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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8월7일]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병업관을 넘거나 혹은 표현된 병의 상태에 대해 모두 정확한 인식이 있다. 신체에 각종 “병”의 상태가 나타날 때,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기만 하면 그 상태는 아주 빨리 지나간다. 아울러 우리도 병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여 청결함에 주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니다. 함부로 자신의 신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답안은 당연히 부정이다. 그렇다면 사악이 박해할 때 우리 역시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는데, 두려움도 구함이다. 그러나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여 똑같이 안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마찬가지 도리이다.

* 사악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허다한 동수들의 문장을 보면, 우리가 정념이 강할 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에 의해 위태로운 신체를 연화해주시고 악경은 책임을 감당하기 싫어 박해를 멈추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동수의 정념정행에 감개하는 동시에 나는 박해를 직접 겪지 못한 동수, 혹은 박해를 겪었어도 이번 박해에 대해 청성한 인식이 없는 동수에 대해 걱정스럽다. 나는 이런 동수들이 이로 인해 하나의 관념이 생길까봐 걱정인데 악경은 책임 감당을 두려워한다고 여길 것이고 악경은 우리가 생명으로 항쟁할까봐 두려워한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이런 관념은 아주 위험하다고 여기는데, 우리로 하여금 정념정행 속에서 또 밖을 향해 구하고 안을 향해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 개인의 경력으로 인식으로 볼 때, 구세력과 그것이 통제하는 사당(邪黨) 그리고 앞잡이들이 악을 행하는 것은 전혀 최저선이 없고 자율성이 없다. 우리는 박해를 멈출 수 있는 한 번 또 한 번의 희망을 그것들의 책임감 혹은 자율, 그것들의 두려움에 기탁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들 중의 일부 사람들에게 인성이 조금 남아있다고 할지언정이라도 말이다.

사부님의 법과 무수한 피의 교훈을 많이 읽으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인 즉 그것들은 사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마음 속에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음을 두려워하며 우리가 생사를 내려놓음을 두려워하는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에게 집착이 전혀 없음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그것들의 박해하려는 마음 역시, 이 담이 없어지고 이로 인한 능력도 없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우리 자신 역시 위대한 신이고 몸에 강대한 정념의 마당을 지니고 있으며 더욱이 사존의 보호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수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데, 박해를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과 법과 함께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금강부동과 용맹정진이다. 절대로 사악의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워하거나 혹은 기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속인 이 한 층의 표현에 불과하다.

문장완성:2007년 8월5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8/7/16024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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