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7월 17일】 1999년 ‘7․20’이전에 일부 수련생들은 일찍이 하루에 여러 시간 가부좌 하는 것을 낙(樂)으로 삼았다. ‘7․20’이후 몇 년 동안 천안문에 가서 체포되어 경찰차에 끌려가거나 수련을 견지하다 노교소에 들어가고 노교소와 감옥에서 단식하는 문제에 대해 대륙 동수들은 아주 많은 토론을 했다. 가령 많은 수련생들은 전에 경찰차에 끌려가야만 원만할 수 있다고 여겼고, 노교소에 들어가야만 제고가 빠르고 수련한 것이 높다고 여겼으며, 단식을 해야만 강인한 의지를 체현하고 박해를 타파할 수 있다고 여겼다. 동수들이 본 제고와 박해를 타파하는 그런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제고할 수 있고 박해를 타파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하루에 몇 시간 가부좌를 했거나 경찰차에 끌려가거나 또는 감금된 후 단식으로 항의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 아니다. 마땅히 단식하고 체포될 것인지 여부를 중시하고 단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표상에 지나치게 국한되거나 혹은 사상 속에 아직도 역사상 소도(小道)수련의 형식을 아주 중시하게 된 까닭은 대법의 위대함과 대법 수련의 비할 바 없는 위력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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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사부님께서는 북경 『전법륜』첫 발행식 설법에서 “한가운데 대도(大道)․대법(大法)수련으로 갈수록 더욱 간단하며 중심을 틀어쥐고 수련함으로써 비교적 빠르다. 우리는 사람을 이끌음에 비교적 빠르다. 무엇 때문에 빠른가? 어떤 수련생은 개변되고 공이 자라 오름이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 법을 얻지 못하면 당신의 일생에 당신은 아마 기(氣)라는 이 층차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전법륜법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많은 수련생들은 애초에 모두 대법을 수련하기만 하면 곧장 삼계(三界)를 벗어나며 로켓을 탄 것보다도 더 빠름을 체험했다. 그것을 고생 중에서 연마해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며 대법의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요구, 즉 心性(씬씽)제고에 따른 것이다. 心性(씬씽)제고라는 이 근본을 틀어쥐고 수련하고 법학습과 안을 향해 찾는 과정 중에서 心性(씬씽)이 제고되는 순간 신변의 환경은 곧 따라서 변화하는데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변화는 더욱 대단하다. 이는 우주 중에서 모두 목도하는 것으로 단지 세간의 사람만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 뿐이다.
수련을 하자면 분명 소업(消業)이 필요하며 소업은 곧 고통을 겪고 괴로움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법공부 중에서, 정상적인 연공과 가부좌 중에서, 정상적인 心性(씬씽) 마찰 중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중에서, 대법을 널리 알리는 중에서, 모두 고생을 겪고 소업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주동적으로 명명백백하게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속인생활 상태에 부합하지 않는 장시간 가부좌나 장시간 법공부가 필요하지 않으며 더욱이 피동적으로 사악에게 감금되거나 노역(奴役)당하고 시달림을 받거나 심지어 박해로 인해 3가지 일을 하지 못할 정도에 이를 필요는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공이 자라는 것은 확실히 불가사의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본을 틀어쥐고 수련하였고 사람의 이 마음을 틀어쥐고 수련했기 때문인데, 이것이야말로 관건적이다. 때문에 매우 빠르다. 산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과 일부 출가한 사람, 그들은 오랜 세월을 거쳐 수련하는데 많은 고생을 겪는다. 그는 자신이 고생을 하여 수련해 올라온 것으로 여긴다. 실질적으로는 오랜 세월 속에 차츰 그의 속인 중에서 집착하는 그 마음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그는 비로소 자라 오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올라오자마자 사람의 그 마음을 겨냥하여 수련한다. 당신의 집착심, 질투심, 환희심, 각종 마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틀어쥐고 수련하면서 당신의 이런 것을 모두 수련시킨다. 그러므로 그것은 빠르다.”(『전법륜법해』)
어떤 수련생은 하루에 6, 7시간 심지어 더 오래 가부좌를 하면서 가부좌를 하면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다고 요긴다. 그러나 心性(씬씽) 제고는 꼭 가부좌를 그렇게 오래해야만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련생은 단식 중에서 거대한 고생을 겪었고 아주 많은 업을 없앴다. 그러나 꼭 큰 고생을 겪고 감당하는 능력이 강대해야만 비로소 인신(人身)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心性(씬씽) 제고는 바로 일념 속에 있다. 다시 말해 한순간에 달린 것으로 ‘마라톤’이 아니다. ‘마라톤’은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며 명리정(名利情)을 끌어안고 내려놓으려 하지 않음으로써 조성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변이되었고 수련 중의 대법제자가 법에 동화하지 못한 부분 역시 변이가 존재한다. 많은 변이는 본질적인 것으로 자신은 자각할 수 없다. 때문에 고치려 하면 확실히 아주 어렵다. 이에 대해 구세력(舊勢力)은 각종 악독한 수단을 채용해 소위 수련생의 정념(正念)을 기어코 ‘때려서 나오게 한다.’ 사실 설령 대법제자 자신이 장기간 자신의 변이를 인식하지 못해 체포되었다 할지라도 또한 대법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大法)대도(大道)에 따라 해야만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빠른 것이다.
그렇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셨는가? 사부님께서는 “잠깐 쉼에 자아 성찰하여 정념을 더하고 부족함 똑똑히 알아 다시 정진하여라”(『이지로 각성하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전법륜』이란 한부의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로 여기에는 모든 우주의 대법이 포함되어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부님 자신의 2가지 정법구결(正法口訣)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념으로 악인을 거꾸로 제압하라”(『정념으로 악행을 제지하라』)고 하셨다.
기왕에 대도(大道)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면 그럼 우리는 마땅히 직접 중간 대도에서 수련해야 하며 설사 오성이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마땅히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에 따라야 한다. 늘 자신이 사람 중에서 양성한 고유의 관념과 구세력(舊勢力)이 안배한 것에 따라하는 것을 견지하지 말아야 하며 그런 어리석고 느리며 굽은 길을 걸어가지 말아야 한다. 기왕에 대법을 배웠다면 곧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며 대법 서적 속의 글자 뜻은 모두 볼 수 있고 모르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반복적으로 법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는 제외). 기왕에 사부님의 요구를 알았고 오직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념(信念)이 충족하기만 하다면 곧 이에 따라서 하고 내려놓기만 하면 곧 해낼 수 있으며 해내야만 비로소 대법의 수승(殊勝)함과 초상(超常)성을 체험할 수 있다. 해내야만 대법의 수승한 초상성을 실증할 수 있고, 해내야만 비로소 보다 많은 중생들의 낡은 관념을 전변시켜 보다 많은 세인들을 구도할 수 있으며, 법속에서 진정한 제고의 빠름을 볼 수 있다.
정법수련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하든 모두 개인의 수련제고와 관련이 있고 또한 중생이 진상을 알고 구도 받는 것과 관련이 있다. 생각해보라, 만약 수련을 견지하면 곧 체포되어 고문과 시달림을 받는다면 만약 모두 지옥 같은 노교소에 들어가야 하고 모두 몇십 일 씩 단식을 하는 시달림 속에서 살아나야만 층차가 제고될 수 있다면 속인 중에서 몇 명이나 감히 대법에 호기심을 갖고 배우려 하겠는가? 만약 대법을 배우면 모두 심신이 건강해지고 정기가 넘쳐나며 어떤 사악도 침범하지 못하며 당당하고 이성적이라면 세인들은 아주 쉽게 대법을 흠모하고 대법제자를 이해하려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법을 실증하는 효과가 더 좋겠는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막론하고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대법이 천지를 바로잡고 건곤을 바로잡는 경지와 법력을 더욱 체현해낼 수 있겠는가?
박해를 결속 짓는 것은 대법제자에게 달려 있다. 대법제자가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법에서 수련해야만 비로소 즉각적으로 박해를 결속 지을 수 있다. 정진하며 일하는 대법제자들이 더욱 법에서 정진해야만 비로소 정진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정체(整體)에 조성한 부족과 불충분한 것을 보완할 수 있다.
문장발표 : 2007년 7월 1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7/17/158997p.html