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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향해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글 / 화베이 지역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1일] 내가 법을 얻은지도 어언 8년이 다 되었다.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을 돌이켜 보니 역시 온갖 풍상 고초와 어려움을 겪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동수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드디어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고, 어떻게 해야만 진정으로 부지런히 법공부를 통하여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귀정할 수 있는지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한 수련생이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또 그것이 어떠한 경지인지 체험하지 못하였다. 이전에 나도 쩍하면 안을 향해 찾는다 자신을 찾아본다는 말을 하곤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도리어 줄곧 밖을 향해 구했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흠집만 보았으며 일에 부딪히면 곧 마음이 설레이고 불평이 분분하였다. 집 안팎에서 집식구나 동수에 대해서 모두 그러하였다. 어머니는 늘 나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하셨고 남편은 늘 나에게 도리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말에 대해 나는 늘 내가 옳고 그들은 너무 번거로운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남편은 여러 번 이런 말을 했었다. “다행히도 당신이 연공했길래 이 정도가 되었지, 연공하지 않고 늙었으면 어떤 모양으로 변했을지 누가 알겠소.”

작년에 나는 이것 저것 궁리하면서 돈 벌 생각만 하였다. 수련생이 지적해 주었지만 그때 나는 아주 언짢아 하면서, 심지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변명을 하였다. “당신들은 집도 있고 퇴직금이 있어 살아갈 근심이 없지만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다음 해에 우리 집세는 누가 대주겠소? 우리집 식구들은 무얼 먹고 무얼 마신단 말이요? 그야말로 서서 말해도 허리 아픈 줄 모르는 격이네요.” 그때에도 비록 날마다 법공부 하기는 했어도 법공부를 할 때면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었고, 발정념을 할 때면 잡생각에 조용해질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세 가지 일을 괜찮게 하는 것 같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으며, 각종 집착심이 한 무더기나 되었지만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각종 구실로 그것들을 덮어 감추고 자양하였다.

어떤 때에는 일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찾고 찾다가 다만 표면적으로 그럴 듯하게 꾸미고는 찾지 못하여 의기소침하고 풀이 죽어 찾지 않았다. 한 해 또 한 해, 하루 또 하루 바로 이렇게 흐리멍덩하였다. 금년 봄에 와서야 씬씽을 제고하고 안을 향해 찾는 이 방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있게 되어 일에 부딪히면 곧 자신을 찾아보게 되었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통하여 나는 내 몸에 존재하는 질투심, 과시심, 쟁투심, 자아 집착심 등등을 보아 냈는데 너무나 많아 자세히 볼수록 두려워졌다. 원래 나는 줄곧 이런 사람이었구나! 안을 향해 찾을 수 있음에 따라 서서히 심정이 평온해져 이전의 경박하고 침착하지 못하던 성격이 없어 졌고, 속인에 대한 그리고 동수에 대한 이해, 관용이 조금씩 더 많아져 마음의 용량도 더 커졌다.

금년에 나의 법공부에 매우 큰 변화가 있게 되어 법공부할 때 조용해질 수 있게 되었으며, 더욱이 최근 법을 외우는 효과가 더욱 좋아져 이전에 통독할 때 알지 못했던 아주 많은 법리를 알게 되었다. 비록 각종 집착심이 끊임없이 뛰쳐 나오긴 했지만 법이 있기에 어떤 때엔 즉각 그것을 잡을 수 있었고, 어떤 때엔 재빨리 그것을 똑똑히 알아내고 버릴 수 있었다.

한 동안, 매주 토요일이면 나는 갑 동수에게서 명혜주간을 가져다가 다 보고는 일요일에 을 동수에게 주었고, 수요일이면 다시 을 동수에게서 찾아다 갑 동수에게 돌려 주었다. 후에 나는 그녀 두 사람의 집이 가까우므로 내가 먼 길을 돌아갈 필요 없이 가던 걸음에 보내줄 수 있다고 여기고 을 동수에게 다 본 후에 자기가 직접 보내주라고 알려 주었다. 또 토요일이 되어 갑 동수에게 갔더니 그녀가 나에게 먼저번 주간을 다 보았는가? 왜 한 주일이 지나도록 돌려주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다른 동수들은 아직 보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을 동수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곧장 그녀 집으로 가면서 또 그를 원망하였다. 왜 내가 매번 보내주고 또 먼 길을 달려가 찾아와야 하는가? 그녀가 보내주지 못할 것도 아닌데… 참, 걷고 걷다가 갑자기 느꼈다. 이것이 나인가? 사부님은 우리더러 무사무아, 선타후아한 정법정각의 대각자로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수련생을 위해 겨우 요만한 일을 하고도 공평하지 못하다고 여기니 얼마나 자사적인가. 나는 그것을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경문 《경지》가 나의 머리속에 펼쳐졌다.

“악한 자(惡者)는 질투심 탓으로 사(私)적인 것을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하노라. 착한 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거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깨달은 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노라.” 심정이 단숨에 탁 트였다. 을 동수의 집에 이르러 이 일을 그와 토의 하였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아이참, 내가 왜 늘 당신이 와서 가져가기만 기다렸을까? 마땅히 내가 가져가야 할텐데… 다른 동수들이 보는걸 지체시켰네요”라고 하였다.

며칠 전, 수련생이 나에게 수구하라고 알려 주었다. 만일 이전 같았다면 나는 체면이 깎였다고 여기고 숱한 구실을 찾아 자신을 위해 변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수의 말을 참답게 귀담아 들었고 자신을 찾아 보았다. 그렇다. 비록 내가 한 일이 수련생을 돕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 동수와 이 일을 담론할 때 무의식 중에 일종의 좋지 못한 작용을 얼마간 일으켰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이곳의 동수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말이 전해 나간 후이면 모순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수련은 참으로 아주 엄숙하며, 오직 대법의 요구대로 하고 바르게 걸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구세력에게 쉽사리 틈탈 기회를 주게될 것이란 것을 보아 냈다.

최근 몇 달 동안, 거의 날마다 6시가 넘어서야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에 나는 늘 그가 나의 발정념을 교란한다고 느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 좀 늦게 오시면 안 돼요? 하필이면 딱 6시에 오셔요?” 그는 좋아서 6시 20분 발정념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는 속인인데 내가 어찌 이렇게 그에게 요구한단 말인가, 만약 겨울인데도 내가 발정념을 끝내야만 그이가 돌아와야 한단 말인가? 나는 즉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집안에 들어서자 내가 말했다. “미안해요, 오늘 제가 잘못했어요, 당신에게 몇 시에 오시라는 규정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는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괜찮아”

동수와 함께 교류할 때에도 자신을 돌아봐야 할 뿐만 아니라 수련생이 반영된 일을 말하는 것 역시 하나의 거울로서 일에 부딪히면 자신에게 무엇 때문인가를 많이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쟁투와 미혹의 인간세상에서 몇 십년을 생존해 왔기 때문에 아주 많은 관념이 형성되었는데, 이런 것은 모두 우리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오직 안을 향해 찾고 안을 향해 닦아야만 그것들을 버릴 수 있다. 나쁜 물질이 적을수록 우리는 우주 특성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고 승화하여 올라갈 수 있으며, 세 가지 일도 더욱 잘 할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모두 안을 향해 찾을 수만 있다면, 동수의 약점을 보지 않고 동수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했을 때 선의적으로 법에서 교류하여, 동수도 도와 주고 자신도 순정시킬 수 있는 것인 즉, 간격이 아직도 존재하고 사악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아직도 있을 수 있겠는가?

명혜주간에 오른 동수의 교류 문장, 수련 심득은 모두 개개인에게 도움이 매우 크며 동수의 한 마디 말이 우리에게는 큰 계발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문장이나 나는 거의 모두 참답게 읽어 보고 자신에게 비춰보는데 수익이 적지 않다. 이 기회를 빌어 동수들에게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재삼 부탁하셨다. 법공부는 참으로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일체는 모두 대법에서 옴으로 오직 법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비로소 씬씽이 제고되고, 비로소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고 자신을 귀정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의 법리는 그침없이 펼쳐질 것이며 그 미묘함은 말로 이루다 표달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7년 9월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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