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법 수련의 진귀한 기록을 남기자

【명혜망 2007년 9월 8일】 명혜 편집부에서 공고한 ‘제 4회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교류회 발표문 투고 공고’ 를 본 뒤 이에 대한 의의가 심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제 3회 대륙 법회 원고’ 모두다 아주 진지하게 읽었는데, 원고 한 편 한 편마다 간고한 환경에서 대법제자가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고 있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글들은 동수들이 정진할 수 있게 독촉하며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더구나 미래에 진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이번 제 4회 법회에 임하는 대법제자는 더욱 성숙하여, 대법수련자로서의 풍모가 더 많이 체현되는 문장들이 많이 남겨질 것이라 생각한다.

《전법륜》을 배울 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변두리 소도(小道)에서 “사람의 수련은 주요하게 心性(씬씽)을 닦는 것인데, 그는 여전히 이 한 점을 모르며 그는 고생만 겪으면 수련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의 기나긴 시간을 경과하여, 몇 백 년, 천여 년을 수련해서 그는 이런 조그마한 공이 자란다. 실제로 그가 고생을 겪어서 수련해 낸 것이 아니다.”, “ 그는 가부좌와 입정력[定力], 고통을 겪음에 의해 위로 수련할 때 그는 역시 공이 자랄 수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그의 그 속인의 집착심이 길고도 간고한 세월 중에서 서서히 닳아 없어지고, 서서히 그 마음을 제거해서 자라 올라온 공(功)임을 모른다.” 하지만 대법 중에서는 “우리는 겨냥성이 있는 것으로, 진정하게 그 마음을 가리켜 그 마음을 제거하는데, 그러면 수련이 매우 빠르다.”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영원히 대법이 도대체 얼마나 높고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대법수련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럼 우리는 수련 중에서 소도(小道)와 과거의 수련방식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피동적으로 박해를 감당하고 줄곧 고생을 겪는 등을 영광스러운 일로 간주하고 수련 중에서 필연적으로 걸어야 할 길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박해에 마주했을 때 대법에 대해 확고부동하게 능동적으로 박해를 타파하는 이것은 위대한 수련자의 정행(正行)이다. 하지만 대법을 수련했음에도 줄곧 박해를 피동적으로 감당하는 속에서 고생을 겪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이는 수련인이 장기적으로 자신을 사람마음의 감옥 속에 가두어 둠으로써 초래한 치욕이다.

문장으로 기록된 정법수련의 여정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후세사람들에게 참조를 남겨주어야 하는 것이지 어떻게 고생을 겪고 얼마나 박해를 받았으며 박해 중에서 수련이 얼마나 간고했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법수련이 어떻게 직지인심(直指人心) 하여 수련자로 하여금 나는 듯이 빠르게 승화하여 점차적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법정각(正法正覺)으로 성취하게 한 내용이 더 많아야 한다. 외부 환경이 좋든 나쁘든 우리 수련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며 대법은 사악을 진압하고 난잡한 것을 소멸하며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박해를 마주하여 정법수련의 실천은 대법이 무소불능 하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법을 실증한 진귀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일단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이런 기회와 인연이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정법수련의 진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더 많은 대륙 동수들이 필을 들어 가장 위대한 법이 만든 대법제자의 휘황한 여정을 펼쳐 보이기 바란다.

문장완성:2007年09月07日
문장 발표:2007年09月08日
문장 갱신:2007年09月07日 20:53:49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7/9/8/16229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