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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는 자사(自私)에서 말미암아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 27일】 미국 수련생이 ‘우리 즉각 박해를 종식시키자’는 인식을 발표한 이후 우리 대법제자들 사이에는 아주 큰 진동이 있었다. 우리 자신의 인식부족으로 인해 아주 많은 불필요한 손실을 조성했고 법(法)에 치욕적인 박해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후 어떤 수련생은 박해를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마땅히 대량의 현세현보(現世現報)가 나타나도록 하여 세인들을 일깨워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제출했고 이에 대해 우리 역시 심도 있는 교류를 나눴다. 우리가 비록 법리상에서 사악의 일체 박해를 승인하지 않고 현세현보를 이용해 세인들을 일깨우는 층면에서 제고가 있었고 또 공감대도 형성했지만, 우리가 겪은 수련의 길을 더 깊이 분석해보고 또 실제에 적용해보면 박해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사심(私心)에서 오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악이 박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진정한 구실이자 의지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말했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낡은 세력이 존재하여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그렇다면 우리 한번 자문해보자. ‘도대체 어떤 마음인가?’ 사부님께서는 『원만을 향해 나가자』는 경문과 다른 많은 경문 중에서도 언급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많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집착은 무엇인가? 그 마음과 이 근본 집착은 바로 사심(私心)이 아니겠는가?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해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자. 원만에 집착하고, 마난이 클수록 건립되는 위덕도 크다고 여기며, 경찰차가 바로 법선(法船)이며, 감옥은 특수한 사찰이고, 북경에 가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는 등등. 박해의 출현은 우리의 사심이 팽창되어 촉성된 것이 아닌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수련생은 늘 동수 간에 높은 이야기를 한다. “요 며칠 내가 말한 것이 괜찮고 몇 사람을 3퇴시켰다.”는 등이다. 다른 동수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신은 지금 상태가 좋지 않은데 당신 지금과 같은 수련상태라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어디에 놓으셔야 할지 당신이 판단해보라?” 는 등등이다.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전히 나(我), 나, 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늘 청성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법이며 사부님이지 우리가 아니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아주 많은 고난을 겪었고 사실 아주 큰 정도에 있어 우리는 개인수련 시기에 사심을 위해 일부 일들을 과격하게 했고 속인들이 우리를 좀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때 우리는 단지 자신의 수련만 중시했을 뿐 속인이 하는 말이나 느낌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무시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불성의 체현은 마땅히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한 표현이어야 한다. 사악이 우리의 자사(自私)를 구실로 박해할 때에, 우리는 세인들과 직면해 마땅히 대법제자의 풍채를 펼쳐내야 하고, 자신의 언행을 통해 세인들에게 대법을 진정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과정 중에서 우리는 세인들의 감각을 소홀히 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대법은 좋은 것이고 바른 것임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언행은 도리어 그렇게 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대법의 위엄과 자비, 수련자의 풍채를 펼쳐 보이지 못했다. 어떤 수련생은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아주 좋은 진상자료이다.” 하지만 아주 관건적인 이 방면에서 우리는 도리어 크게 소홀히 했고 형식적인 설교와 해석만을 중시했다.

지금 현세현보의 법리를 단독으로 제출할 때 우리는 동수의 폭로 문장 중에서 아무 많은 시원함과 흥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온갖 고난을 겪었음에도 잘못된 생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 탄식하고 애통해 하면서 대법이 구도해주길 기다리는 생명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기만당한 세인들이 우리 수련생을 납치할 때 종종 우리가 우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구원이다. 이후에 비록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할 것을 생각하긴 하지만 우리는 도리어 진상을 모르는 이런 세인들을 소홀히 했다. 그들은 잘못된 생각으로 대법과 적이 되는 길을 선택했고 자신이 지금 큰 죄를 범하고 있으며 장차 두려운 끝장에 직면하게 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급적 그들을 도와 그들이 훼멸될 경지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한 대법제자로서 책임을 다했는가? 만약 대법제자가 자비롭고 진실하게 그들이 직면한 위험을 알려주어 그들이 자신이 일단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되고 회개하며 잘못을 만회한다면 불법으로 감금된 수련생은 자연히 돌아오지 않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늘 중생을 마음에 담아야 하며 중생의 안위(安危)를 고려해야 하는데 우리가 체현해 내는 것은 대법제자의 위엄이지 속인 식의 항쟁이어선 안 된다. 내 기억에 감옥의 한 악경이 채찍으로 수련생을 때리고 있는데 그중 한 수련생이 갑자기 그에게 큰소리로 멈추라고 했다. (옆에 있던 악경의)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면서 그의 양지(良知)를 일깨워주었다. 동수의 이런 모습에 감옥에서 가장 사악했던 그 악경도 감동을 받아 이때부터 더 이상 사람을 때리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절대 악경의 박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마땅히 전면적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미국수도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현재 세인들이 존재하는 진실한 목적을 알려주셨다. 그들은 모두 우리가 가서 그들의 양지를 일깨워주고 이를 통해 법의 자비와 위엄, 그들을 구도할 법력을 펼쳐 보이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며 진정한 대법도(大法徒)가 되어야 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우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 칭호가 단지 호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주 중생들이 모두 탄복하고 경앙(敬仰)하는 영광스런 생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과연 이런 표준에 도달했는가?

‘7․20’ 이후 많은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첫머리에 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라고 하셨다. 나는 매번 이 구절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아주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늘 까닭모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와 주변에 있는 동수들이 한 것을 보면 (사부님의 요구와)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발정념을 보장하는 것도 아주 어렵고, 진상을 알리는 것도 일이 없을 때 하며 자료를 주지 않으면 가지러 가지도 않는다. 조건이 아주 잘 갖춰져 있음에도 남이 자료를 주기를 기다리고 자신이 하면 위험할까 봐 두려워한다. 사부님의 설법집이 도착하면 자신이 먼저 좀 깨끗한 책을 고르고, 많은 동수들의 제고에 사용하는 영상과 음반자료를 자신이 독점적으로 향유한다. 연공 통지가 오면 곧 일어나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대법에서 필요로 하는 일부 일이 생기면 위험하다고 여기면서 다른 동수에게 가서 하라고 하는데 구실은 나는 협조인이기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사(自私)는 구세력이 박해를 협박하는 근본이며 대법이 육성한 생명은 마땅히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이어야 한다. 우리가 사심(私心)을 제거하지 않고서 천상(天象)이 스스로 변하기만 기다린다면 이는 틀림없이 그림의 떡이요 물속의 달을 건지는 격이다. 진정한 박해의 근원을 통찰하고 진정으로 무사무아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철저하게 구세력의 속박을 제거할 수 있고 중생 구도에 영향을 끼치는 일체 사악한 요소들을 해체할 수 있다. 마음을 중생들의 위난(危難)에 두고 대선대인(大善大忍)의 흉금으로 해야만 비로소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 대법제자는 오직 사람을 구할 몫만 있을 뿐이다. 어느 한 세인의 손실일지라도 모두 우리의 유감이다.

층차에 한계가 있고 깨달은 것을 분명히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부족한 곳이 있다면 삼가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10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9/27/16329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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