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25일] 법 가운데서 알게 되었는데 오직 순정한 심태로 하는 일만이 비로소 가장 훌륭한 일이며 비로소 가장 바른 일이다.
마난이 올 때 순정(纯净)한 일념은 지극히 중요하다. 자동차에 부딪치는 그 순간에, 사악에게 박해당하는 그 순간에, 병업이 갑자기 닥치는 그 순간에 ,……, 우리는 순수(纯净)한 심태로 대법제자의 가장 순정(纯正)한 일념을 발했는가 발하지 못했는가?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일념에 달렸고 일념지차는 완전히 부동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씀 하셨다. 수련인으로서 부딪힌 난은 모두 부동한 것이고, 부동한 사람에 따라 난도 부동하며, 부동한 시기의 난의 표현 형식 역시 부동한 것으로서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고비를 넘길 때 정념이 족할 것이 수요 되는데 이 점은 같은 것이다.
사실 7.20 전에 고도의 점오상태에 들어간 한 무리의 대법제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이번 박해를 제지할 능력이 완전히 있었다. 구세력은 감히 그들을 박해하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강대한 정념이 있고, 순수한 심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순수한 정념은 이미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 구세력을 전면 부정하였고 박해의 발생을 저지하였다.
위덕은 얼마나 되는 고난을 겪어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위덕은 위난이 있을 때 심태가 순수한가 안 한가, 그 다음 창우( 穹宇)를 진감할 수 있는 가장 순정한 그 일념을 발하고, 그리하여 위난을 해체하여 최대한 정도로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다. 대도리는 간단하고도 쉬운 것이다. 대법제자의 성숙은 얼마나 되는 전단지를 배포했는가에서 표현 될 뿐만 아니라, 또 얼마나 많은 법공부를 했는가에서도 표현되며, 더욱이 관건적 시각에 그 순수한 상태하에서 제일 순정한 일념을 발했는가 안 했는가에서 표현된다. 이것도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확립하라고 하신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견고한 기초이며, 신우주의 각 주왕의 위덕과 법력이다 .
가령 우리 정체가 모두 이 일념이 있었다면 이번 박해는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치 자동차에 부딪친 그 순간에, 갑자기 뇌혈전에 걸린 그 순간에 사부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했는가,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생각 했는가, 즉각 박해를 종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안 했는가, 원망과 집착이 없었는가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은 필경 개인의 고험을 겨냥한 것이 아닌, 대법에 대한 이른바 정체적 고험을 겨냥한 것으로서 그 사악함을 우리는 모두 예상하지 못하였다. 심태는 사악에게 교란당하여 세인, 그리고 우리와 대응된 우주 범위내의 생명들이 정념을 잃게 하여, 원래는 구원 될 수 있은 무량 무계한 각계 생명들을 훼멸되게 하였다. 우리도 박해를 종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잃게 되었다. 가령 4.25 때 우리가 정체적으로 바른 일념을 발했더라면 사악은 즉각 전멸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몇 사람이나 이 일념을 발할 수 있었는가? 이 일념을 발할 때 몇 사람이나 순수한 상태에 있었는가? 이 한 고비를 넘기지 못했으니 다음 고비는 곧 더욱 어렵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7.20 이후 일련의 이른바 정성승진(定性升级)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비평하시지 않으셨으며, 줄곧 우리를 칭찬하시고 고무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의 부족점을 제기해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미성숙하여 이미 대법에 상상할 수 없는 손해를 가져다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일정한 정도로 대법과 사부님의 무변한 법리를 믿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한때는 속인들에게 희망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병업관을 넘을 때 희망을 의사에게 걸고 있는 거나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우리 매 사람마다 심태의 불순수와 행위의 미성숙은 이번 박해의 발생을 야기시킨 근원인 것이다. 마치 뇌혈전 증상이 갑자기 왔을 때 심태가 불순하여 일념지차로 인해 병을 야기시킨 것과 같다. 만약 그때 교훈을 섭취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원망이나 집착이 없었더라면 사부님께서는 병업을 전부 없애 주셨을 것이며, 박해도 종결 되었을 것이며, 있다 해도 아주 미약했을 것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병업을 없애 주신 후 마치 고만한 검은 기가 남아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을 뿐 더욱 맹렬한 사악의 고험은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훈은 심각한 것이다.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성숙해 지면서 박해를 끝내려면 구세력의 안배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도 알게 되었다. 바로 병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같이, 생사고비인 병업이 왔을 때 털끝만한 의심, 주저, 동요라도 모두 부동한 후과를 가져다 준다. 그렇다면 마땅히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이번 박해가 발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 또한 그 속에 깊이 빠짐에 따라 상황이 복잡하게 변하게 되어 구세력을 전면 부정하는 것조차 극도의 교란을 받게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아직 늦지 않다. 사부님께서 우리의 신통을 열어 주시어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제거하게 하셨다. 발정념은 사악을 제거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념을 그것이 교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은 우리의 미성숙함과 순수하지 못함으로 인한 후과에 대한 일종 구제이다.
사부님께서는 박해를 끝내도록 하는 중임을 왜 우리에게 넘겨주셨을까? 그저 박해 중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하기 위한 것만이 이유일까? 아니다. 이번 박해만 없었더라면 일체를 선해하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사부님께서 우리가 그 속에서 교훈을 섭취하여 재빨리 제고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은 과정이며, 생명이 묘망(迷茫)한 곤혹 속에서 고집스럽게 성숙과 순정에로 걸어가는 과정이며, 대법이 개척해 준 성주괴의 불멸불파의 우주천체가 자아 완미하는 과정이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자신의 길로 걸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 미래를 창조하는 대각자이다. 이 과정에서 단련된 생명은 미래 우주의 불멸의 보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생들은 마땅히 받지 말아야 할 상해를 너무도 많이 받은 것이다. 사실 우리는 완전히 박해를 종결지을 수 있었다. 다만 장시간 동안 우리의 사상 중에 그것을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할 하나의 수련 과정으로 여기고 사악의 출현을 승인하였으며, 또한 사악이 안배한 이른바 고험을 승인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 감히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데, 즉각 박해를 종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기며, 전면 부정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러나 적지않게는 여전히 그 중에 있다.
더는 박해가 계속되도록 할 수 없다. 아주 많은 손해는 우리가 순정하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구세력이 우리 사상 속에 남겨둔 검은 그림자를 제거해야 한다. 구세력은 바로 병업과도 같아 누구의 사상 가운데 그것이 있으면 누가 그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병업에 대한 법과 구세력에 대한 법을 말씀하신 것은 모두 우리에게 그것들을 분명히 가려내고 그것들을 전면 부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병이 생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병을 구하는 것이며, 박해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박해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병이 있다는 것을 승인하고, 구세력을 승인하는 것이다. 지금 점점 더 많은 대법제자들이 성숙되고 있다. 순수한 정념은 이미 그 자신의 세계에서 구세력을 전면 부정하고 있으며 박해를 정지 시키고 있으며, 사악의 교란이 없는 환경가운데서 더욱 빨리 자기세계의 생명을 찾아서 구도하고 있다.
개인의 옅은 인식이므로 삼가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9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9/25/1632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