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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 정념정행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7월 23일] 최근 박해 받았던 나의 집사람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편지에 어쩌면 그럴 수(노동교양소를 가리킴)가 있느냐고 썼다. 나는 회신에 이렇게 썼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려 하는 것은, 가령 감옥, 노동교양소의 사악한 정도를 상상하지 못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면 사실은 이지적이 되지 못하며 정념정행도 아니다. 사람의 말로 한다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개 수련인이 하나의 사악한 마당이 없는 환경 속에서 능히 생사(生死)를 내려놓음을 이야기한다면, 마치 우리들이 오늘 이처럼 바른 마당에서 당신이 생사(生死)를 내려놓음을 담론(談)한다면, 말하기에는 아주 홀가분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압력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한 사악한 환경 속에, 사악한 요소가 가득찬 환경 속에서, 또 당신이 가서 법을 실증하고, 감히 걸어 나와 사악을 폭로 한다면 그것은 별도로 되는 일이다. 그럼 이러한 환경 속에서 비록 그것이 몹시 사악하지만,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역시 아주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정말로 아주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간 후에는 이러한 기회도 없을 것이다.”(《도항》)

우리는 인터넷이나 재료 가운데서 노동교양소의 사악한 정도를 마땅히 요해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요해했고 아울러 그것에 겁을 먹지 않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지적이며 그것이야말로 정념정행이라 할 수 있겠다.

문장발표 : 2007년 7월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7/23/1593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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