신 후 나는 이 방면에서 비교적 주의했다.
후에 내가 다시 일을 할 때 동수에 대해 이것저것 지시하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달라 모순이 발생하는 상황이 다소 개선되었다. 그러나 일을 할 때 수련생이 나에 대해 ‘이것저것 지시하거나’ 건의를 제기할 때면 나는 불쾌했다. 더욱이 그가 나와 같은 일반 수련생(항목의 협조인 혹은 보도원이 아닌 수련생)이거나 그가 항목에 참여하지 않거나 혹은 항목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 수련생이 내게 건의를 제기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화가 나서 불평했다.’ “당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신도 배워서 해보지 그래, 어렵지도 않은데!” “당신은 왜 제고하지 않는가?” “나는 이미 아주 바쁜데 당신은 또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끝이 없네.” “자신은 하지도 않으면서 끝없이 나를 지휘하려고만 해.” 혹은 “내겐 그것을 상관할 시간도 정력도 없다.”는 등등. 이번에 사부님께서는 더 많이 점화해주셨는데 여전히 ‘평등주의’ ‘질투심’이 농간을 부린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더 한층 나의 ‘질투심’을 점화해주셨다. 즉 다른 동수들과 왜 잘 협조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먼저 말하다가 지치고 도와주다가 지쳐, 소극적으로 태만해지다가 결국은 그만두었는가, 바로 우리가 정체적으로 한 가지 알을 할 때 그들이 나의 기대에 따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자신은 마땅히 해야 일을 잘 하고 있다”(『전법륜』 제7강)고 생각하여 나중에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좌절했다. 그러면서도 또 자신의 문제를 찾지 못하고 여전히 남들은 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동수들과 정체적으로 협조하여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할 때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하고 속인이 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것을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를 점화해주셨다. 또 남들이 모두 찬성한다고 하여 자신의 것이 좋다고 여기고 내려놓지 못한다면 안 된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 법신께서 상관하고 계시므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 한다. 법을 실증하는 항목이라는 구실로 자신의 집착심과 이익의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나는 ‘이익’에 대한 진일보의 이해가 있었다. 나는 ‘이익’이란 반드시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인식했다. 수련인을 놓고 말할 때 ‘이익’은 또 ‘명’과 ‘정’을 포함하고 있는 즉 당신의 뜻에 부합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며 일이 당신의 이상적 결과에 미치지 못했다는 등등이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것’은 모두 부동한 층차의 ‘이익’으로 모두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점화해주셨는데 내가 평상시 동수들과 수련할 때 나타난 질투심의 표현이다. 왜 가끔 수구하지 못하고 왜 동수들 사이에 간격이 생기는가. 우리는 불복하거나 질투심으로 인해 결국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하고 구세력과 공산사령에게 틈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마음을 비우라고 점화해 주셨다. 新수련생의 의견을 얕보지 말고 老수련생이란 틀을 차리지 말며 수련생의 의견은 모두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내게 평소 수련생들이 단체로 교류할 때 일부 수련생의 수련 체험에 대해 왜 참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점화해 주셨다. 부동한 수련생의 수련 심득체험 혹은 깨달은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모두 소중히 들어야 하고 얕잡아 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중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나에게 수련 중에서 강함을 비기고 승리를 다투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여태껏 자신은 질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겼다.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비로소 한 동안 왜 자신의 심성이 제고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는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 (『전법륜』제7강)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 질투심을 닦아내기를 희망한다. 개인의 인식으로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7년 9월 2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9/28/16341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