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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사(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법속에 용해되다

글/타이완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 10일]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世間)에서 많은 관념을 길었는바 관념에 의하여 이끌어 가기까지 하면서 동경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은 인연에 의해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을 결정하고 있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에 의하여 인생의 매 한 과정이 결정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소위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로 되었다.”
정법시기 마지막에 사람의 마음은 어느 하나라도 남길 수 없다. 그러나 유혹이 난무하고 있는 속인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놓으며 시시각각 대법 수련자의 정념으로 대할 것인가는 우리 대법제자들의 장기적인 과제다. 최근 나는 수련의 길에서 사심의 작용으로 〈구하려는 마음〉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심에서 비롯된 근본 집착은 내가 법속에 용해되는 것을 가로 막고 자비한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명하다〉의 심태로 중생 구도하는 것을 저애한다. 나의 수련과정 중 한 부분을 글로 쓰는 것은, 극단으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며 속인식의 자아비판도 아니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성숙하는 시각에 진실한 나와 가짜인 나를 구분하고 가짜인 나의 교란을 배제하기 위해서이다.

〔명〕을 구하다.

속인시절 나는 다른 사람의 견해와 감수를 마음 깊이 새겨두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명]을 중요하게 여겨 내가 무슨 일을 하던지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랬고, 좋은 평가를 추구했다. 수련을 시작한 뒤부터 그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집착을 두려워”하는 집착이 산생되어 다른 사람과 접촉하기 싫어하면서 늘 조용하게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과 접촉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려야 했으므로 억지로 속인들과 교류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속인 친구가 적어졌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속인들과는 할말이 없기에 시간을 다그쳐 기타 일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이 매 층차의 수련자에 대한 요구는 같지 않았다. 더욱 높은 층차로 돌파할 때 내려놓지 못한 그 어떤 마음도 모두 내려놓아야만 했다. 최근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나는 뜻밖에 나에게 하나의 구하려는 마음이 강렬하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완전히 눈앞의 중생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나를 생각했는데, 그냥 속인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신경이 쓰였고,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다.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나의 강대한 집착을 보여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린다.

〔이익〕을 구하다.

나는 살아가면서 매우 많은 목표를 세워 그 목표를 반드시 완수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쓸모없고”, “보수가 적은” 일은 참지 못하고 시간낭비라 생각하여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여자지만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하려 하지 않았고 시간을 아껴 책만 읽으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험을 보지 않는 체육, 정치, 예술 등은 대충 끝내고 남는 시간에 국어, 영어. 수학 등 중요과목을 공부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내가 “으뜸”이란 관념이 형성되었다. 수련 이후 시간을 다그쳐 세 가지 일을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여 종종 동수와의 교류를 소홀히 했고, 심득체험을 쓰려고 하지 않았으며, 더욱 큰 범위의 시험 수량을 잊었는바 일정한 정도에서 개인수련에 빠져 집착을 버리려 집착했기에 효과 역시 좋지 않았다. 다만 시시각각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것은 “가짜 나”라는 것을 청성히 인식해야만 진정한 자신이 신으로 거듭날 수 있고, 개인이 추구하던 작은 이익이 우주의 큰 이익으로 전변되어 보위할 수 있다.

〔남녀지정〕을 구하다.

수련 이후 나는 줄곧 남녀지정은 중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정법시기 최후단계인 오늘 나는 정의 물질이 이미 속인 때의 사상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일정한 정도로 정속에 빠져 들어가 수련 상태에 일정한 교란을 조성하였다. 안을 향해 찾아보니 나의 몸에 존재하고 있는 정은 일종 “가호 받는 것”, “돌봄을 받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이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좌절했을 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항구가 있어 좀 피하여 휴식한 후 다시 분발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정말 정 속에 뛰어 들었을 때는 도리어 더욱 많은 시끄러움을 불러 일으켜 마음속의 피곤이 감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증가됨을 발견했다. 동수들은 내가 “독(毒)을 빨아 들인다”라고 놀렸는데 이 비유는 정말로 매우 생생했다. 속인의 수법으로 고통을 해결하려는 것은 그 당시는 잠깐 나아질 수 있지만 청성한 후에는 도리어 배로 되는 고통과 자책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진정으로 고통과 좌절을 마주한다면 그것이 감당하기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몇 번 정말 감당하였다면 수련 역시 상당히 큰 제고를 가져오게 된다. 며칠 후 자신을 보면 어제 그 사람이 아님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련은 자신에 대한 장기적인 고험이기에 반드시 견지해야 하며 “절대 느슨하지 말아야 한다.”이다. (《로스엔젤레스시 법회 설법》)

마무리 말

최근 명혜망에는 즉시 이번 사악한 박해를 제지해야한다는 교류문장이 많이 올라와 있다. 나는 즉시 박해를 제지하는 이것은 이미 정법이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이므로 우리 동수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한 박해를 더 이상 감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대담한 담력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온 중생들도 대면적으로 구도되길 기다리고 있으므로, 오직 신념으로 낡은 요소의 교란을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현재 인류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으며 대법이 세간에서 응당 있어야 할 휘황한 위치에 돌아올 수 있다고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문장완성 : 2007년 9월 9일
문장발표 : 2007년 9월 10일
문장갱신 : 2007년 9월 10일 00:21:36
문장위치:http://minghui.ca/mh/articles/2007/9/10/16240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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