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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는 것과 구하는 것 —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기는 과정을 보면서 나 자신의 수련을 보다

【명혜망 2007년 9월 13일】어제 우리 고장에 사는 한 노수련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병업관을 넘기려한 전반 과정을 목격한 나는 마음의 고통을 가라앉히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얻은 체험을 여러분들과 교류하려 한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큰 혹처럼 부은 오른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거리에서 자료를 배포하고 있었다. 그녀의 딸에 의하면, 병원에서도 절단수술을 받는 것 외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견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많은 동수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법공부와 발정념을 했고, 그녀에게서 보여지는 집착도 지적해 주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혼자서 걸을 수조차 없게 되어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법공부를 견지했고 때로는 앉아서 연공까지 했다.

그녀는 나에게 “나는 정념이 아주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날마다 몸이 이렇게 악화되어 갑니까? 저도 여러분과 같이 홍법하고 싶습니다.” 하고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녀가 난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을 보고 반드시 사부님을 믿으라고 격려해 주면서도, 실제로 내 마음속엔 그녀가 정말 나아질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그녀가 날마다 여위고 허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단지 그녀를 도와 발정념만 할 뿐이었다. 교류할 때 그녀에게 승벽심이 매우 강한 것을 보았는데 마치 화강암같은 마음 속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동수들마다 자신에게 정념이 강해야 한다고 하지만, 고생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늘 나에게 “정념이란 무엇인가요?”하고 물었다. 나는 “바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해 주었다. 나도 대륙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수련생이 말한 고난속의 정념에 대해 동감한다. 대륙상황에서의 정념은 해외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치 몸이 건강한 사람은 병업관을 넘고있는 사람의 고통을 다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모진 고통속에서 정념을 유지하려면 요구가 훨씬 높아야 했다.

사부님께서는《전법륜》제4강의에서 心性(씬씽) 제고를 이야기 하실 때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온다.”고 하셨다. 지금 다시 이 단락을 읽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수련생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나 간 것은 다시 만회할 수 없는 기정사실로 되었으며 나에겐 침통한 교훈을 남겼다.《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미 명백히 이야기 하셨다. 정념이란 무엇인가? 자동차가 사람을 십여미터 밖으로 팽개치는 순간, 생긴 일념이 제일 관건이다. 이 단락을 나는 백여 번 읽었고 네 번 외웠어도 진정으로 이해하여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했다. 날마다 법공부를 하였지만 사부님의 말씀을 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릿속은 온통 천 백년 형성된 사람의 이치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세상을 떠난 동수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했지만 자신은 진정으로 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동수의 집착을 보면서 왜 저렇게 버리기 어려워하는가,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일들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고, 나의 마음속에도 역시 화강암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생을 보러가는 것을 공무 집행하듯 대했기에 때론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자신의 心性(씬씽)이 이 정도인데 어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한 번은 그녀가 중생구도 하기에 바쁜 동수님들에게 누를 끼쳐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수련생은 대법제자이지 않은가? 우리가 속인들을 구도한다고 대법제자는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한 주에 한 시간만 그녀와 같이 법공부를 한다고 해서 중생구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동수들이 늘 그녀를 보러 갔었고 어떤 이는 먼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와 만났다. 나는 그녀를 보러 가는 길에 뭔가를 조금 사 갔을 뿐 지금에서야 정말 후회막급이다.

중화 5천년 문명 역사를 보면 속인들도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 많았다. 옛날 거리에서 동냥하는 할머니를 집에 모셔 친부모처럼 모신 사람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수련생으로서 心性(씬씽)이 이렇게 밖에 안 되었으니 나는 수련하는 게 아니고 구하고자 하였고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동수와 법리상에서 교류한 것이 아니고 속인 말만 하였다. 나는 왜 그녀에게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십시오, 당신은 환자가 아닙니다.” 하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녀는 마에 이끌려 한보 한보씩 후퇴하다가 결국 생명을 잃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승인했기 때문임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아프기만 하면 누워 있고 연공도 하지 않았다. 수련인마다 다소 부동한 집착이 있고 모두 크고 작은 업력이 있다. 사람마다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걷고 있고 참조할 것이 없다. 한 수련생은 악경에게 맞아 다리가 부러진 상황에서 평소처럼 가부좌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아파도 다리를 올렸는데 그는 아예 다리가 부러졌다. 깁스를 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강대한 정념이 있었기에 그는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 비록 모든 것은 가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정말 가슴을 도려내고 뼈속까지 파고드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 관을 돌파하였으니 사람의 층차를 벗어난 것이다.

동수의 죽음을 통해 나는 깊은 곳에 숨어있던 나의 집착을 보게 되었다. 즉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실상 나도 속인들이 말하는 조갑사상균증(灰指甲) 증세로 이미 3년간 병업을 겪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병원에 가서 치료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수련인으로서 병업으로 표면에 나타난 고통에 대해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사람들이 물을까봐 두려워했다. 병업의 원인을 찾은 듯 남들이 묻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이유”를 대었는데, 실상 그것을 승인하고 있었다. 체면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 것이다. 비록 모두 병업이지만 고통을 받는 정도가 부동하여 감당할 수 있는 인내력도 다르지만 뿌리는 같은 것이다. 바로 다른 사람들이 수련을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만 바라고 나의 집착이 폭로될까 두려워한 것이다. 병업의 이유가 당당하다고하여 착실히 수련하는 연공인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모두 가상이라고 말하지만 이 추한 손은 가릴 수 없었다. 마치 다른 병업관 마냥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 당신은 승인할 것인가 아니면 소극적으로 감당하고 있을 것인가? 지금 나 자신의 마음을 파보니 오직 나를 위해 수련했고 줄곧 보물을 찾는 사람처럼 무엇인가 얻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앞에 보물창고가 있다는 것을 안 사람처럼 몇 년간 찾고 찾았지만 결국 실망하여 때론 정말 보물창고가 있나 의심할 때도 있었다. 이를 어찌 수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난 날 스님들은 해탈(超脱)하기 위해 장시간 수련을 했다. 우리는 법에서 수련하여 새우주의 요구에 도달해야 하는데 바로 무사무아지경에 이르러야하며 위대한 법을 실증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아직도 구우주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죽음으로 마음이 몹시 아팠던 나는 지하철에서 목메어 통곡했다. 남편이 왜 우느냐고 묻자 나는 화가 났다. 내가 왜 울지 않겠는가? 내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그녀가 마지막까지 걸어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속인들처럼 상심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동수의 돌아갈 곳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기에 상심하지 않지만 우리의 교훈은 심각하다. 우리는 속인의 관념이 아닌 고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아직까지 자신의 위덕과 자신의 원만을 위해 수련하고 있다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칭호는 신우주의 영원한 영예이기 때문이다.

문장발표:2007년 9월 13일
문장분류:[수련중, 이성적 인식을 논함]
원문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7/9/13/1625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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