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7년 9월 19일】 어떤 동수들은 가정의 수련환경이 좋지 못해 오늘날까지도 가정 자료점을 세우지 못하고 모든 진상자료를 다 가정 수련환경이 좋은 동수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그중 일부분은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다 .
가정이란 이 한 고비를 돌파하지 못한 수련생이 매우 많고, 진상자료의 수요량이 크기 때문에 무형 중에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에게 아주 큰 부담을 가중시켜 주었다. 진상자료는 오랜 기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고,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자료제작에 쓰다 보니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할 수 없으며 가사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일에도 아주 큰 제한을 받고 있다. 시간이 길어지자 수련하지 않는 일부 가족들의 원망이 생겼다.
스스로 가정 자료점을 세울 수 없냐고 제기하면 어떤 수련생들은 불쾌하게 여긴다. 자기 집은 가정조건이 나빠서 가정 자료점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면서 자료를 만드는 동수에게 말한다. “당신은 가정환경이 좋으니 마땅히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집착이 포함되어 있는가. 오늘까지도 이런 구실이 있는 동수들은 그냥 마음 편히 기다리고, 의지하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껏 자신도 구세력의 안배를 벗어나 가정 자료점을 세워 동수들의 일부 압력을 분담하고 자신도 이 방면에서 대법을 실증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이런 구실이 있는 동수들, 당신들은 아는가? 가정 수련환경이 좋은 그런 동수들 역시 한 걸음씩 걸어왔다는 것을. 그들은 대법에 대해 반석같이 견고한 바른 믿음에 의지해 오늘까지 걸어온 것이다. 그들은 대법을 견정하게 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과감하게 생사를 내려놓았고 과감하게 눈앞의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았으며, 과감하게 눈앞의 일체 물질적인 향수를 버리고 마침내 훌륭한 수련 환경을 열어 놓았다. 심지어 가족들을 이끌고 수련의 길에 올라왔다. 이런 사례들은 아주 많으며 또한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것은 수련생이 수련해낸 위덕이고,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걸어간 견증이다. 이것은 오늘까지도 가정관계를 돌파하지 못한 동수와의 차이이다. 이런 수련생은 참으로 자신에게 잘 물어보아야 한다. 자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한 것인가?
우리는 하나의 정체로서 정체제고, 정체승화 하여 백 맥이 하나로 이어져 나중에는 무맥(無脈), 무혈(無穴)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정법의 수요이다. 오늘 나는 명혜를 빌어 이런 동수들과 나의 인식을 교류하고자 하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1. 두려운 마음의 배후 요소를 똑똑히 인식해야
어떤 수련생은 오늘까지도 가족들이 자기가 대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있는데 환경을 개척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 왜 가정관을 넘지 못하는가? 우리의 두려운 마음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그럼 우리 오늘 함께 이 두려운 마음의 배후 요소가 무엇인지 파보도록 하자. 두려운 마음의 배후는 가족들이 알면 반대할까 두려워하고 그리하여 눈앞의 이 평온하고 안일한 생활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감정이 상처를 입을까 봐 두렵고 자유를 잃을까 봐 두려운가? 속인의 명리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최대한도로 자아를 수호하려 하는데 기점이 전부 사(私)에 있다.
이 사(私)를 위해 감히 정정당당하게 수련하지 못하고, 대법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놓지 못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를 구도하고 장차 우리에게 일체를 줄 대법이 아닌가! 그럼에도 자아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는 가정의 수련환경을 개척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자신의 근본 집착인 사(私)가 우리의 승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구우주(舊宇宙)의 요소이며, 우리가 수련중에서 반드시 닦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의 공간장에 이렇게 많은 내려놓지 못한 집착과 관념을 지닐 때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도 우리의 ‘두려움’이란 위사(爲私)한 요소의 작용 하에 있는데 그들이 두려워 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임은 가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이 방면에 대해 우리는 반드시 청성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바로잡는 이것은 정법의 수요이고, 우리 우주 중생들의 기대이며 또한 세인에 대한 우리의 자비와 구원이기도 하다.
2. 가족을 바로잡으려면 우선 자신부터 바로잡아야
우리가 가정관을 넘는 것을 저애하는 것에는 또 속인의 관념이 있다. “바로 남이 알면 반대할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수련생은 줄곧 가족 몰래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한번 돌이켜 보자. 99년 7.20 이전에 우리 어느 동수인들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가? 왜 어떤 수련생은 지금 정정당당하지 못한가? “사악한 당이 박해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관념은 사악의 박해를 인정하고, 무형 중에 사악에게 에너지를 주입해 주며, 사악이 가족들을 통제하여 우리를 교란하게 하는 요소를 가중시켜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가족들의 생명 역시 대법이 만들었고 그들 역시 천담(天膽)을 무릅쓰고 법을 얻으러 온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그들의 본성은 무조건적으로 대법에 동화되려 하고 대법을 지지하려 한다. 어떤 동수들은 식구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데 이는 가족들이 구도될 기회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닌가? 가령 구세력이 정말로 가족들을 이용해 우리를 교란한다면 이 역시 우리의 마음을 향해 온 것이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안을 향해 찾음에 주의해야 하며, 두려움이란 이 요소가 우리에게 강요한 이 일체를 닦아 버려야 한다. 오직 우리의 마음이 바르고, 마당이 순정해야만 비로소 가족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에 도달할 수 있고 그리하여 좋은 수련 환경을 개창할 수 있다.
만약 모든 동수들이 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다 가정 자료점을 건립할 수 있다면 이는 바로 구세력을 타파하는 것이다. 죽은 맥이 없고, 죽은 혈이 없을 것이며 또한 모두 맥이고 모두 혈이라 사악이 손을 쓸 곳이 없을 것이며, 큰 자료점이 파괴되고 동수들이 박해받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대법제자이기에, 누구도 대법 가운데서 수련하는 기연을 잃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고 우리가 성숙으로 나아가길 기다리신다. 그럼 우리는 늘 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을 바르게 닦으며, 매 한 고비, 매 한 난을 모두 사람에서 걸어 나와 사람의 관념과 인식을 버려야 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 우리는 꼭 가정의 난관 속으로부터 걸어 나와 신을 향해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7년 9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7/9/19/1629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